흰머리가 한가닥씩 저마다 있는 힘을 다해 피어난 것처럼 머릿결에 섞이지 않고 홀로 튀어 올랐다.
국민학생 때 주말이면 아버지는 사우나를 항상 다녀오셨고, 집에 돌아오시면 나를 불러 양반 다리를 하라 하셨다. 그러면 무릎 위에 다소 불편하게 누우시며 족집게를 손에 들려주셨다.
뽑으라는 것이다, 흰머리를.
어린 내가 볼 땐 흰머리도 충분히 멋있어 보일 아버지이셨는데, 아버지는 흰머리 하나당 10원씩 줄 테니 뽑으라 하셨다.
아버지의 족집게를 전해받은 그 아이는 진중하게 한 올씩 뽑아 올렸다. 이따금씩 잘못 집어 검은 머리칼이 뜯기듯 같이 올라올 때가 있었는데, 그럴 때면 어김없이 마이너스 처리를 하셨다. 그러나 십분 정도가 넘어가면 어른은 이내 코를 골기 시작했고, 그러다 아이의 다리가 저릴 때 즈음이면 부스스 일어나 방으로 들어가 한숨 주무셨다.
호텔의 거울을 보니 미남이신 아버지의 멋진 모습은 안 보인다.
다시 보니 삼십여 년 전 당신의 심정과 표정은 어딘가 모르게 닮지 않았을까 하고 상상해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