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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스페인 한량 스티브 Apr 20. 2021

하다 보니 그리 되었습니다만

성공에 대해 - 피터 드러커 <21세기 지식경영>

처음부터 끝까지 성공적인 커리어와 삶을 위해서는

당신 자신을 알아야 한다


-<21세기 지식경영> 피터 드러커


Q. 성공을 위해 어떤 경험을 쌓고 있는지, 경험과 일을 소개해 주세요.


A.

아직까지 성공에 이른 적이 없다


10년도 더 전인 사회 초년병 시절, 전 유럽 물류 법인에서 단 한 명만 선정되는 Best Employee 상을 받으며 나름 감격에 젖긴 했으나, 그걸로 성공이라 할 순 없을 것 같다. 그저 우연히 좋은 상사와 팀원을 만난 덕에 흐름을 잘 탔고, 전반적으로 순조로운 인생을 펼치고 있었을 뿐이다.


그러다 알파벳 순서상 슬로바키아 다다음에 있는 스페인으로 건너왔다. 제 아무리 스페인의 이미지가 관광대국이라 하더라도, 나는 가족을 이끌고 놀려고 온 것이 아니라 일하러 왔고, 이왕지사 다시 먼 길 떠나 왔으니, 제대로 팀장으로서 커리어를 탄탄하게 쌓아보자, 단단히 마음의 각오를 다짐하고 떠났다.


그러나 나는 자아 정체성이 뿌리째 흔들리다 못해 뽑히고 찢기고 갈렸던 나날을 보냈다. 그나마 내 자부심으로 은근 내세우던 수상 경력마저 무참히 밟혔고 뭉개졌다. 그렇게 인생의 고비를 맞이하며 당시 그게 우울증인지, 공황장애인 줄은 생각도 못하고, 그저 적응을 못해서 그런 것이려니 하고 넘겼다.


직장에서의 마음 고생은 그저 생채기 정도로 끝나지 않았다. 사람 앞에 서면 나도 모르게 몸이 덜덜 떨리고 정신이 아득해졌다. 현상과 원인에 대해서는 설명할 수 있었으나, 그 어떤 해결책도 치료법도 찾을 수가 없었다. 그것이야 말로 남들이 흔히 말하는 진짜 직장생활인가 보다 하고 여길 뿐이었다. 팀원 앞에서 상사에게 받는 인격모독과 욕설로 내 수치심은 이미 나락으로 떨어진 상태였다.    


그 전까지 아무런 문제 없이 잘 나가던 나의 위상과 명성이라는 비행기는 추락사를 당했다. 산산조각 나 전혀 형체를 알아볼 수 없었고, 일부 식별 가능한 잔해와 파편이 볼썽사납게 흩어져 있었을 뿐이었다. 당시의 나는 스페인에 있는 사람과는 전혀 어울리지 않는 백짓장 얼굴이었고, 아이컨택은 사전에만 존재하는 단어로 여겨졌었다. 어디에서건 사람에 대한 공포감이 팽배했고, 그 트라우마는 나를 자신감을 완전히 상실한 패배자이자 당장에 정신과 치료 상담이 필요한 중증 환자로 만들었다.


그럼에도 그 때는 너무 순전해서, 아니, 무식하고 무지해서 그런 것인 줄 몰랐다. 그런 건 다 남들의 얘기라고만 여겼었다. 그저 내가 잘하면 되는데, 내가 부족해서 그런 것이라며 모든 것을 내 탓으로만 돌렸다. 내 탓으로 여긴 부메랑은 내 손에 잘 잡히지 않고 나를 찍어 눌렀고, 그렇게 나는 숨도 못 쉬고 옥죄어져 갔다.


피할 수 없으면 즐겨라 라고? 그래, 맞는 말이다. 살면서 그 말을 떠올리며 이겨낸 적도 있었다. 하지만 불행히도 그 때만큼은 나는 피할 겨를도 없이 조직의 불도저에 쓸리고, 상사의 롤러에 압사되어 있었다. 탈출구는 안 보였다. 가족에게는 부끄럽고 미안해 차마 말 못하고, 주위 친구와 동료들에게 전화로 나의 상황을 가끔 전했다.


숨통이 트인 건 퇴사 덕이었다. 퇴사가 결정된 날, 나는 스티브가 아니라 데이빗이었다. 구약 성경에 나오는 다윗 말이다. 오벧에돔에 있던 궤를 다시 들여오던 날, 왕인 그는 체통도 없이 옷이 벗겨질 정도로 격렬하게 춤을 추었더랜다. 그 희열을 나도 느꼈다. 그렇게 나는 스페인에서 인생 2회차를 맞이했다.




목표 지향적이지도 않고, 성공을 위해 가열차게 달려가는 것도 왠지 나 자신이 아닌 것 같다. 작은 계획을 세워볼 수는 있으나, 수많은 자기계발서에 나오는 것처럼 5년별, 10년별 중장기 플랜을 짜는 건, 좋다는 것은 인정하지만, 나와 맞지 않음 또한 고백해야겠다.


하다 보니, 그리 되었다.


결론이라고까지 할 수는 없지만, 강산이 네 번 변하는 동안 깨달은 바는, 인생에서 성공이란, 환경에 의해서든, 내 의지에 의해서든, 억지로가 아닌 즐겨, 자주하는 것에서 '하다 보니' 그리 된 경우가 많다. 유튜브 떡상이 되었건, 미디어에 소개된 성공신화에 오른 분들이건, 하다 못해 어렸을 적 읽어본 위인전에서건, 의외로 주위에 성공한 분들의 면면을 보면, 거대담론을 펼치거나 깨알같은 미션수행을 통해서라기 보다는 의외로 그 일을 계속 하다 보니, 그 분야의 정상에 오른 경우가 많지 않던가. (아, 혹시나 하는 마음에 씁니다 - 저도 세계석학들의 대담이며 오늘의 일 (to do list) 작성하고 그으며 클리어 하는거, 좋아합니다, 오해 마셔요)

 

내 경우도 돌아보면, 비록 목숨을 걸 정도는 아니지만, 그렇게 일이 좋아서, 아니, 그 전에 그 사람이 너무나 좋아서, 전적으로 나 자신을 믿고 맡길 수 있었기에, 밤낮을 가리지 않고 일에 매진할 수 있었다. 누가 시켜서가 아니었다. 자기경영서에 나와 있는 격언들이 오롯이 내 직장생활에 녹아져 그대로 체화되는 걸 느꼈다. 내가 대단해서가 아니라, 나를 이끌어준 현지 상사와 한국 상사 두 분의 전폭적인 지지 덕이다. 두 분이 깔아놓은 멍석에서 나는 신명나게 놀이판을 즐겼다.


그렇게 하다 보니 일에 몰입하는 나를 보았다. 직장을 떠나도 마찬가지이다. 그저 취미로 치던 피아노였는데 어느새 내 자식에게 가르쳐 주고 있다. 글로 마음을 전하던 게 좋아서 쓰다가 이렇게 브런치에 입문도 했다. 무엇보다도, 사람을 만나고, 사람과 나누며, 사람을 찾는 그 일에 진심이다. 사람들과의 교류를 통해 인생을 배우는 그 순간이 좋다.


내 세상과 당신의 세상이 만나 더 큰 세상을 이루고, 우주를 확장해 가는 그 과정이 나이를 먹어갈 수록 가장 큰 만족이자 행복이 된다. 그런 보람찬 순간 순간을 소셜 미디어의 포스팅과 댓글 덕에 소소한 재미를 경험했고, 브런치 작가가 된 이후 보다 진중성 가득한 분들과의 교류로 생각을 더해갔다. 그 전에 문화 가이드로서 사람들을 만나 마음껏 나누고, 사랑하고, 어울릴 수 있어 좋았다. 코로나로 막혀 있기에 더욱 그립고 간절해 진다.


내 인생의 성공은 돈을 많이 버는 것도, 회사의 중역자리로 올라가는 것도 아니다. 내게 영감을 주는, 내가 살아있음을 느끼게 해 주는 소중한 사람들을 끊임없이 만날 수만 있다면, 나는 그것을 성공이라고 부르고 싶다. 그렇기에 나는 성공을 이른 적은 없으나, 이룬 적은 있다. 실은 그 보다 더 원하는 게 있다.


성공은 실패라는 이면을 떠올리게 한다. 남들이 평가하는 여러 기준에서 성공이니 실패니 하는 것이 있겠지만, 나는 내 소중한 인생에 그런 잣대를 들이밀고 싶지 않다. 나도 내 인생을 판단하고 싶지 않고, 내 인생 귀한 만큼 당신의 귀한 생애에 대해서 왈가왈부 하고 싶지 않다. 내가 내 몫을 담당하듯, 그것은 오롯이 당신에게 주어진 값진 선물이다.


그래서 내 인생에 성공을 위해 무엇을 하고 있느냐고 묻는다면 다시 이렇게 답해 보겠다.

부모님 덕에 세상에 태어나 당신을 만난 것만으로도 이미 내 인생은 성공했고,

인생 성공을 이뤄준 당신을 놓치지 않고 만나는 것이 내가 하는 모든 것이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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