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스페인 한량 스티브 Apr 10. 2021

편지 예찬론과 편지의 추억

안경숙 <사랑이 나에게> & 황동규 <즐거운 편지>

소중한 사람들의 손길, 미소, 목소리, 향기

그 모든 것이 손으로 쓴 편지 속에 들어 있습니다.

편지는 그리움 입니다.

편지는 누군가에게 닿으려는 마음입니다.

아무리 뛰어난 기계가 나온다 하더라도

편지는 사람만이 쓸 수 있는

진심의 언어가 아닐까 합니다.


-안경숙 <사랑이 나에게>



Q. 진심을 담아 짧은 편지를 써 보아요.


A. 지극히 한 사람을 향한 사적인 글이라 공개, 공유하기엔 어렵겠어요. 대신 저의 첫 편지에 대한 추억을 떠올려 보겠습니다.


생일 축하 카드나 크리스마스 카드의 짧은 축하 인사가 아닌 문장으로써 길게 편지를 써 본 건 국민학교 6학년 때였어요. 초등학교 아니냐고요? 네, 아니에요, 저 오래된 사람입니다. 유치원부터 대학교까지 20년 넘게 당산동에서만 자랐어요. 마지막으로 한국에 가 본 게 4년 전인데, 그 때 당산역에 가서 어렸을 때 지낸 아파트를 둘러 보다 '축 oooo아파트 재개발 확정' 이란 현수막을 보자마자 어린 시절이 사라지겠구나 라는 생각에 저도 모르게 그만 눈물이 터지고 말았지요. (이 얘길 왜 꺼낸걸까, tmi 미안합니다)


6학년 당시 일기 쓰기와 함께 편지 쓰기는 매일 아침 마다 교실에서 하던 숙제였어요. 담임 선생님께서는 독특하게도 수업 시작 전 아침마다 반 아이들 누구하나 예외없이 서로에게 편지를 쓰게 하셨습니다. 팬시용품점의 개성 가득한 편지지가 아닌, 사무용 괘지처럼 하얀색 바탕에 까만 줄로 된 편선지로 통일해서요. 친하거나 인기 많은 애들에게 편지가 집중되지 않도록 최소한 반 아이들 전체에게 한 번씩은 쓰도록 하셨습니다. 편지 분량은 더도 말고 덜도 말고 딱 1장씩이었어요. 특이한 점이 있다면 다 쓴 편지는 당사자가 아닌 선생님께 내야 했다는 것입니다.




1학기가 끝나고 여름방학을 앞둔 날이었습니다. 선생님께선 아이들을 한 명씩 선생님의 캐비넷으로 부르셨습니다. 네, 맞아요. 그 편지지를 일일이 학생별로 구분해서 보관하신 겁니다. 세상에나, 그 정성이란. 저도 불려 나갔지요. 친구들이 저에게 쓴 편지뭉치를 살짝 보여주셨어요. 우와아. 그 때 심장이 얼마나 두방망이질 치던지요. 30년이 지난 지금도 잊질 못합니다. 그 흥분은 저만 아니라 모두가 마찬가지였어요.


2학기가 되자 아이들은 더 열심히 썼습니다. 심지어 2장이라며 호치키스로 찍어 내는 친구마저 생길 정도였지요. 그리고 빛나는 졸업장을 타는 그 날, 우리는 1년간 모인 편지를 선물 받았습니다. 한 장 한 장 넘기며 보는데 저에 대한 칭찬, 좋은 점, 고마운 점은 물론 단점, 고쳤으면 하는 점, 바라는 점까지 두루두루 사건과 함께 써져 있었어요. 좋으면서도 민망하고, 창피하면서도 기분 좋은 온갖 감정이 반 친구들이 연필로 꾹꾹 눌러쓴 글자를 타고 춤을 추고 있었지요.


이게 저의 첫 편지의 추억입니다. 편지는 힘들게 독해하고 넘기는 책이 아닌 나에 대한 이야기로 가득하기에 단숨에 읽어 내려가지요. 지금도 부모님 댁 어딘가에 보관되어 있을 거 같아요. 부모님의 아파트는 저에겐 언제나 추억의 서랍장이고, 시간여행을 떠나는 곳이 됩니다.




브런치를 비롯한 소셜 미디어에 글을 쓰고 사람들과 댓글로 교류하기 전까지, 저는 글을 써 본 일이 당최 없다고만 생각했는데, 지금 보니 30년 전 등교 첫 시간 마다 꾸준히 숙제처럼 써서 냈던 편지쓰기가 이 모든 글쓰기의 시발점이었군요. 세상에나... 은사님께 어떻게 감사를 드려야 할까요. 융통성이라곤 없이 앞 뒤 꽉 막혔던 저를 무척이나 아껴 주셨던 담임 선생님이 떠올라 잠시 마음이 울컥해집니다.


지금처럼 스마트폰이며 노트북, 인터넷 등이 있던 때가 아니었기에 필체가 어찌되든 누군가에게 제 생각과 마음을 표현하려면 편지를 쓸 수 밖에 없었지요. 그랬군요. 편지를 쓰고 나면 마음이 참 편해지고 그렇게 좋을 수가 없었어요. 전학 간 친구한테 쓴 편지, 따르고 싶은 교회 형과 수 년 간 주고 받던 편지, 논산 훈련소에 입소해 부모님께 올린 편지, 주일학교 선생님께 쓰는 감사 편지, 여자친구(지금의 아내)에게 쓰던 엽서와 편지까지. 편지를 통해 저도 모르게 글쓰기를 익히고 있었나 봅니다.


편지의 내용은 (당연하겠지만) 소소하고, 시시했어요. 못 본 사이 나누지 못한 이야기, 일상의 편린, 안부와 소식들, 한마디로 '사소한 편지'였지요. 그렇지만 그렇기에 사실만 나열하는 걸 넘어 어떤 일에 대한 제 생각을 솔직하게 표현할 수 있었고, 받는 이를 향한 감정을 스스럼 없이 부을 수가 있었어요. 그건 꼭 연애편지에만 국한된 게 아니었답니다. 사랑과 관심은 가족과 연인에게만 한정된 게 아니니까요. 무엇보다도 그 때가 지나고 나면 더는 이전처럼 그 '사람'을 매일, 매주, 수업과 모임 때마다 볼 수 있는 환경이 안 되잖아요. 당연하다고 여기던 게 하나도 당연치 않고, 마땅치 않다는 걸 알게 된 것이지요.




편지의 범주를 연락 또는 소통이라는 것으로 좀 더 넓혀 볼까요. 제가 먼저 문자를 보내든, 전화를 걸든, 메신저에 문자가 아닌 장문의 편지를 남기든, 어찌 되었든 간에, 먼저 상대에게 손을 뻗어 관심을 내보이지 않는 이상, 내게 먼저 연락 오는 경우는 드물어요. 같은 하늘 아래에 있어도 보는 건 커녕 목소리 듣는 것도 어려운데, 우리나라를 벗어난 경우야 말할 것도 없지요. 심지어 비행기로 반나절 걸려 오는 스페인에 살면서 내가 주기도 전에 받기를 바라는 건 욕심이 아니라 그냥 도둑놈인거에요.


그건 '네가 어떻게 나에게 이럴 수 있어'가 아니라 바쁘게 살고 있기 때문에 당연한 일이에요. 우리나라를 뺀 다른 나라들의 일상이 아무리 느리게 돌아간다 할지라도, 현대인인 이상 바쁘게 사는 건 디폴트인거죠. 그런데 그렇게 바삐 사는 와중에 생각지도 못한 때 먼저 연락을 주는 분이 있어요. 미쳤어요. 그 분들은 이 세상 인간이 아니에요. 천사라고 봐야 해요. 황송하게도 저에게도 그런 천사님들이 계셔요. 정말 저는 죽었다 깨나도 그 분들 못 따라가요.


그런 진솔한 마음이 담긴 연락은 빈도도 길이도 따지게 되지 않아요. 이미 제 마음의 화로에 들어와 끊임없이 군불을 지펴주고 있으니까요. 그래서 제가 스페인의 땡볕 여름에도 수족냉증을 앓을 지언정, 마음만은 한겨울에도 온기를 잃어버리지 않게 해 주시는 것이죠. 자신의 손길, 미소, 목소리, 향기, 그 모든 것이 마음과 시간, 정성을 다 녹여낸 연락에 맞닿아 있어요.


그 진심의 언어는 저에게 먼저 연락을 주는 분들 뿐 아니라, 실상 저의 연락을 받아 주는 분들도 마찬가지로 해당이 돼요. 왜냐고요? 제 전화를 받아 말을 하건, 메세지를 받아 확인하건, 자신의 황금 같은 시간을 내주어야 가능하니까요. 리액션은 부차적인 일이고, 일단 차단하지 않고 받아 준 것만으로도 고마움을 가져야 해요.




더 확장시켜 본다면 바야흐로 너튜브의 시대에 뭐만 하면 '구독, 좋아요, 알람설정에, 댓글까지'를 외치는 브런치를 포함한 소셜 미디어의 생태계를 한 번 떠올려 보아요. 내가 이렇게까지 힘과 정성을 쏟고 있는데 반응이 시원치 않다고요? 있다 한들 영혼 없이 한다고요? 글쎄요. 맞아요. 그리고, 아니에요.


그 어떤 것을 하든 간에 이미 눈길 한 번 봐 준 것 부터가 그 사람의 시간을 쓴 일이지요. 약간 과장해 말하자면 내가 그 사람의 것을 뺏은 것일 수도 있어요. 나에게는 너무나 중요한 것이지만, 그 사람에게는 전혀 관심도 없는 일인데, 제목만 보고 낚인 것이 될 수 있으니까요. '주식'을 보는 순간 저는 먹는 얘기인줄 알고 눌렀는데, 코스닥 지수를 언급하면 저는 바로 뒤로 가기를 누를 겁니다. 제가 잘못한건가요? 아님 제가 관심 없다고 주식시장이 덜 중요한건가요? 이게 대체 뭔 소리죠? 둘 다 아니잖아요.


입장 바꿔 생각해 보면, 저도 제작자인 동시에 소비자이니, 남보고 뭐라할 거 없어요. 제가 그 분들에게 얼마나 시간을 썼는지, 달리 말해 관심을 기울였는지를 보면 될 일입니다. 그러면, 반성을 하게 되거나 초연하게 되거나 하지요. 이 둘 중 하나만 가져도, 작은 반응 하나에 눈이 휘둥그레지고 감사할 일이 됩니다. 무감각해져 있다면, 초심으로 돌아가, 자신을 살펴봐야 타이밍일 수도 있어요.




연락과 소통이라는 넓고도 거창한 범위 까지 확장된 것을 다시 처음의 편지로 돌아와 보면, 결국 편지를 쓴다는 건 지극히 사소함에서 시작합니다. 사소함이란 말 그대로 자질구레하고 보잘 것 없는 것이지요. 하지만 우리는 알고 있습니다. 그 사소함이 너와 나만의 소중한 비밀이 된다는 것을요. 매일을 지지고 볶으며 울음과 웃음 속에 그렇고 그렇게 사는 나이지만, 그 덕에 너와 나는 다름에도 같다는 것을 알게 되었으니까요.


안경숙 작가의 <사랑이 나에게>는 본래 고흐와 셰익스피어와 같은 예술가들의 삶과 작품 속에서 우리를 돌아보고자 한 작품이었습니다. 그 중에 편지를 언급한 문장을 발췌해 필사하고, 미션으로도 편지를 써보게 해서 그런지, 고 최진실 씨의 영화 <편지>에 소개된 황동규 문인의 <즐거운 편지>가 바로 떠올랐습니다. 그 시를 알게 된 후, 한창 노트에 몇 번이고 적어보고, 혼자 배우처럼 낭송도 해보고, 삐삐에 녹음도 해 봤지요. 저만 그랬을까요. 가히 국민 애송시로도 손색이 없을 아름다운 문장입니다.


황동규 시인은 <소나기>의 작가 황순원 님의 장남이었기에 그의 어린 시절은 아버지가 남겼을 글이며 습작으로 가득찼을 글방에서 남다른 감수성으로 성장하셨을 거에요. 놀라운 건, 이 시를 발표한 때가 겨우 스무살 때입니다. 때묻지 않은 약관의 나이에 남긴 시가 훗날 비슷한 나이에 들어선 저의 마음에 들어와 지금까지 변치 않는 감동의 물결을 일렁이게 합니다. 거기서 다시 스무 해 가량을 넘겨 곱씹어 봅니다.


글귀에 학창시절의 추억을 되새깁니다. 그 무엇보다도, 저에게 편지를 시작으로 글쓰기의 즐거움을 깨우쳐 주신 삼십 년 전 서울 당서 국민학교 6학년 2반 담임을 맡으신 김경희 은사님께 깊은 감사의 마음을 올립니다.



1. 내 그대를 생각함은 항상 그대가 앉아 있는 배경에서 해가 지고 바람이 부는 일처럼 사소한 일 일것이나 언젠가 그대가 한없이 괴로움 속을 헤매일 때에 오랫동안 전해 오던 그 사소함으로 그대를 불러보리라.


2. 진실로 진실로 내가 그대를 사랑하는 까닭은 내 나의 사랑을 한없이 잇닿은 그 기다림으로 바꾸어버린 데 있었다. 밤이 들면서 골짜기엔 눈이 퍼붓이 시작했다. 내 사랑도 어디쯤에선 반드시 그칠 것을 믿는다. 다만 그때 내 기다림의 자세를 생각하는 것 뿐이다. 그 동안에 눈이 그치고 꽃이 피어나고 낙엽이 떨어지고 또 눈이 퍼붓고 할 것을 믿는다.


-황동규 <즐거운 편지>




사진> pixabay search-letter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