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러니 항상 겸손해야 해요
가이드를 하면 전 연령층을 고루 만납니다.
다섯 살 꼬맹이부터 여든네 살의 어르신까지. 그야말로 하나의 인생 전체를 망라하는 자리입니다.
가이드를 하면 모든 학생층을 만납니다.
햇병아리 유치원생부터 초, 중, 고, 대학, 석사, 박사, 포닥(포스트 닥터, 박사 후 연구원)까지 말이죠. 본인들의 관심사는 투어 하는 중에 그대로 투영되어 같은 걸 봐도 다르게 받아들이며, 남들은 못 보는 걸 기가 막히게 알아차립니다.
가이드를 하면 세상 모든 직업을 대합니다.
학생과 전업주부부터 교사, 약사, 의사, 강사, 교수, 선수, 감독, 시인, 문인, 군인, 시/국회의원, 간호사, 은행가, 비행사, 승무원, 요리사, 고고학자, 연예인, 대표, 회계사, 목수, 건축가, 기술자, 프로그래머, 공인중개사, 가수, 피아니스트, 성악가, 유튜버, 인플루언서, 작가, 화가, 목사, 신부, 수녀, 비구니, 퇴마사 등. 만나면서 알게 된 직업의 종류가 너무도 많아 다 언급하지 못한 직업군도 제법 있어요.
같거나 비슷한 일정 그리고 다들 들어가는 입장 지를 들어가지만 매번 만나는 사람이 바뀝니다.
짧게는 사나흘, 길게는 일주일에서 보름까지 얼굴 보고 얘기하고, 같은 식당에서 밥 먹고, 동일한 호텔에서 잡니다. 이름은 잘 몰라도 어떤 인상을 주는 분인지, 일정 기간 동안 가이드인 저에게 호감이 있는지 여부 정도는 금방 알게 됩니다.
잘 알려진 분들은 본인은 가만있는데 주위에서 알아차리는 경우가 많습니다. 주위에서 수군수군하면 여지없이 유명인사인 겁니다. 한국에서보다 스페인에서 더 한국 사람 많이 보는 경우도 있고요. 그런 분들과 다니다 보면 제가 뭐라도 된 거 마냥 우쭐거릴 때가 있어요. 저는 옷이 아닌 옷걸이에 불과한데 말이죠.
이름만 대면 다 아는 정도가 아니라 먼발치에서 힐끗 보기만 해도 바로 알아차릴 정도인 분들과 다닐 때도 있습니다. 흔히 말해 아무개 누구는 아우라가 있다고 하잖아요. 심리적 요소가 크긴 하겠지만, 종종 그런 아우라를 가진 분들을 보곤 합니다. 그럼 저도 모르게 흠모하는 마음이 생겨나요. 음산하고 악한 기운이 아니라 밝고 보는 순간 저도 모르게 미소가 지어지는 에너지를 가진 분들이니까요.
다양한 분들을 만나서 그분들의 이야기를 들을 때면 가이드만큼 세상 행복한 직업도 없습니다. 미술관이나 왕궁, 대성당과 같은 입장지에 서는 제가 들려드릴 설명이 많지요. 하지만, 거기서 나오면, 아니 심지어 그 안에서도 삶을 다양하게 경험한 분들과는 일방통행의 전달이 아닌 핑퐁처럼 끊임없이 이야기가 오가며 저 역시 배우는 바가 생깁니다.
주고받는 말은 이전에 익숙했던 것에 새로운 시각이 더해져 창작과 아이디어의 세계로 안내받습니다. 배추, 고춧가루, 젓갈. 따로따로는 아무 맛도 안 나거나 맵고 짤뿐인데, 섞이고 발효의 과정을 거치면 밥상 위에 빠질 수 없는 김치가 되어 올려지듯 말이지요.
하여 손님들과의 만남은 늘 긴장과 설렘이 교차합니다. 그리고 저를 강제로라도 겸손하게 만들어 줍니다. 어떤 지혜를 가진 분들을 만나 뵙게 될까. 그리고 저에게 어떤 선한 영향을 주고 가실까. 하는 기대 속에 오늘도 익숙한 만남의 장소로 다가갑니다.
잘난 분들이 많다는 건 실은 당신을 두고 하는 말이에요. 저 역시 어깨를 같이 견줄 자로 더 성장하기 위해 부단히 읽고 쓸 겁니다. 독자 여러분, 독자인 작가님들을 직접 만날 날도 물론 손꼽아 기다릴 겁니다.
제목 사진: 카이샤 포럼 전시장, 마드리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