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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스페인 한량 스티브 May 12. 2021

여행자를 위한 스페인 역사 I

암기가 아닌 스토리텔링으로 떠나보는 스페인 이야기

2년 전 아직 봄을 맞이하기 전, 겨울의 기운이 남아 있던 2월이었다. 역사기행단을 이끌고 스페인에 오신 역사 전공 교수님의 말씀이 잊혀지지 않는다.


"스티브, 역사에 객관적이라는 건 존재하지 않아요, 의외죠? 우리가 달달 외우는 연도도 실은 나중에 뒤집혀 밝혀지는 일이 있고, 그 연도 차이를 두고 교수와 제자 사이조차 자기 주장 고집하다 연을 끊는 경우도 있거든요. 그러니 언제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 그런 연도나 숫자에 너무 신경쓰지 않아도 돼요. 중요한 건 객관적 사실 보다도 현재를 사는 우리에게 남겨진 의미와 해석이에요. 그런 점에서 스티브는 같은 걸 보더라도 전달하는 감수성이 상당히 풍부해요, 여자도 아닌 남자인데 감성 깊은 해석이 남달라요. 그러니 한 번 설명으로 그치지 말고 스토리텔링으로 인스타 같은 sns에 글도 자꾸 써 보세요."


그 분은 정말 버스 안에서도 쉬임없이 글을 쓰셨다. 인스타에 글을 쓰시면서 그 중에 반응이 제법 괜찮은 걸로 칼럼글을 내고 계셨다. 인스타에서 모르는 사람들이지만 같은 관심사로 모인 분들과 댓글로 소통하는 재미를 말씀하시며 나보고 인스타 계정을 만들라고 촉구하시더니, 급기야 그 편집장님께 연락할테니 스페인 문화 관련 칼럼을 써 보라 하셨다.


그냥 좋은 자극으로만 생각했는데, 그 분의 추진력은 쿠팡 로켓 배송 저리 가라 할 정도로 빠른 실행력이었다. 바로 착수에 들어가더니 본인이 기고 중인 [충남일보]의 편집장님과 연결까지 시켜놓고 한국으로 들어가셨다. 그게 내가 스페인의 칼럼니스트가 되어 충남일보에 <스티브의 스페인 문화 프리즘>이란 타이틀로 40회를 연재하게 된 계기이다.


개인의 기록이 모이면 일기가 되고, 출간하면 책이 되며, 동시대인들의 기록이 모이면 그것이 역사가 된다. 그것이 후대에 전해지고 의미를 더하고, 새로운 해석을 가미하며, 현대를 살아가는 우리의 삶에 적용할 점을 찾음으로 우리는 역사를 되짚어 보게 된다. 태정태세문단세 예성연중인명선 광인효현숙경영 정순헌철고~순, (혹시나 해서 써 놓고 다시 검색해 봤는데, 다행히 맞았다) 십이간지를 외우듯, 조선 역대 임금명을 줄줄이 읊어 보는 것도 소싯적 나름의 재미가 있었다.


그렇지만 별다른 감흥도 주지 못하는 단편적인 암기 보다는, 그래서 그 분들이 이룬 업적이 지금의 우리에게 어떤 영향을 주었는지, 지금의 우리는 그걸 어떻게 바라봐야 하는지 등등 역사 단원마다 마지막 꼭지에 나오는 무엇 무엇의 "의의"가 늘상 제일 흥미로웠던 게 기억에 남는다.




유네스코 문화유산만 마흔 여덟개에 달하는 스토리텔링 부자인 나라 스페인의 도시들을 다닐 여행자로서 알아야 할 스페인의 역사는 어떻게 될까. 그리고 그 안에서 나는 어떤 프리즘으로 바라보고 그 해석을 얻을까. 우리에게 나름 익숙한 키워드로 이 나라의 역사를 간략히 살펴보자. (간략히 라고 썼지만, 그래도 할 말은 해야 하기에, 어느 정도 길어질 수밖에 없어 미리 양해를 구합니다)


0. 스페인의 진짜 이름과 이베리아 반도

일단 본격적인 역사에 들어가기 전에 이들의 정체성부터 다시 한 번 확인해 보자. 우리가 아는 스페인은 사실 영어로 부르는 이름이고, 본인들은 에스빠냐 España라고 부른다. 영어와 같은 알파벳을 쓰지만, 알파벳 N 위에 물결 부호를 붙인 < Ñ ñ 에녜 > 라고 발음하는 문자를 별도로 갖는다.


별 것 아닌 것 같아 보이지만, 이는 스페인어만의 고유 특성으로, 언어학자들은 이 단어 하나만으로도 스페인의 언어적, 문화적 특성을 가늠하는 글을 쓰고, 아예 스페인어의 날이라며 세계 책의 날이자 세르반테스의 사망일자인 4월 23일을 따로 기념할 정도다. 우리에게 한글날이 있어 세계적으로 우수한 우리 고유의 문자를 기념한다면, 이들은 자기네 언어를 두고 스페인과 멕시코, 페루, 아르헨티나 등 브라질을 제외한 중남미 국가 전체에서 국제적인 행사를 갖추는 셈이다.


여러 민족이 뒤섞인 유럽의 나라가 서로 나라와 국민이라는 틀을 가지기 전까지 다 두루뭉술하게 섞여 살아 거기서 거기인듯 비슷하게 보여도, 무언가 독특하게 다른 스페인의 역사는 이베리아 반도에서 주로 판을 짰다. 우리 민족의 이름이 한민족이라서 나라 이름도 대한민국이고, 살고 있는 땅도 한반도라고 하는 걸 연상해 본다면, 스페인의 역사가 펼쳐지는 이베리아 반도에는 바로 이베리아 민족이 있었음을 쉽게 짐작할 것이다. 참고로 유행을 타는 중인 이베리코 삼겹살의 이베리코ibérico는 이베리아Iberia의 형용사 형이라고 보면 된다.



1. 선사시대 - 알타미라 벽화

이베리아 반도에 인류가 발을 디딘 건 기원전 80만 년 경으로 올라간다지만, 식별이 가능한 건 기원전 만 오천여년 전 알타미라 동굴에 벽화를 남긴 것으로 추정되는 구석기 시대의 크로마뇽인이다. 스페인에 알타미라가 있다면 프랑스에는 라스코가 있는데, 프랑스보다 제법 앞선 1879년에 발견되어 학계에 발표했다. 고고학을 취미 삼던 사르투올라 백작이 본인의 딸 마리아를 데리고 동굴에 갔다가, 일곱 살 딸이 문득 등불을 위로 들었다가 그곳에 소가 그려진 걸 보고 놀라 아빠에게 위를(Alta) 보라고(Mira) 한 게 이 동굴벽화 작명의 시초였다.


스페인에서 가장 흔한 이름을 가진 겨우 일곱 살 아이가 역사에 획을 긋는 뜻밖의 일을 할 줄이야, 아빠나 딸이나 당시에 감히 짐작이나 했을까. 귀족으로 태어나 한량놀음만 하는 줄 알았다가 뜻밖의 세계 역사계에 위대한 발견을 안긴 그 백작이, 어쩌다 한량이 된 나로선 그저 부러울 따름이다.


이처럼 상당한 유산을 남긴 크로마뇽인은 뒤로 조용히 빠지고, 북아프리카에서 올라온 이베리아인과 프랑스와 영국 일대를 휘젓는 켈트족이 기원전 천 년 경 등장해 피레네 이남의 스페인에까지 내려오면서 스페인은 이베로-켈트, 또는 셀티베로 민족을 형성하게 된다.



2. 페니키아, 카르타고, 로마, 서고트의 등장 (갈 길이 바쁘다)

A, B, C, D... 알파벳의 발명자로 알려진 페니키아인은 지중해 무역을 놓고 스페인까지 들어온다. 실은 이들이 이베로Ibero 강가에 사람이 사는 걸 보고 일컫는 말이 앞서 언급한 이베리아Iberia의 기원이였다. 무역을 하다 아예 식민지를 건설했다. 그게 기원전 10세기였다.


페니키아인들의 뒤를 이어 기원전 6세기에는 카르타고인들이 들어와 다시 식민지를 건설하고 다스리기 시작한다. 서쪽 땅끝, 버려진 곳이라 여겨 깃발만 꽂으면 임자가 된다고 생각한거였을까. 하지만 북아프리카를 중심으로 무역도시로서 일어난 카르타고에 뒤이어, 신생국 로마가 일어났다. 로마와 카르타고는 3차례에 걸친 포에니 전쟁을 치루었고, 카르타고는 완전히 역사에서 지워진다.


로마는 전승의 대가로 이베리아 반도를 자기들의 속국으로 삼고 이름도 히스파니아Hispania 라고 명명한다. 여기에서 지금의 에스빠냐España가 나오게 된다. 로마인이 남긴 수도교를 비롯해 원형극장, 신전 등이 아직까지 남아 있어 2000년에 가까운 세월 틈틈이 보수작업으로 잘 보존한 이들의 노력을 보면 가상할 정도다.


유형의 유산 뿐이랴. 로마의 첫 황제, 시저도 이 곳의 총사령관으로 부임한 바 있고, 네로의 스승인 철학자 세네카는 스페인 꼬르도바 출신이며, 심지어 로마의 오현제 중 무려 2명이 스페인 세비야-이탈리카 출신이라는 점 또한 스페인이 로마의 영향 하에 있었음에도, 당당히 자신들의 역사가 로마의 기록에 매우 중요한 위치를 차지했음을 오늘도 외치고 있다.


유럽에선 우리의 시각에서 볼 때 약간 독특한 풍조가 있는데, 그 중 하나가 각자 본인들이 로마의 후예임을 자처하고, 로마의 적자임을 내세운다는 점이다. 자기 나라 고유의 문명과 문화 유산이 있음에도 유럽하면 으레 그리스-로마 문명을 근간으로 삼아서 그런지, 유치원 때부터 이집트 신화와 더불어 그리스 로마 신화는 물론, 로마의 역사와 빛나는 문명에 대해 배운다.


우리로 치면 한-중-일 세 개의 나라만으로도 역사적으로 서로 대놓고 치열하게, 또는 미묘한 정치적 이슈로 잠시도 숨 돌릴 틈 없이 첨예하게 대립해 왔기에, 외국인이 우리를 보고 중국인이라고 하면 대번에 질색팔색 하는 경우가 많다. 제 아무리 세 나라가 공히 한자 문화권에 속해 있다 해도 우리는 우리만의 고유문화로 절대 섞이지 않을 순수 혈통을 강조해 왔기에, 몽고에 저항한 삼별초를 자랑스러워하고, 이순신 장군은 성웅으로까지 칭송되어 해마다 영화와 드라마로 새롭게 우리에게 다가오고 있다.


심지어 신화로서도 우리는 단군의 후손임을 내세우는 배달의 민족이지, 누군가 우리가 중국의 황허 문명을 훌륭히 계승했다고 한다면, 안 그래도 껄끄러운 마당에, 당장에 동북공정에 세뇌당한 자라며 본인 뿐 아니라 온 집안이 가루가 되도록 까였을 것이다.


이런 미묘한 기류와는 다르게, 유럽에서는, 살짝 조미료를 친다면, 각 나라마다 로마의 지배를 찾아내기 위해 혈안이 되어 있을 정도로, 로마인의 후예라는 것에 자부심을 갖는 경우가 많다. 물론, 그들이 그리워 하는(?) 로마란 로마'제국'을 건설해 그 당시 사람들에겐 세계 전부와도 다름 없는 광활한 영토를 지배했던 로마를 말함이지, 현재 이태리의 수도 로마라든가, 말 보다 손이 더 바쁜 이태리 사람들이 아님은 분명히 해 두기로 하자.


서로마 제국이 게르만 장군 오도아케르에 의해 476년 멸망하자, 이번엔 게르만족의 분파인 고트족, 그 중에서도 서고트인이 서쪽땅 이베리아에 들어오기 시작한다. 참고로, 동고트족은 동쪽에 해당하는 이탈리아 (아펜니노) 반도를 점령한다.


5세기에 스페인에 왕국을 세운 서고트족 또한 내부 분열을 거듭하다, 711년 북아프리카에서 넘어온 무슬림, 또는 무어인의 칼날에 멸망하고, 북부 아스투리아로 쫓겨 올려가 그 곳에서 잃어버린 땅을 되찾자는 운동을 벌인다.




얘기가 길어져서 일단 여기까지 끊어 보기로 한다. 아래 사진은 스페인에 남겨진 로마인의 유산, 수도교이다. 스페인의 수도 마드리드에서 북부로 한 시간 남짓 올라가면 카스티야-레온 이라는 옛 스페인 왕국의 이름을 딴 자치지방의 주도 세고비아에서 만나볼 수 있다. 세고비아는 수도교와 디즈니 백설공주 성의 모티브가 된 아름다운 알카사르, 그리고 대성당의 귀부인이라 별명을 갖고 있는 세고비아 대성당으로 유명하고, 음식으로는 꼬치니요 라는 새끼돼지 구이로 명성이 알려져 있다. (2편에 계속)


좌측 알카사르와 우측 수도교
새끼 돼지 구이 요리 (꼬치니요) 그리고 세고비아 대성당의 내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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