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한 인간애 속으로 녹아든 행복한 여정
땡볕 여름이 한창이던 2019년 7월의 일이다. 전공자는 아니지만 워낙 클래식 음악을 좋아하다 보니 음악과 관련된 단체가 오면 팀 배정을 받곤 했다. 40인 합창 단체와 함께 버스 안에서 같이 공연곡 연습을 하기도 했고 (반주자님의 옆에서 악보를 넘기며), 현지인을 비롯해 세계 각국의 관광객이 가득한 세비야의 광장에서는 플래시 몹 (일순간 사람들이 몰려와 집단으로 행동하는 행위)으로 아리랑을 선보이며 박수를 받으며 단체로 한량 놀음을 하기도 했다.
이번에는 장애인 연주 단체와 함께 포르투갈과 스페인을 다니며 공연을 하는 일정이었다. 일단 첫 만남의 장소는 포르투갈의 수도, 리스본 공항이었다. 포르투갈, 스페인, 스웨덴, 프랑스 어디에서건 유럽에서는 장애인을 한국에서 보다 더 자주 본다. 거리에서 혼자 다니는 장애인 뿐만 아니라 관광지에서 선생님들과 단체로 다니는 경우도 정말 시내버스 지나가듯 자주 본다.
처음엔 장애인이 그저 우리나라 보다 많아서 그런 줄 알았다. 살면서 깨달았다. 장애인의 많고 적은 수의 문제가 아니라, 장애인들도 일상생활이 가능하도록 장애인에 대한 사회 전반적인 인식이 보다 열려 있다는 것을 말이다. 힐끔 거리며 몇 번씩 쳐다보는 사람도 없고, 수군거리는 사람도 없었다. 인종차별은 있는데, 장애인 차별은 없다는게 신기했다.
장애인 연주단원들은 모두 대학생들이었다. 그리고 각 연주자들 마다 어머니께서 동행하셨고, 음악 감독님, 대표님, 이사님께서 함께 하셨다. 이 분들은 <아트위캔> 이라는 단체의 연주단원들이었다. 장애인 단체는 학생 때 교회에서 장애아동이 모인 부서에서 방학 때 봉사활동을 하며 같이 보내본 적은 있었으나, 성인 장애인 단체는 처음 겪어보는 일이었고, 그것도 연주단원이라는 점은 상당한 호기심을 갖게 했다. 장애인이 연주를, 그것도 합주를 한다니, 직접 보고 듣기 전까지는 못 믿을 일이었다.
특별한 단체를 수행하는 만큼 기사가 정말 중요한데, 감사하게도 몇 번 같이 팀을 치뤄본 최고의 기사 후안 까를로스가 배치되었다. 버스회사의 유니폼인 푸른색 드레스 셔츠와 빨간 넥타이를 일정 내내 깔끔하게 차려입는 기사분은 매일 아침마다 직접 버스 통로를 오가며 캔디를 나눠드리고, 하루에 몇 번이고 행선지나 휴게소에 도착할 때마다 여성 손님들의 손을 잡아드리며 안전하게 내릴 수 있도록 에스코트가 철저한 분이셨다. 네비게이션이 필요없는 운전실력이야 말할 것도 없고, 운전할 땐 진득하게 "운전만 하신다." - 이게 얼마나 중요한 지는 지난 번 수다편 글을 본 분들은 알겠지만, 스페인인들의 수다는 우리의 상상을 뛰어넘는다.
워낙에 풍체가 좋은데다 깔끔하고 친절하기 까지 하니 여성 손님들은 헤어질 때 이 분을 껴안지 않는 분이 없을 정도이고, 사진도 그렇게 자주 찍을 정도로 인기가 많은 분이시다. 자신의 직업에 자부심을 갖고 품격있게 일하는 진정한 프로의 모습을 몇 번 같이 봐온 터라 나도 저절로 존경심을 갖게 되는 분과 다시금 일을 한다니, 한결 마음이 편해졌다.
몸이 불편한 장애인 분들이라 버스에서 내릴 때뿐 아니라 오를 때도 도움이 필요했는데, 그 때마다 후안 까를로스는 7월 땡볕에도 전혀 힘든 기색 없이 손님들 한분 한분을 극진한 정성으로 차분하고도 침착하게 도와드렸다. 단원들의 어머님께서 얼마나 감동 받으셨을지는 상상하는 그대로이다. 이런 기사는 태어나서 처음 본다고 입을 모았다.
연주 단체인만큼 공식 연주 행사가 세차례 있었다. 포르투갈의 수도인 리스본에서 장애인 협회 시설에서의 연주와 스페인의 수도 마드리드에 위치한 한국문화원에서의 공연, 그리고 마드리드 내 미국 교회에서의 공연이 해당 일정이었고, 그 외 가는 도시마다 허락을 받아 버스킹을 가지곤 했다.
일정 진행 이외에 얘기를 나누며 알고 보니 장애인 연주 단체나 협회가 제법 있었다. 대개는 지체장애인으로 구성되어 있다 (내가 생각하던 장애인도 이런 경우였다). 그렇지만 <아트위캔>은 발달(지적)장애와 자폐를 지닌 분들이라는 점이 달랐다. 발달장애는 지적장애만으로 그치지 않고 특정 신체 부위와 연결이 되어 시력이 무척 낮거나, 뇌병변 장애로 보행 자체도 힘들 정도로 복합적이다. 때로는 투렛 증후군이나 틱을 보이기도 한다. 이런 자녀를 데리고 사는 것만도 쉽지 않은 일인데, 연주자로 키워내고 있다는 것 자체가 나로서는 경이와 경외 그 자체였다. 그에 비하면 아들 녀석 피아노 렛슨 해 주는 건 일도 아닐 것이다.
심지어 발달장애 분들을 데리고 독주도 아닌 합주를 한다는 건 신의 영역에 속하는 일 아닐까 싶을 정도다. 부모가 아닌 음악 감독으로서 한 곡을 만들어 내기가 일반인도 어려운 빠르기며 고음의 영역을 피아노 반주와 함께 듀엣을 이루고, 악기가 다같이 모여 같은 박자로 호흡을 맞춘다는 건, 신의 영역이나 다를 바 없는 일이다. 그래서였을까. 전체 일정 중에 공식이든 비공식이든 합주를 하는 때면 나도 모르게 긴장감이 들었다. 다행히 그 때마다의 긴장감은 기우로만 끝났다. 그럼에도 여전히 신비로움으로 남겨져 있다. 음악의 힘이라는 것일까.
음악이란 얼마나 놀라운 것인지. 이해나 논리로서는 설명이 안 될 일들이 생긴다. 일정 기간 같은 말을 몇 번이고 반복하고, 통제하기 어려운 상황을 마주치며, 일반인인 나로서는 너무도 쉽고 익숙했던 일들이 시간을 두고 인내심 속에 봐 줘야지만 가능한 걸 연이어 접하다 보면 처음에는 '그런가 보다, 다르니까, 그럴 수도 있지' 하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어찌하면 좋을까'로 바뀐다. 전에 없던 경험을 하는 중이라 그런 것이다.
그러면서 장애인인 그들이 아니라 '나' 자신을 다시 보게 되는 일이 많아졌다. 지속적인 설명을 이어가기 어렵기 때문에 핵심만 짧고 간단하게 전달해야 했다. 그러다 보면 설명이라기 보단 너무나 단편적인 단어만 나열하는 것 같아 나 자신부터 흥미를 잃게 되는게 살짝 힘들었다. 그런 상황이었는데도, 너무도 신기한 건, 악기 연습 시간만 들어가면 그야말로 눈빛과 자세부터 완벽한 프로페셔널 솔리스트이자 합주단원으로 바뀐다는 점이다. 마치 뮤즈의 페르소나를 쓰고서 '넌 지금까지 날 잘 못 본거야. 다시 나를 봐' 하며 일침을 날려주듯 말이다.
셈여림을 섬세히 조절하는 건반의 터치도, 클라리넷의 빠른 운지도, 고음의 고운 멜로디를 선보이는 플룻도, 시력 때문에 모든 곡은 암보해야만 하는 악조건 속에서 리듬을 타는 베이스 색소폰의 그루브도, 마지막으로 호쾌한 국악 판소리 한마당까지. 한명 한명이 그렇게 황홀한 멜로디 속에 빛날 수가 없었다. 단원들의 연주 공연을 보다 흥을 탄 나머지 나도 건반 연주로 화답을 하며 소감을 나눈 그 감동까지. 글을 쓰는 지금도 2년 전 세비야 호텔 야외공연의 흥취는 눈 앞에서 영상을 재생하듯 생생하게 되살아 나고 있다.
음악에선 장애인이 없었다. 여행 보다도 우리는 음악으로 하나가 되고, 음악으로 통하는 진정한 뮤지션이었다. 마드리드 한국문화원 공연 때는 내 가족들도 와서 보고 연주 후 아이들의 고사리 같은 손으로 장미꽃을 하나씩 선사해 드렸는데, 그게 연이 되어 지금까지 소셜 미디어를 통해서 안부를 전하고 응원을 전하고 있다.
일정을 마치고 마드리드 호텔로 돌아오며 후안 까를로스와는 일단 작별을 고해야 했다. 마드리드에서의 일정은 마드리드 기사가 별도로 배치되기 때문이다. 소감을 한마디 해 달라 부탁하니 소감 대신에 노래를 부른다. 헤어진다 해도 진심어린 내 사랑을 잊지 말아달라는 서정 가득한 스페인 노래였는데, 가사가 우리의 상황을 그대로 재현하고 있었다. 노래를 부르는 기사도, 듣는 어머니들도, 그의 말을 통역할 나도 우리는 결국 다 참지 못하고 펑펑 울고 말았다.
사람의 연이란 도대체 무엇일까. 진심이란 무엇이기에 말은 안 통하는데도 마음은 통하고 마는 것일까. 언어 너머의 신비는 어떻게 설명이 가능할까. 대표님과 어머님들에게서 소설 한 권씩은 나올 법한 인생살이를 들으며, 눈물 짓지 않을 수 없고, 마음을 끓이지 않을 수 없다. 나라면 과연 감당할 수 있을까 하며 끊임없이 되묻게 되던 근본적이고 너무나 현실적인 질문들. 가이드인 나도 자부심을 걸고 품격있게 성심을 다해 진행한다며 신경을 썼지만, 그 이상으로 마음을 써 주신 이 분들의 세심함에 무엇으로 보답할까.
일정 마지막 날 프라도 미술관에서 버스를 타러 가던 중 후안 까를로스 기사를 보자마자 학생 단원들이 이름을 부르며 소리를 지른다. 놀란 기사와 눈이 마주치자 마자 득달같이 달려가 안기며 껴안고 난리다. 흡사 이산가족의 상봉 장면이다. 다행히 전날에는 눈물 지었지만, 그 날은 서로 호탕하게 웃었다. 암은, 당연 그래야지. 우리는 또 만날 거니까. 또 만나야만 하니까.
그렇게 해서 나와 대표님을 통해 <아트위캔> 단원들과 페이스북 친구가 된 후안 까를로스는 지금도 포스팅이 올라오면 하트를 누르며 변함없이 관심과 사랑을 보낸다. 아울러 나는 마지막 일정에 <아트위캔>의 유럽(스페인) 이사라는 직함을 위촉 받아 지금도 고마운 연을 이어가고 있다.
여행의 끝은 진실로 사람에게 있다. 좋은 풍경, 맛난 음식, 놀라운 작품들. 다 좋다. 그렇지만 어디를 가는 것 보다 더 중요한 건 누구와 함께 하는가에 달려 있다는 것을 이번 일정에도 예외없이 체감한다. 잊을 수 없는 여행은 사람에게 향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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