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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스페인 한량 스티브 Dec 15. 2020

마드리드 근교  탐방
- 알칼라 데 에나레스

-세르반테스와 돈키호테의 마을

마드리드에 오는 분들에게 하는 우스개 소리가 있어요. 마드리드에 오면 주위 다른 도시 보고 다니느라 정작 마드리드에서는 잠만 잔다고요. 물론, 정말 웃자고만 하는 얘기에요. 마드릴레뇨 Madrileño (마드리드 사람을 일컫는 스페인어)가 듣는다면 엄청 존심 상하겠죠? 하지만 정말 그런 경우가 종종 있답니다. 왜냐고요?


남쪽으로 아랑후에스와 톨레도, 북으로는 세고비아, 그리고 문화탐방을 좀 하는 분이라면 그냥 절대 지나칠 수 없는 바로 이곳, 알칼라 데 에나레스(줄여서 알칼라)가 있거든요. 전부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을 제법 갖고 있는 도시고요, 그중에서도 특히 톨레도와 알칼라는 모두 도시 자체가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에 등재되어 있는 곳이기도 해요. 위에 언급한 도시 두 마드리드에서 한시간 내로 갈 곳이지만 그 중에서도 알칼라 데 에나레스는 3, 40분 정도면 버스나 근교전철 cercanias (세르까니아스)를 통해 올 수 있어 교통면에서 마드리드와 제일 편한 위치에 있어요.


이곳으로 이사온지 1년을 살짝 넘겼는데, 정말 살면 살수록 사람 사는 정을 느끼고 눈길 닿는 곳마다 옛스러운 멋과 정서에 여유를 느끼는 곳이라서 마음에 들어요. 먹고 마시는 물가도 마드릿 시내에 비하면 정말 싼 편이라 무엇을 해도 부담이 덜 된다는 건 한창 먹을 세 아이를 둔 아빠의 입장에선 더더욱 매력이 아닐 수 없고요. 아이들도 집에서 조금만 걸어나오면 볼거리라 풍성하기에 현장체험학습 하기에도 정말 좋아요. 스페인 사람들 보면 전부 자기 나라 자랑이 아니라 자기 동네 자랑 하던데, 저도 어느새 나라가 아닌 제가 살고 있는 고장에 자부심을 가지는 걸 보면 현지화가 다 된듯 싶네요. 




이미 아이들은 학교에 다니고 있으니 자기들 동네에 대해 어느 정도 숙지가 되어 있겠지만, 그래도 한번 더 아빠의 목소리로 정리해서 들려주면 좋겠지요? 일단, '알깔라'와 '알칼라' (알까라, 알칼리 아니에요)로 헷갈려 하실 수도 있는데요. 결론은 둘 다 맞아요. 스페인어 발음 그대로 보면 알깔라 이고요. 우리말 검색에선 알칼라로 결과가 나와요. 그리고 H는 스페인어에선 언제나 묵음이에요. (영어의 hour 처럼요)


스페인어 처럼 라틴-로망계열의 언어에서는 항상 된소리(경음)가 기본이에요. 우리말에선 된소리를 피하고 거센소리(격음)을 쓰는 편이고요. 우리 귀에 경음은 경박하게 들릴 때가 많거든요. (욕을 떠올려 보심 됩니다) 스페인의 바르셀로나는 천재 건축가 가우디로 알파와 오메가를 이루고, 오스트리아의 잘츠부르크에선 음악의 신동 모차르트가 도배되어 있듯이, 마드리드 근교의 알깔라에선 스페인의 대문호 세르반테스를 거리 곳곳에서 만날거에요.


인구 20만명의 대학도시 Alcalá de Henares의 이름은 "에나레스(Henares) 강江의 성城(Alcalá)" 라는 뜻을 가지고 있어요. (de는 영어의 of와 같아요, 스페인어에서 굉장히 자주 등장할 단어랍니다. 알깔라는 아랍어에서 나왔고, 라틴어로는 Complutum (콤플루툼) 이라고 불렀는데, 그 뜻은 강들이 만나는 합류지점 이랍니다. 여기에서 지금 마드리드로 옮긴 스페인 국립대학 Complutense (콤플루텐세)도 나와요. 참고로 알칼라의 큰 길 이름이 바로 Via Complutense 이고 구시가 까페 중엔 Complutum 이란 곳이 있어요. 이젠 다 무슨 의미를 지녔고 왜 그런 단어를 썼는지 이해가 되지요?


이곳은 1세기 로마인에 의해 콤플루툼 이란 이름으로 마을이 세워졌구요. 그러다 711년, 8세기에 북아프리카를 통해 올라온 아랍계 이슬람교도인 무어인에 의해 함락되면서 성채를 세우고 알깔라로 바뀌었어요. (이때가 우리로 치면 통일신라 성덕왕 때에요.) 이후 1118년에 카톨릭에 탈환됩니다. 시대별로 종교적 특성이 녹아 들어 있는 이곳은 그래서 이슬람, 카톨릭, 그리고 유대인 지구가 나름 조화를 이루었다 해서 "세 문화의 도시"로도 알려져 있어요. 


1293년 산초 4세 국왕과 시스네로스 추기경에 의해 세계 최초로 대학을 위한 도시로 개발, 발전이 되기 시작해요. 그래서 저처럼 외국인을 위한 스페인어 어학원이 많이 있고, 거리에서 대학생들을 쉽게 볼 수 있어요. 1998년에는 유네스코 세계문화 유산의 도시로 22번째에 올려지게 됩니다. 도시를 둘러보면 문화유산 도시답게 중세의 흔적이 곳곳에 남아 있어요. 아래 사진에 보는 탑은 그 옛날 성당에서 유일하게 남은 부분인데, 그 성당에서 세르반테스가 세례를 받았지요.


세르반테스가 세례 받은 성모 마리아 성당의 탑입니다. 성당은 없어졌어요.


이곳 태생으로 유명한 인물은 스페인의 대문호 세르반테스와 영국에서 가장 입방아에 오르내리는 국왕 헨리 8세의 비운의 첫번째 부인, 아라곤의 까따리나 (캐더린)이 있어요. 이 분의 삶은 정말 기구한 팔자 이상의 비극인데 이건 나중에 스페인과 영국의 역사 편에서 살짝 들어보기로 해요. 




세르반테스는 레판토 해전에 참전했다가 왼팔을 다쳐 외팔이가 되었고, 세금징수원이자 성당의 밀 배급업자로 일하다 비리로 고발당해 세비야에서 옥살이를 치뤘지요. 세비야에 가보면 지금도 그 때 세르반테스가 수감 당했던 것을 기념해서(?!) 세르반테스 흉상이 세워져 있어요. 


그렇다고 그는 그냥 좌절하고 생을 포기하지 않았어요. 바로 그곳에서 그 유명한 돈키호테 (원제: 라만차의 재기발랄한 기사 돈 키호테, 여긴 뭐든 이렇게 깁니다...) 를 1605년 탈고해내거든요. 지금도 그의 생가 앞에는 돈키호테와 산초 빤사(Panza 배불뚝이란 뜻)가 지키고 서 있고요. 이 동상은 돈키호테 출판 400주년을 기념해서 2005년에 만들어졌어요.


산초와 돈 키호테, 무슨 이야기를 나누고 있는 걸까요. (나 때는 말이야... 죄송


알칼라는 관광지로서의 명성이 마드리드 시내와 근교 똘레도, 세고비아에 비해 많이 밀려 한국인 관광객은 찾아보기 어려워요. 그래도 이곳이 세르반테스의 명예를 잇는 교육의 도시이자 대학의 도시로 키워졌기에 (정작 세르반테스는 제대로 교육을 받은 적이 없는데도 말이죠) 한국에서 교환학생이나 어학연수생이 정말 많이 오는 편이에요. (코로나로 지금은 올스톱이 되었지만, 분명 다시 풀리겠지요) 또한 세르반테스의 숨결을 느끼고 싶어하는 현지인과 유럽인들은 일년 내내 꾸준히 찾아오는 편이에요. 


그런 트렌드를 보면 아무래도 바삐 다니는기만 하던 것에서 벗어나, 몇 개의 도시에서 넓고 깊게 보며 현지인처럼 생활해 보는 중에 우리와 다른 것을 많이 체험하고 느껴보고 싶어하는 방향으로 가지 않을까 해요. 이미 한달살기나 갭이어gap year 등을 통해 자신의 내면을 비워내고 그만큼 새롭게 다시 채우는 걸 하는 분들에게 스페인은 도시 하나가 다른 나라로 여겨질만큼 독특한 개성을 가진 곳으로 기억될 겁니다.


다음 번엔 같이 세르반테스의 생가로 들어가 볼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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