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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스페인 한량 스티브 Apr 07. 2021

글쓰기가 안 되면 어떡하지

일단은 내려놓자

인스타에 짤막하게 글을 올리다 분량 잘린다고 투덜대다 들어온 곳이 브런치, 그런데 막상 멍석 깔고 나니 벌벌 덜덜 기어 들어가면서 글을 쓰는 둥 마는 둥 했다. 글태기(글+권태기)도 아닌 글럼프(글+슬럼프)도 아닌 순도 백의 능력 부족이었다. 


넉 달이 지난 지금도 실력은 별반 달라지지 않은 것 같다. 글쓰기가 무슨 객관식도 아니고, A, B 이런 식으로 학점을 매겨줄 분도 없으니 오직 나 혼자 글 잘 써진다며 헬륨풍선 마신 사람 마냥 낄낄 댔다가, 브런치 글쓰기의 하얀 화면처럼 멍~ 하니 넋놓고 있다가 암만 써도 뭔가 석연찮다며 툴툴 대기도 한다. 정식으로 글쓰기 수업을 받은 적이 없어 생각나는 대로 쓴게 다다. 그냥 목 마를 때 물 따라 마시듯, 필요에 따라 몇 번의 강의를 들어본 것이 전부다. 


어디다 글을 써서 내놓아 본 적도 없는데, 그런 엉성한 글쓰기를 하는 내게 미디어에 칼럼을 써 보라며 딱히 이렇다 할 확인도 없이, 덜컥 편집자 분과 연결을 해 주신 대표님(당시 여행 손님)은 정말 무슨 의도이셨을까. 그 분은 내게서 '꿈이 있는 걸 봤다' 라며 밑도 끝도 없는 얘기지만, 들으면 기분 좋아지는 말씀만을 남기셨다.

꿈은 있었을지 몰라도, 막상 어떻게 해야 하는지 몰라서 하루 아침에 사하라 사막 한 가운데로 내몰린듯 있으며, 오아시스를 만나면 환호하지만, 갈증을 채우고 다시 길을 떠나면 어디를 보고 가야 할지 몰라 뱅뱅 같은 길을 돌고 또 돌던 때가 있었다. 나침반이 없으면 별자리라도 보고 북극성과 북두칠성이라도 확인하며 따라가야 하는데, 여전히 백지 상태로 있어 멍 때리던 때가 있었다. 그러면서 글을 쓰네 마네 정신 집중이 되네 안 되네 하며 쌩쇼를 벌였다. 조증 환자 마냥 하루에도 몇 번씩 혼자서 양 편의 널을 뛰다가 순간 머릿 속에서 에밀레 종소리가 데응으응 하며 울리는게 있으니, 다 내려놓고 쉬는 것이다.




쉰다고 해서 잠적을 하거나, 잠수를 타거나, 연락을 다 끊거나 하는 것이 아니라, 일단 글쓰기 행위 - 타이핑 하던 걸 - 잠시 내려 놓는 것이다. 낮에 쓰는 중이었다면, 일단 다 멈추고, 노트북도 잠시 화면을 끄고, 커피를 한 잔 타러 주방으로 간다. 비록 탄 내음 가득한 마트 PB 상품의 커피이지만, 물 끓이는 소리만 들어도 잠시 기분은 환기가 된다. 


커피를 가볍게 타고, 설탕도 두 스푼 담뿍 넣어서 안방으로 오면, 아내가 좋아하는 큰 창 너머로 집 앞 공원의 울창한 나무가 보인다. 그리고 잔가지 사이로 참새며 비둘기, 까치, 지빠귀들이 부지런히 날갯짓 하며 오가는 걸 보거나, 갸들이 볕 쬐는 걸 보면서, 눈과 생각을 잠시 풀어둔다.


크건 작건 바로 눈 앞에서 나무를 볼 수 있다는 건 생각보다 꽤 장점이 있다. 일단은 마음을 가볍게 해 준다. 들뜬 마음도 살짝 가라 앉혀 주지만, 눌려 있던 마음도 생기 있게 - 문자 그대로 자연을 보며 날 것의 기운을 받게끔 - 북돋워준다. 매일이 똑같을 거 같지만, 실상은 조금씩 잎사귀며 꽃의 색을 달리해 가는 나무의 변화를 본다는 건, 내가 살아있음을 느끼게 해 주는 고마운 마중물이다.


눈 앞에 있는 나무와 새를 보고 나면 눈을 들어 하늘을 바라본다. 스페인의 하늘은 고맙게도 거의 연중 내내 쾌청하다. 가끔은 구름 한 점 없이 저리도 푸른 하늘을 보다가 내 마음은 더 시리게만 느껴지는 고독과 우울이 찾아올 때도 있다. 하지만, 대개의 경우 누군가 방금 수채 물감으로 말갛게 슥 풀어 놓은 하늘을 보고 있으면 지금 당장의 걱정과 근심, 짜증과 염려는 힘을 잃어간다.


그럴 때 예쁜 잔에 담긴 커피를 한 모금 살짝 해 본다. 펄펄 끓던 물이 적당히 식어서 온기는 유지하면서도 혀가 데이지 않는 이 느낌, 쌉싸르함과 탄 맛이 그만 실수로 태웠던 밥을 숭늉으로 넘기듯 넘어간다. 커피의 카페인이 늘어지고 쳐져 있던 신경을 다시 일깨워주기 시작하고, 담뿍 탄 설탕이 미뢰에 전달되자 그 전까지의 불쾌했던 감정과 기분은 소독 알콜 처럼 휘발되고 만다.


그러면 다시 글쓰기에 기분 좋게 착수한다. 그러면 글이 잘 나오느냐. 아니다. 이렇게만 해서 글이 잘 나오면 이미 출간 작가를 넘어서 베스트셀러에도 등단이 되고도 남았을 것이다. 여전히 못난 글이고, 낯가죽이 제아무리 두껍다 해도 발행을 하기엔 양심상 도저히 안 되는 민망한 글 투성이다. 흥미로운 건, 그런 나의 분신 같은 글들을 보고도 그 전처럼 스트레스를 받지 않게 된다는 점이다. '응, 글이 별로네? 그럴 수도 있지. 일단 저장만 해 두고 나중에 다시 꺼내 보자.' 하며 한결 여유있게 대처하게 되는 것이다. 




나라는 인간은 절대 이성적이거나 논리적이지 않다. 아냐, 이성과 감성, 둘 다 동시에 잘 쓸 수 있어. 하면 돼, 하면 되는거야. 라고 오기를 부려봤지만, 이제는 순순히 인정한다. 이성이 없는 건 아니지만, 감성이 더 발달했으니 감성을 좀 더 잘 활용해 보자는 방향으로. 그게 글쓰기가 안 될 때 내가 취할 수 있는 방법이다. 이걸 동기부여라고 까지 칭할 수는 없을 것이다. 다만, 글 쓰다 빈번히 찾아오는 낙심을 나름 잘 넘기는 슬기로운 글쓰기 생활 정도로 보면 될 것 같다. 


그렇다면 늦은 밤에는 어찌하나. 시커먼 하늘, 어디선가 가끔 들리는 컹컹 개 짖는 소리, 공원 길고양이들의 나른한 냐옹 소리. 그게 다 인데. 어쩔 수 없다. 오늘 할 일을 내일로 미루는 것이다. 이걸 오늘 안 하면 지구가 멸망한다거나 집주인에게 내몰려 집 밖으로 나 앉게 생기는 일이 아닌 이상 (다행히 15년의 해외살이에서 한 번도 이런 일을 겪어 보진 않았다) 안 되는 것을 더는 억지로 하고 싶어지지 않았다. 안 되는 것을 무언가의 고행과 열씸 (열심이 아니다, 열씸이다)으로 나 살겠다고 주위를 피곤하게 만들고 다치게 하는 일을 더는 하고 싶지 않아졌다. 그렇게 해서 성과를 이루면, 대체 누가 행복한 건데, 누가 좋아할까, 누가 같이 기뻐해 줄까. 아닌 건 아닌 것이다.  


무엇보다도 글쓰기가 나를 위한 것은 맞지만, 내가 글쓰기를 위해 있는 것은 아니기 때문이다. 또한 나를 이롭게 하는 것이 궁극에는 남에게도 도움이 된다는 알기 문이다. 오늘도 나를 위해 생각을 하고, 창 밖을 내다보고, 커피를 마시며, 노트북을 열고, 글을 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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