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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스페인 한량 스티브 Nov 22. 2022

똥을 밟았습니다

Ooops!

스페인의 거리에는 개똥이 무척 많습니다. 스페인만 그런 게 아니겠죠? 프랑스, 이태리... 반려동물을 유독 많이 키우는 유럽에서는 가을 낙엽 보듯 흔하게 마주합니다, 똥을요. (참고로, 프랑스어로 똥thon은 참치, tuna입니다) 


똥 자체는 절대 나쁘지 않습니다. 개한테는 아무 잘못이 없어요. 친자식 이상으로 애지중지 하면서 지 새끼가 싼 걸 보고도 치우지 않은 양심없는 주인이 잘못한 것이죠.


프랑스의 똥잔치


사람은 신기한 존재입니다. 기준이 없어요. 누군가 보는 눈이 있으면 똥의 근 수가 많든 적든 다 치웁니다. 하지만 인적 드문 길이나 공원에서는 그냥 지나가버리죠. 그 뒷감당은 오롯이 재수 없이 밟은 사람의 몫입니다. 등하교, 출퇴근, 산책, 장보기 등등 오가는 길에 때와 장소를 가리지 않습니다. 길에서 갑자기 미친 듯 발을 구르거나 외마디 비명 소리 또는 찰진 욕지거리가 콤보로 쏟아진다면 예외 없이 따끈쿠리한 그것을 밟은 겁니다.


모두가 웃고 떠드는 와중에도 빙긋 웃기만 할 뿐 조용히 넘어가는 분이 있습니다. 어떤 분일까요. 네, 맞습니다. 전에 똥을 밟아본 경험이 있는 유단자, 아니 유변자 되시겠습니다. 처음이야 호들갑을 떨지만 그 한 번이 워낙 충격과 공포로 다가왔기 때문에, 이후엔 어지간한 사이즈와 컬러로 대미지를 입지 않는 이상 유유자적 넘어가지요.


그래도 그저 밟기만 하면 다행입니다. 고온 건조한 스페인이라 금방 말라 있거든요. 평소엔 더워서 힘들다가도 이럴 땐 또 이런 기후가 참 고맙요. 하지만 우기철인 겨울에는 비 맞으며 치우기가 여간 귀찮은 일이 아닐 수 없죠. 귀차니즘은 스페인에서도 통합니다. 그냥 가요. 그래서 평소 보던 양 보다 제법 늘어납니다. 실하게 빠져나온 슬라임은 모락모락 김이 나는 정도는 아니지만, 보도블록 위 껌딱지처럼 사방에 널려 있어 스페인 사람들은 별안간 탭댄서가 되기도 합니다.


그러다 누군가 바나나 껍질을 밟듯 하는 일이 발생한다면! 아, 다행히 저는 직접 목격한 적은 없습니다. 그저 심증과 물증이 일치할 단서가 눈앞에 훤히 칠해져 있기에 잠시 김전일에 빙의할 뿐입니다.


흐음, 이 스멜은 분명... oh, shit! (출처: 인사이트)


미끄덩한 물체의 크기, 종류, 냄새와 상관없이 일단 밟았다는 것 자체로 이미 그 분의 기분은 종일 잡칠 겁니다. 어쩌겠어요. 글을 쓰며 상상하는 것만으로도 벌써 미간이 일그러지는걸요. 그러나, 그 기분은 딱 그날 하루뿐입니다. 다음날까지 끌고 가는 경우는 '거의' 없습니다. 우발적이고 일회성이니까요. (물론 다음에 그런 일이 또 없으리란 보장은 없습니다만)



인생도 살다 보면 똥 밟을 때가 있습니다. 치와와부터 시베리안 허스키까지 크기도 다양합니다. 어떤 사이즈의 똥이 되었건 이들은 확실히 영역표시를 남깁니다. 에너지, 감정, 체력, 정신 그 모든 것을 뱀파이어처럼 빨아가고 오물이 된 기분을 배설하는 그날 하루는 여지없이 당합니다. 심지어 여러 번일 때도 있어 Why me? 를 외치고 싶을 정도로요. 


그렇지만, 이 역시 다행인 점이 그 똥의 유효기간이 신데렐라의 구두처럼 자정까지 라는 것에 있어요. 심지어 자정 되기 전 잠들면 그 시로 없어지는 매직도 존재합니다. 아침이든 한낮이든 밤이든 간에 집에 들어와 씻고 나면 잊힐 일입니다. 아무리 해도 그 기분을 못 떨치는 경우라면, 극단적으로는 아예 신발이나 옷가지 등을 버리는 일도 있겠지요. 


강아지 때문이 아니라 강아지 똥 때문에, 더 분명하게는 강아지 똥을 관리 안 한 주인 때문에 기분을 망친 거니까요. 똥이 묻어 그런 거지 강아지 자체가 나쁠 일은 아니잖아요. 무심코 밟은 순간, '오우, 쉣!' 할지라도, 바로 다음 블록에서 튀어나온 비숑을 보면 '어머, 귀여워, 어떡해' 하는 일, 한 번은 있지 않나요.



내 인생에 우발적으로든 계획적으로든 끼어든 똥, 아니 사람 때문에 열받고, 실망하고, 낙심하고, 상처받고, 우울해진 기분을 어떻게 푸나요? 치맥에 배를 불리거나, 엽떡으로 불을 땡기거나, 블록버스터 영화 한 편 때리며 후련하게 보내는 등등 저마다의 방법이 있겠지요. 글쓰기도 그중 하나겠고요. 


제 경험으로 제일 좋은 건 마음 통하는 사람과 나누는 대화입니다. 후유증이 없고요, 마음이 편안해집니다. 밤새 붙잡고 시종일관 진지하게 풀어내지 않아도 됩니다. 단 한 마디의 말로도 그간 억눌린 감정이 해소되는 경우도 많아요. 본질은 진심에 있으니까요. 인생은 타이밍이라더니, 신기하게도 사람 때문에 빙하로 얼어있고, 고드름 칼에 찔려 피가 콸콸 흐르려 했는데, 역시나 사람 덕분에 해빙을 맞아 다 녹아버립니다. 심지어 계속 때어주는 군불 덕에 냉증을 앓던 수족에는 온기마저 돕니다.


예문대로 따라한 거지만, 구글아 미안해 (출처:본인 휴대폰)


누군가 나에게 던진 말투와 태도 때문에도 감정이 상할 수 있습니다. 내 인생에 똥덩어리가 봉투째 날아든 것이지요. 위 사진처럼 AI한테도 '너 싫어!' 하면 힘 빠진다며 대답하는 세상인데요, 모든 감정의 집합체인 인간이 받는 마음의 상처는 얼마나 더 깊겠어요. 


그러나 시간이 지나면 옅어집니다. 며칠 지나면 가물가물해지고, 몇 달 후면 기록하지 않은 이상 잘 기억이 안 납니다. 심지어 몇 년 후면 기록을 보고도 그랬던가 하기까지 해요. 그렇다면 몇 년 후면 기억에 남지도 않을 불쾌한 감정을 지금 바로 끌어와 쓰면 어떨까요. 


사실 감정에 상처를 준 그의 시선, 말투, 태도는 물리적으로 계속 남아 있지 않습니다. 내가 시선을 돌리는 그 시로 사라져 버리니까요. 내가 기억을 하기 때문에 잔상이 남아 있는 겁니다. 똥은 밟는 즉시 닦아내고, 쓰레기도 나오는 즉시 버리듯, 나의 감정 또한 바로 처리를 한다면, 오늘 하루를 분노와 짜증, 우울함 속에 보내고, 다시 그 일 때문에 하루를 낭비하며 보냈다고 자책하는 악순환에서 벗어날 수 있지 않을까요.



네, 저는 밟았습니다. 똥을요. 제대로 된 똥이었어요. 난리법석에 호들갑을 떨고 욕지기가 나왔지만 잘 닦아냈고, 남은 찌끼도 잘 씻어냈습니다. 결과를 보면 오히려 밟기 전보다도 더 깨끗해요. 똥 덕분에 요즘 유행이라는 '오히려 좋아~'를 몸소 체험하기까지 했네요. 이 정도면 길바닥에 널린 똥에게 감사를 해야 할지도 모르겠습니다. 게다가 똥 덕에 글 분량이 나오기까지 했으니, 앞으로는 똥을 볼 때마다 은혜롭도다 하며 똥에 대해 간증 할지도 모를 일입니다. 연탄재만 함부로 찰 일이 아니라, 똥도 분별없이 대할 일이 아닐 듯. (끝)


출처: 중부매일



덧 1. 스페인에서 까까 caca, 뽀뽀 popo 라고 하면 주위에서 식겁할 수 있습니다. 왜냐고요?

네, 맞아요. 그렇게나 귀여운 우리말이 스페인에서는 "똥"이거든요 

그러니, 아무리 사랑스럽더라도 '자기야, 뽀뽀~' 라든지 '아가야, 까까 먹자' 하면... 

뒷일은 상상에 맡기겠습니다.


덧 2. 작가는 오늘 똥을 몇 번이나 썼을까요? (쌌을까요 아님주의)


덧 3. 평소와 다르게 느낌을 살려보려 영어를 섞어 썼습니다. 

본의 아니게 우리말을 오염시킨 점 양해 바랍니다.


image from mathew schwartz, unsplas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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