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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스페인 한량 스티브 Apr 18. 2021

오늘도 글을 씁니다

빈센트 반 고흐의 편지에서 발견한 공감과 진정성

화가의 의무는 자연에 몰두하고 온 힘을 다해서 자신의 감정을 작품 속에 쏟아붓는 것이다.

그래야 다른 사람도 이해할 수 있는 그림이 된다.

만일 팔기 위해 그림을 그린다면 그런 목적에 도달할 수 없다.

그건 예술을 사랑하는 사람들의 눈을 속이는 행위일 뿐이다.

진정한 예술가는 결코 그런 짓을 하지 않는다.

진지하게 작업을 해 나가면 언젠가는 사람들의 공감을 얻게 된다.


-<반 고흐 영혼의 편지>


De pligt van den schilder is het zich geheel in de natuur te verdiepen en al zijn intelligentie te gebruiken, zijn gevoel in zijn werk te leggen zoodat het voor anderen verstaanbaar wordt. Maar werken op verkoopbaarheid is niet precies den regten weg mijns inziens maar veeleer de liefhebbers verneuken. En dat hebben de echte niet gedaan maar de sympathie die zij kregen vroeger of later kwam om reden van hun opregtheid.


-<Verzamelde brieven van Vincent van Gogh>, Van Gogh, 31 juli 1882


The duty of the painter is to study nature in depth and to use all his intelligence, to put his feelings into his work so that it becomes comprehensible to others. But working with an eye to saleability isn’t exactly the right way in my view, but rather is cheating art lovers. The true artists didn’t do that; the sympathy they received sooner or later came because of their sincerity. 


-<The Letters of Vincent van Gogh>




Q. 지금 내가 몰두하는 일


몰두한다는 건 여러 상황으로 생각해 볼 수 있다. 


먼저, 월급 받으며 하는 일의 입장에서 보자. 직장에서 어떤 '일'을 하는 내가 몰두한다는 건, 딱히 좋아서가 아니다. 당장에 안 하면 안 되기 때문에 한다. 그렇지만 이왕에 하는 거 빨리 끝내서 개운함도 느껴보고 싶고, 잘 끝내서 고과도 잘 받고 싶다. 아무리 업무 상황상 루틴한 일이라 할지라도, 한 번 쌓이기 시작하면 비트코인 시세 저리가라 할 정도로 몰려 들기 때문에 몰두한다. 그렇지만 대개의 경우, 환경은 나를 가만히 두지 않는다. 


사무실에 앉아 있는 시간은 길어져 가는데 의외로 일은 잘 마무리가 안 된다. 끝내도 찝찝함이 신경을 곤두 세우게 만들기도 했다. 정말 끝난 걸까? 진짜 믿어도 되는 걸까? 내가 정말 잘 한 걸까? 업무의 특성상 현재 보다도 미래를 예측해야 하는 일이기 때문에, 늘 불확실함이 전제로 깔려 있었고, 하면서도 이게 잘 한 것이다, 아니다 단정 지을 수가 없었다. 


게다가 나 혼자만의 단독적인 일이 없고, 늘 수많은 유관부서와 연계되어 있기 때문에, 수많은 톱니바퀴 중 하나로서 나의 역할은 미미해 보이면서도, 한 번 잘못되었을 때의 책임은 일파만파, 나비의 날갯짓이 모이고 모여 태풍이라도 일으킬 것만 같은 트라우마에 빠지게 했다. 잘 쓰다가도 직장 얘기만 나오면, 이렇게까지 과장되게 적는 이유는 어쩌면, 나의 직장생활이 한 때 승승장구 해 가며 전성기도 누렸지만, 어느 순간 감당하기 힘들 정도로 끝모를 추락 속에 모든 기억과 정보가 산산이 깨지며 왜곡되었기 때문일런지도 모르겠다.  


어떤 성격의 업무가 되었건, 프로젝트의 크기에 무관하게, 조직과 직급에 상관없이, 그 모든 일들은 크게 뭉뚱그려 보면 다음과 같이 딱 두 가지로 모든 게 설명이 된다 : 누군가에게 쪼이고, 누군가를 쪼으는 일. 일 때문인건지, 사람들 때문인건지 모르겠지만, sarcasm 빈정과 cynisism 냉소, 두 단어가 내 하루의 대부분을 잠식하는 분위기로 점철되어야 한다는게 견디기 너무나도 힘들었다. 


제 아무리 수십장의 보고서를 만들고, 파워포인트를 제작하며, 온갖 데이터를 갈아 넣어 번듯한 표를 쓴다 해도 결국에는 주변 동료, 또는 팀원에게 끊임없이 확인하고 (쪼고), 재차 윗 사람에게 보고하고 깨지기를 반복하며 (쪼이며), 그 무한 루프에서 하나의 톱니바퀴에 불과한 자신을 발견하는 일이 반복되면, '몰두'는 하면 할 수록 역으로 인생을 더 낭비하게 만든다는 현타마저 느끼게 한다. (현타: 현자 타임의 준말, 욕구 충족 후 밀려드는 허무함이 대표적인 예이다)




과거에서 지금의 몰두로 바꾸어 다시 말해야 겠다. 전자가 직장의 일이라면, 후자는 내가 좋아서 하는 모든 것이라 하겠다. 즉, 어쩔 수 없어서가 아닌 가만히 있어도 자석에 철가루가 붙듯, 저절로 마음이 가기에, 내가 마음을 쏟는 모든 것들이다. 그건 취미로 바꿔 보아도 좋겠다. 또는 '내가 지금 이렇게 해야, 앞으로 이렇게 (잘) 될거야' 가 아니라, 지금 하는 것 자체만으로도 충분히 즐기고, 행복을 맛보며, 삶을 오롯이 느끼게 해 주는 모든 것들이다. 


무엇이 그럴까. 그 예를 떠올려 보는 것만으로도, 당장에 눈 앞에 그려지듯 상상이 되기에, 타이핑의 느낌이 달라진다. 좀 전만 해도 나는 투닥투닥 훈련소 구보 마냥 2/4 박자로 무겁게 뛰었다. 하지만 이제는 같은 2/4 박자 인데도 타라락타라락 거리며 가볍고 신난다. 한 번 살펴 볼까.


필사
작가들의 훌륭한 문장은 내 삶을 보다 풍성하고 다채롭게 만든다.
글쓰기
감정의 씨줄과 생각의 날줄이 만나, 나만의 옷감을 만드는 즐거움을 맛본다. 
피아노 연습
감성을 최대한 끌어 올리며 순수한 아름다움과 선율이 주는 위로에 흠뻑 빠진다.
누군가를 만나며 알아가는 것
내 인생에 최고의 의미를 부여하는 행위이며, 가장 큰 기쁨이자, 내가 살아가는 가장 큰 이유다.


이런 행위에 몰두해 있는 동안에는 시간을 잠시 잊는다. 그 전까지만 해도 시간은 내게 deadline을 시시각각 다가오며 알리는 무서운 저승사자였으나, 위에 언급한 일을 하는 동안에는 얌전한 고양이가 되어 내 곁을 떠나지 않는다. 덕분에 나는 오직 마음을 다해 집중할 수 있다. 집중하는 만큼 그 시간을 흐트러짐 없이 즐기며, 끝을 냈을 때는 뿌듯한 보람이 따라오며, 다음엔 또 어떤 즐거움이 있을까 하며, 다음을 기다리는 즐거움 마저 안겨다 준다.


살아가면서 이 보다 더 기쁜 일이 있을까. 생기발랄함 가득한 세 아이와 사랑으로 품는 아내, 나의 가족을 보는 것 만큼이나, 내가 몰입하는 네 가지는 생생하게 살아 내 마음에 따뜻한 바람을 불어 넣으며 더욱 생기있게 만들어 준다. 생기生氣는 비단 몰입에만 있지 않다. 지금 아내가 듣는 클래식 기타의 낭만적인 선율, 벽을 간접적으로 밝혀주는 주홍빛 조명은, 새벽에 나의 감정을 더 없이 따스하게 일렁이게 한다.


필사하며 문장 속에 내 삶을 성찰한다. 글쓰기를 통해 내 삶을 표출하며, 피아노 연습과 연주로 내 감성의 깊이를 느껴본다. 무엇보다도, 그저 스쳐 지나가 버리고 말았을 누군가의 인생 전체가, 그 날 그 곳에 내게 와 준다는 것은, 미진한 필력으로는 표현 못할 진실로 아름다운 세계이다. 그 웅숭깊은 만남을 위해 오늘도 변함없이 글쓰기에 몰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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