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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스페인 한량 스티브 Apr 06. 2021

스페인은 이름이 길어요

잠시 웃고 가요

일요일 오후 아이들 친구집을 방문해서 즐거운 한 때를 보내던 중, 동네 길을 따라 산책을 거닐어 보자 했습니다. 걷는 중에 가는 길에 있는 이름들이 별스러워요. 구리디? 바예로? 사전에서도 못 찾아볼 이름들을 보고, 무슨 뜻이냐고 물어보니 스페인의 유명 가수들 이름이라고 합니다. 마을 단지를 한바퀴 돌고나면 추억의 7080 음반 산책을 다니는 셈이지요. 


스페인식 이름은 우리에게 익숙한 미국식 이름과는 달라요. 미국식 또는 영국식 영문 서류를 작성할 때, 이름 작성 칸을 보면 보통 이름과 성, 그리고 미들네임이 있지만, 스페인은 이름 그리고 성들이 나와 있답니다. 아버지의 성과 어머니의 성(외할아버지의 성)을 쓰는 것이지요. 성의 순서는 아버지가 먼저이고요. 영어권처럼 생략하거나 이니셜로만 적어도 되는 것이 아니라, first surname 과 second surname 모두를 쓰게 되어 있는 것이에요. 다만, 외국인에게는 강제되는 사항이 아니기 때문에, 제아이들은 한국식 이름을 (다행히) 그대로 유지하고 있어요. 


지금이야 우리나라도 주소를 적을 때 길 이름을 쓰는 것이 보편화 되었지만, 제가 어렸을 땐 건물 이름으로 되어 있었어요. 명함을 봐도 항상 뒤에는 '약도'라는 작은 지도가 있죠. 대중교통으로 찾아가는 길을 보면, 지하철 몇 번 출구로 나와서, 어느 건물을 끼고 우측으로 돌아서 등으로 나와 있었고요.


그런데 스페인을 비롯한 유럽에선 길바닥 조차 이름을 갖고 있어서 그 길 주위에 인접한 길만 찾으면 약도 없이도 쉽게 찾아갈 수가 있어요. 함정이 하나 있다면, 길 이름이 너무 길어서 (예전 집의 경우, 집 근처 식당에서 만나자고 약속을 정하고 식당 이름과 주소를 얘기하려면 무려, '까예 데 라이문도 페르난데스 비야베르데 누메로 꽈렌따 이 꽈뜨로, 세 야마 레스따우란떼 엘 라이문도' 이렇게 얘기해야 했어요, 헥헥, 당연한 얘기지만 한 번에 못 알아들으니 전하는 입장에서 리슨 앤 뤼핏~ 정도는 기본으로 깔고 갑니다) 그걸 다 말하느니 그냥 '백화점 지나면 놀이터 있는데, 거기 식당에서 보자.' 이렇게 얘기 하는게 더 편하기도 해요. 스페인 도로 표지판에도 보면 워낙 이름들이 길다보니 이니셜 몇 개로 퉁치기도 하고요.


아이들이 좋아하는 츄파춥스 사탕의 로고를 만든 분이자, 무엇보다도 기이하고 특이한 걸로 따라갈 자가 없는 분이 있습니다. 초현실주의 화풍의 선두주자였던 살바도르 달리. 그 분의 본명은 어떨까요.


Salvador Domingo Felipe Jacinto Dalí i Domènech 

살바도르 도밍고 펠리뻬 하신또 달리 이 도메네크


달리는 아버지의 성이고, 도메네크는 어머니의 성입니다. 

뭐, 이 정도는 가뿐하군요. 다섯 번 정도만 연거푸 발음하면 그 분의 풀네임을 저도 모르게 암송하고 있을 것만 같습니다.


그렇다면 달리의 동료이자 세계적으로 유명한 스페인의 화가, 피카소의 정식 이름을 들어본 적이 있으신가요?


Pablo Diego José Francisco de Paula Juan Nepomuceno Crispín Crispiniano María Remedios de la Santísima Trinidad Ruiz y Picasso

빠블로 디에고 호세 프란시스코 데 빠울라 후안 네뽀무세노 끄리스삔 끄리스삐아노 마리아 레메디오스 델 라 산띠시마 뜨리니다드 루이스 이 삐까소! 


숨은 쉬셨어요? 들으셨다고요? 다시 읊어볼까요? 가이드인 저도 아직은 못 외웠어요.

어린 피카소가 세례받던 날, 그 날의 성인부터 시작해 존경하는 성인까지 좋다는 의미는 다 넣어 나온 이름이랍니다. 위에 언급했던 달리의 경우처러, 루이스는 아버지의 성, 피카소는 어머니 (외할아버지)의 성이에요. 그렇다고 피카소가 아버지를 무시하고 어머니의 성으로 고집해서 쓴 건 아니랍니다.


참고로, 유럽과 북미에서 여성들은 결혼하면 남편의 성을 따르는게 일반적이지요. 하지만, 스페인의 여성들은 결혼해도 아버지의 성을 그대로 지켜요. 이걸 보고 우스개 소리로 스페인은 여권이 강하다는 얘길 하는데, 다른 유럽인들에게는 몰라도 우리에게는 코웃음도 안 쳐질 얘기지요. 어머니와 아내를 떠올려 보시면 대번에 이해가 되실 겁니다. 


서수한무 거북이와 두루미... 의 길이에 비할 바는 아니지만, 웃자고 지은게 아니라 정말 신중히 생각해서 지은 이름이니 문화충격이라 할 수도 있겠어요.


스페인의 이름 얘기로 글을 쓰며 김춘수 님의 꽃을 언급하려다 그만 엉뚱한 길로 빠졌네요. 죄송합니다. 일단 이번 글은스페인 유명인사들 중 긴 이름을 가진 분들의 정식이름을 알아보는 상식 차원 정도로 갈음하겠습니다.   


(사진 출처: 피카소 구글 이미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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