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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루나 May 21. 2021

외국에 산다는 건

외로움에 외로운 줄도 모르고

앉아 있으니 뭔가는 쓰고 싶은데 글이 쉽사리 이어지지 않아 작가의 서랍을 열어 보았다. 4년 전인 2017년에 쓴 글이 눈에 띄었다. 엄마와 함께 보낸 겨울의 일이다.




멀리 사는 딸을 보겠다고 13시간을 날아서 엄마가 왔다. 크리스마스가 다가오는 겨울이었다. 엄마의 비행기는 새벽 5시에 도착했다. 겨울 새벽에 엄마를 모시고 집에 오고 나니 3시간 뒤면 출근을 해야 한다는 사실이 믿기지 않았다. 엄마와 함께 보냈던 시간 속 겨울에 나는 항상 학생이었다. 그래서인지 6년 넘게 해왔던 일상이지만 엄마를 두고 출근을 해야 한다는 게 문득 낯설었다. 그 낯선 겨울 아침 익숙한 엄마의 반찬으로 오랜만에 밥을 챙겨 먹고 회사로 갔다.


엄마는 홀로 있는 낮시간에 동네도 산책하고 시내도 구경하다 하루는 버스를 타고 3시간 정도 떨어진 도시로 여행을 떠났다. 엄마가 사전에 말도 없이 혼자 다른 도시로 여행을 갔다는 사실에 큰 스트레스를 받았다. 하루 종일 노심초사하던 내게 엄마는 버스를 타고 밤 11시쯤 도착할 예정이라고 통보해왔다. 집에서 엄마가 도착하는 곳까지는 걸어서 30분 정도 거리였다.


엄마가 없는 집에 퇴근을 한 나는 저녁을 먹고 쉬다가 엄마가 오는 시간에 맞춰 역으로 걸어갔다. 가는 내내 그 무렵 한창 자주 듣던 아스트로비츠의 <흔들흔들>을 들었다. 시각적인 노래이다. 들을 때마다 새벽의 강가, 서늘한 하늘, 해가 뜨기 직전의 별들이 눈 앞에 펼쳐진다. 잔을 강물에 던지고 조각배에 오르는 내가 보이기도 한다. 나는 이 노래의 화자와 조각배를 타고 노를 저으며 엄마를 마중나갔다.


엄마가 도착하는 곳은 터미널이 아닌 버스의 중간역으로 그냥 정류장 같은 곳이었다. 노란 가로등 불빛이 내려앉은 정류장에는 나 홀로 있었다. 그 노란 불빛을 맞으며 멀리서 버스가 올 때마다 나는 엄마가 내리는 장면을 상상했다. 엄마는 삼십 분이 지나도 오지 않았다. 대신 집에 있던 남편에게서 엄마가 집에 도착했다는 연락을 받았다.


내가 정류장에 도착하기 직전 엄마는 정류장에 내렸고 내가 기다릴 걸 모르고 그냥 집으로 간 것이다. 나는 <흔들흔들>을 반복해서 들으며 삼십 분 넘게 홀로 정류장에 앉아 엄마를 기다렸다. 노란 가로등 불빛과 간간히 지나는 차 말고는 오롯이 혼자였던 시간과 공간이었다. 엄마 걱정에, 또 그 공간이 주는 쓸쓸함에 참 길었던 삼십 분이었다.




이 글을 쓴 이듬해 나는 퇴사했고 한국 친정집에서 가서 6개월 정도를 살았다. 새로운 걸 배우며 새로운 사람들을 만나고 새로운 일을 하기도 했다. 남편과 단 둘만 있던 2인 가정에서 살다가 친정부모님, 오빠, 예비 새언니, 직계가족만큼이나 가까운 사촌오빠 부부들로 주변 가족들이 늘어났고, 거의 30대에 이르러 알게 된 직장 동료나 지인들만 있던 주변인들도 오랜 동창, 대학 친구, 선후배 등 오랜 관계들로 다시 채워졌다. 나의 어린 시절을 기억하는 이들이었다. 어떤 일을 말하기 위해 많은 부연설명이 필요 없는 관계들이었다. 그때 문득 내가 참 외로운 줄도 모르고 외롭게 살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외국에 산다는 건 외로운 일이었다.


1년에 한 번은 한국에 가려고 하는 편인데 코로나로 한국에 못 간지가 거의 2년이 되어 간다. 엄마를 2년 간 보지 못했다는 뜻이기도 하다. 가려고 하면 갈 수야 있겠지만 선뜻 선택하기가 어렵다. 지난 2~3년 간 한참 나를 괴롭혔던 외로움이라는 감정은 이제 무뎌졌다. 체념에 가까운 것이기도 하고 어차피 보편적인 인간의 감정 중 하나이기 때문에 스스로 지나친 연민을 가지지 않기로 했다. 엄마도 딸 생각에 종종 외로우실 때면 그렇게 담담하셨으면 한다. 올해는 엄마가 꼭 보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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