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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루나 May 17. 2021

우리 집에 아기 고양이가 온다

유기묘 임보 가정의 시작

고양이에 대한 첫 기억은 초등학생 때이다. 하교 후 집에 도착하니 아파트 현관 계단에 길고양이가 있었다. 그때는 고양이가 무서워서 현관으로 들어가지 못하고 한참 서성이다 고양이가 사라지고 나서야 집에 갔더랬다. 그렇게 동물은 대체로 다 무서워했는데 몇 년 전 지인의 강아지를 주말 동안 임보한 경험 이후 강아지와 고양이는 사랑해 마지않는 존재들이 되었다. 


남편과 나는 아직도 몇 년 전 지인의 강아지가 머물렀던 공간들을 회상하고 그때 나누었던 눈빛과 경험에 대해 자주 이야기를 하곤 한다. 다른 방에 잠시 머물다 강아지가 있는 공간에만 가도 팔짝 뛰며 반겨주던 강아지였다. 무릎 사이 고개를 파묻고 엉엉 우는 척을 했을 땐 나의 무릎 사이로 작은 코를 들이미며 울지 말라고 낑낑대기도 했다. 3일을 같이 지낸 강아지를 3년이 훌쩍 넘은 지금도 참 많이 그리고 자주 생각한다. 사랑을 받고 사랑을 준다는 건 얼마나 대단하고 또 끔찍한 일일까.


고양이들을 사랑하게 해 준 고양이도 있었다. 몇 년 전 동네를 산책하다 불쑥 우리 앞에 고양이 한 마리가 길을 막아선 적이 있다. 우리를 보고도 도망가지도 않고 한참 배회하던 고양이가 마음에 걸려 다음 날 사료 캔을 사서 그 자리로 갔다. 이름을 몰라 무턱대고 '고양이야 고양이야' 하고 부르다 보니 정말 거짓말처럼 그 고양이가 나타났다. 검은 털에 불규칙한 노란 털들이 얼룩덜룩 있는, 첫눈에는 아주 예뻐 보이지는 않았던 고양이였다. 곧 우리 눈에는 세계에서 최고로 예쁜 고양이가 되었지만 말이다.


피곤한 밤에도 우리는 늘 고양이가 있는 자리로 갔다. 사료 캔을 주고 늦가을 날씨에 차가워진 털을 쓰다듬다 보면 놀랍도록 따뜻한 체온이 느껴졌다. 며칠이 지나자 어느새 무릎에 자연스럽게 앉게 된 고양이를 어느 날은 내 몸과 외투 사이에 넣어 꼭 안아 보았다. 추운 날이었기에 잠시라도 그렇게 고양이가 따뜻했으면 좋을 것 같아서였다. 아무런 저항도 없이 고양이는 외투에서 얼굴만 내민 채 커다란 동공으로 한참 동안이나 나를 빤히 쳐다보았다. 서로 눈을 마주치고 있던 그 순간은 온 세계가 고양이의 눈에서 빛나는 듯했다.


고양이 알러지가 있는 남편은 돌아오는 길에 늘 재채기를 했다. 눈이 가려워 눈물을 흘리기도 했다. 한 번은 우리처럼 그 고양이에게 밥을 주던 다른 이웃을 마주쳤는데 우리가 고양이를 돌보았던 걸 알고, 병원비와 중성화비를 모두 부담해줄 테니 입양만 해달라고 했다. 자신은 집에 이미 고양이가 4마리가 있어 더 이상 입양은 힘들다며 말이다. 너무 품고 싶었지만 재채기하며 눈물을 흘리던 남편 생각에 선뜻 그러겠노라고 말할 수가 없었다. 곧 그 고양이는 그 이웃의 도움으로 다른 곳에 입양이 되었다. 그리고 우리는 여전히 그곳을 지날 때면 고양이와 보냈던 그 저녁들을 그리워한다.


그런 우리 집에 고양이가 온다. 얼마 전 SNS를 통해 동네에서 길고양이를 돌보는 봉사단체가 있다는 걸 알았다. 그들에게 임보 가정으로 등록해두니 이틀 전 연락이 왔다. 두 아기 고양이를 구했는데 지금은 병원에서 검사와 치료를 받고 있는 중이고 긴급 치료가 끝나면 돌봐줄 임보 가정이 필요하다고 했다. SNS를 통해 고양이들의 사진을 볼 수 있었다. 무슨 사연인지 죽은 어미 고양이 옆에서 구출된 두 마리의 아기 고양이였다. 


그 고양이들이 우리 집에 올 수 있다는 걸 들은 게 토요일의 일이다. 오늘이나 내일 치료가 마치면 우리 집으로 올 것이다. 까만 얼굴 가운데 하얀 털이 나있는 얼룩 고양이다. 배냇 털이라 아직 털이 삐쭉삐쭉 고르지가 않다. 그 털 사이로 작은 분홍 코도 있다. 나는 그 고양이들의 사진을 보고 또 보다 그 고양이들이 컸을 때 얼굴이 또 궁금해 비슷한 털 색깔의 성묘들의 사진도 찾아보았다. 


남편의 알러지 때문에 오래 고양이를 키울 수는 없어 임보만 신청해둔 것인데 벌써 고양이와의 이별을 생각하면 마음이 슬퍼진다. 고양이도 처음인데 아픈 아기 고양이라니, 봉사단체에서 돌보는 방법을 다 알려준다고는 했지만 긴장이 되기도 한다.


고양이야, 어서 와. 

기다리고 있어. 

벌써 아주 많이 보고 싶고 그리운 아기 고양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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