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스페인 한량 스티브 Apr 19. 2021

빵에서 행복을 맛보다

<다뉴브강의 축제>에서 건진 빵의 행복

빵을 만진다는 것은 하나의 행복이며,

빵을 쪼갠다는 것은 하나의 축제다.

그리고 빵을 입술로 가져간다는 것은...

빵이란 우리에게 이런 것이다.

빵을 먹을 때 우리는 경건한 마음으로

명상에 잠겨 하늘을 바라보면서

벌써 축제 분위기에 젖어 있다고 생각한다.


-<다뉴브강의 축제>콘스탄틴 게오르규




Q. 좋아하는 빵을 소개해 주세요.

A. 스페인에서 아침 식사로 가장 흔하게 먹는 빵은 pan tostada con tomate 빤 또스따다 꼰 또마떼, 줄여서 pan con tomate 빤 꼰 또마떼 에요. 빵 이름이 길어서 그런 어려운 빵이 다 있나 할 수도 있는데, 영어로 하면 bread with tomato 로, 말 그대로 구운 빵에 토마토를 얹은 거랍니다. 빵, 올리브 오일, 토마토. 이것만 있으면 준비 끝이에요.


바게뜨, 잡곡빵, 통밀 빵, 어떤 빵이든 토스터에 바삭하게 구워낸 뒤, 스페인 가정과 식당 어디서든 흔하게 보는 올리브 오일을 뿌리고, 거기에 싱싱한 토마토를 채에 갈아 스푼으로 얹고서, 취향에 따라 소금을 살짝 뿌리면 (저희 가족은 안 합니다) 완성입니다. 정말 간단하고 쉽죠. 올리브 오일을 뿌릴 땐 스푼, 포크 등으로 빵을 콕콕 찔러 주기도 해요. 그러면 오일이 잘 스며들어 풍미를 더욱 좋게 만들어 주거든요.


빵 위에 올리브 오일과 토마토 뿐이라 이게 뭐라고 할 수도 있는데, 한 입 먹어보면 와사사삭 하는 소리가 기분을 깨우고, 올리브 오일의 향이 부드럽게 감도는 가운데, 싱싱하고 시원한 토마토가 (전세계에 무려 만 여종에 달하는 토마토가 있다는 거, 알고 계셨나요?) 입 안에 들어오는 순간, 세상에서 제일 단순한 재료가 이처럼 단박에 내 기분을 행복감으로 충족시켜줄 수 있다는 사실에 놀라게 됩니다.


스페인에 오기 전까지 토마토가 그처럼 맛있는 것인 줄 몰랐어요. 스페인에 온 후부터 토마토는 식사 때만 먹는게 아니라 평소에도 물 대신 먹을 정도로 냉장고를 자주 찾게 되었답니다. 이렇게 쓰고 나니 무슨 토마토 홍보대사라도 된 듯한 느낌이네요. 우리나라에서만 나는 고유의 식자재가 있듯, 스페인도 이곳에서 내세우는 식재료들이 제법 있는데, 그 중 토마토, 알아줍니다.




여담으로, 독일에 사는 한국-스페인 부부가 있는데, 스페인에 올 때마다 꼭 사가는 게 있어요. 바로, 토마토와 올리브 오일입니다. 아니, 유럽 회원국이라 독일에서도 스페인 올리브 오일 얼마든지 살 수 있고, 독일의 유기농 농산물 얼마나 괜찮은데, 굳이 스페인에서, 그것도 다른 것도 아닌 그 두 개만 가방 가득 채워가는 이유가 뭐냐고 물으니, 스페인 친구의 대답이 아주 심플합니다. - '아냐, 스페인은 달라. No, Spain is different.'


스페인의 요리는 우리나라처럼 복잡한 조리 과정을 거치는게 드물고, 양념이 적은 편임에도 불구하고 미슐랭 식당이 그렇게나 많이 자리잡을 수 있는 가장 큰 이유는, 다름 아닌 식자재 자체가 워낙에 좋고 싱싱하기 때문이라는 얘기들을 해요. 어디고 그냥 산지에서 난 건 다 좋기 마련인거 아닌가 했지만, 역시나 경험은 책상 머리 앞에서만 미주알 고주알 생각하던 것을 앞지릅니다. 토마토와 올리브, 인공적인 첨가물 하나 없는 자연 그대로임에도 입맛이 확 사로잡히는 걸 몇 번 경험하고 나니, 저 역시 인정할 수 밖에 없더군요.


한국에서 하우스 재배와 관련된 분들을 모시고 스페인 남부의 알메리아 비닐하우스 기업을 방문한 적이 있어요. 토마토, 오이, 피망, 이 세 가지를 일 년 내내 재배하고 스페인과 유럽 전역으로 수출하는 가족 경영 기업인데, 그들의 자부심이 대단했습니다. 유럽의 식탁은 본인들(스페인)이 책임진다 했거든요.




다시 빵으로 돌아와 보자면, 스페인은 사실 빵과 밥 두 가지를 다 주식으로 삼는 독특한 곳입니다. 쌀요리를 먹을 때도 빵이 나오고, 식전에도 빵을 먹지만, 식후에도 케이크(빵)를 먹기도 하죠. 우리는 빵과 케이크 모두 제과점 또는 빵집에서 팔지만, 여기서는 구분해서 파는 경우도 제법 있답니다.


이전에 슬로바키아 살았을 때가, 그 곳 사람들이 스페인 보다 더 확실히 빵을 주식으로 하는 듯 싶어요. 식전에도 먹고, 식사 중에도 내오면서, 소스에 찍어 먹고, 소프에 넣어서 먹고, 그냥도 뜯어 먹고 했거든요.


유럽인들의 빵은 아시아인의 밥에 대칭되곤 하지만, 현지에서 느끼는 빵에 대한 현지인들의 인식 차이는 우리가 갖고 있는 선입견과는 좀 차이가 있어요. 우리에게 밥은 곧 식사를 의미하죠. 엄마가 막 뜸을 마치고 밥솥 뚜껑을 열어 고슬고슬하게 익은 밥을 주걱으로 후후 하며 저어줄 때 모락모락 올라오는 김은 집밥을 떠오르게 하는 추억이자, 엄마의 따뜻함이 그대로 담긴 정성 그 자체라 할 수 있을 겁니다.


반면, 유럽인에게 빵은 집에서 만들어 먹기도 하지만, 보통은 전문 빵집에서 갓 구운 빵을 사 먹습니다. 우리는 빵이 주식이 아니다 보니 간식 개념이라 단맛이 강한 경우가 많은데, 여기는 빵이 누룽지 마냥 담백하고 구수하며 고소한 맛이 많아요. 의외로 간식용 달달한 빵들은 우리나라를 포함한 아시아의 나라들보다 덜 발달해 있답니다. 빵은 식사 뿐 아니라 간식으로도 식탁 한 켠에 늘 있어요. 쉽게 손 닿는 곳에 있어 배가 출출하건 입이 심심하 떼어 먹으며 수시로 먹을 수 있는 먹을거리에요. 이들에게 빵이란 것은 한 끼를 넘어서 일상 24시간 내내 자리잡고 있는 저들의 생명 그 자체이지 않을까 하는 생각을 해 봅니다.




쌀은 밥으로 지어도 그 형태가 그대로 있지만, 밀은 추수 후 가루로 빻아지는 순간부터 본연의 형태는 사라지고 맙니다. 게다가, 가루가 된 상태에 물을 넣고 반죽 준비를 하고, 소금도 넣어 적당히 간도 맞아야 하며, 효모를 넣어 숙성도 시켜야 겠지요. 반죽이 되기까지 수없이 손으로 주무르며 치댈테고, 마침내 먹음직한 모양을 갖추고, 적당히 부풀고 나면, 뜨거운 오븐에서 넣어 노르스름한 색상으로 변하여 마침내 '빵'으로 재탄생을 합니다. (빵 전문가가 아니어서 순서나 들어가는 재료가 정확히 맞는건지는 모르겠네요)


그렇게 가루가 되어 자신의 형체를 잃어버린 밀은 빵으로 새롭게 변신하며 다시 우리 몸으로 들어가 가루가 되어 구석구석 필요한 영양소로 흡수 됩니다. 그래서 유럽권에 자리잡은 기독교의 성서에서 예수는 최후의 만찬에서 자신을 빵과 포도주에 비유한 것이었을까요. 순전히 문학적인 상상이지만, 먹는 것은 단순히 먹고 사는 행위를 넘어 문화, 종교, 예술 등 우리의 삶 전반에 무의식으로까지 자리매김 한 것이라 생각합니다. 너무 멀리 갔나요.


쓰다 보니, 마침 내일 아침 친한 형님 부부를 만나 아침 식사 할 건데, 뭘 먹어야 할지가 정해진 듯 싶네요. 여러분들도 집에서 (평일 말고) 주말에, 간단히 스페인식 아침식사 한 번 해 보시면 어떨까요. 빵이 구워지는 동안 행복도 따라 피어오르고, 입 안 가득 와사삭 거리는 소리에 행복도 바스락 거리며, 건강한 맛에 행복도 오래 오래 갈 겁니다.




집에서 준비한 빤 꼰 또마떼


대표적인 스페인 토마토 종류들 - 저는 Kumato 꾸마또를 제일 좋아합니다


pan tostada con tomate 스페인에 오시면 아침식사로 꼭 드셔 보세요


매거진의 이전글 오늘도 글을 씁니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