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학생 시절 투니버스에서 틀어주던 <슬레이어즈>를 무척 좋아했다. 이 만화를 좋아했던 가장 큰 이유 중 하나는 바로 등장인물 제로스 때문이다. 늘 생글생글 웃는 반달눈에 말투도 능글맞고 가벼워 보이는 캐릭터이지만 알고 보면 냉정한 면도 많고 마법도 잘 쓰는 강한 캐릭터이다. 나는 제로스 같은 사람이 되고 싶었다. 대충 하는 것 같지만 실은 엄청 잘하는 그런 사람 말이다.
반달눈 제로스와 냉혈한 제로스
스페인 화가 중에 '화가들의 화가'라 불리는 사람이 있다. 바로 17세기 스페인의 궁정화가였던 디에고 데 벨라스케스이다. 인상주의 화가의 대표로 불리는 마네나 20세기 천재화가로 불리는 피카소를 비롯해 많은 화가들이 그의 작품에서 영감을 얻은 그림을 그렸다. 이런 벨라스케스의 가장 위대한 역작은 바로 마드리드 프라도 미술관에 있는 <시녀들>이라는 작품이다.
벨라스케스의 <바야돌리드의 파블로>(좌)와 이 그림에 영감을 받아 마네가 파리 살롱에 출품했던 <피리부는 소년>(우)
프라도 미술관에 가면 2층의 가장 크고 넓은 전시실에 <시녀들>이 걸려 있다. 가장 비싸고 중요한 그림이기 때문에 그렇게 큰 방에 전시해 둔 것일까? 그런데 그림 밑에 보면 양발바닥 모양의 스티커가 앞쪽에 하나 뒤쪽에 하나 이렇게 두 개가 있다.바로 친절한 프라도 미술관의 큐레이터가 '이 그림은 앞에서 한번 뒤에서 한번 감상해보시오'라고 알려둔 표식이다.
우선 앞에서 보면 이 그림이 대체 왜 그렇게 대단한 그림인지 잘 이해할 수가 없다. 설명에서 본 대로 열심히 등장인물들에 대한 스토리를 찾는다. 유명한 그림이라 한국어로 검색해도 정보가 많다. 등장인물과 얽힌 역사까지 다 알고 봐도 여전히 이 그림이 왜 그리 대단한지는 썩 와닿지 않는다. 어쨌거나 이 그림은 고전 작품이고 우리 눈은 태어나면서부터 이미 현란한 시각물에 노출된 채 살아왔기 때문이다.
벨라스케스의 역작 <시녀들>
큐레이터를 믿고 그림의 소실점에 눈을 맞추며 뒤로 물러나 보면 비로소 이 그림이 주는 놀라운 수수께끼가 풀린다.
다소 밋밋하게 보이던 인물들에 입체감이 생겨 원근법이 뚜렷이 드러남은 물론이거니와 그림 속 배경이 된 화실의 넓이가 엄청나게 커지고 천장이 끝없이 높아지는 느낌이 들기 때문이다. 작은 공간에 답답하게 모여 있는 것 같았던 인물들이 그제야 실은 엄청나게 큰 방 안에 있었다는 게 실감이 된다. 당연히 엄청 큰 방이다. 이 방은 그림 속 거울에 조그맣게 비친 펠리페 4세 국왕 부부의 아들이었던 발타사르 왕자의 방이기 때문이다. 왕자는 성년이 되지 못하고 죽고 말았는데 왕자가 죽고 난 뒤 그 방을 친애했던 궁정화가 벨라스케스에게 작업실로내주었다. 결국 이 그림이 가장 큰 방에 전시된 이유는 이렇게 멀리서 그림을 보라는 미술관의 배려이다. 모든 게 가까이 자세히 본다고 다 알게 되는 건 아닌 모양이다.
이 그림과 비교해서 플랑드르(현 벨기에 서부~네덜란드) 지역의 세밀화를 보면 어떨까? 마침 프라도 미술관에는 판 데르 베이던이라는 플랑드르 화가의 <십자가에서 내려지는 예수님>이라는 작품도 전시되어 있다. 이 작품은 <시녀들>과 달리 가까이서 봐야 한다. 가까이서 눈을 크게 뜨고 봐도 등장인물의 옷감 표현이마치 진짜처럼 생생하다. 특히 오른편에 그려진 모피는 혹시 진짜 털을 갖다 붙인 게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 정도이다. 손의 표현은 또 어떠한가. 핏줄과 근육까지 잘 표현된 덕분에 진짜 손을 보는 듯 하다.
판 데르 베이던 <십자가에서 내려지는 예수님> 전체(좌) 모습과 손의 표현(우)
그런데 벨라스케스 <시녀들> 속 손의 표현은 영 어설프다.
<시녀들>에 그려진 손, 특히 화가 본인의 손과 왼쪽 시녀의 손이 이상하다
그림에 등장하는 벨라스케스 본인의 손은 손이라기보다는 어떤 뭉텅이 같아 보이고 왼쪽 시녀 손은 흡사 유령 같다. 손은 실제로 많은 화가들이 가장 그리기 어려워했던 부위로 알려져 있다. 그래서 손을 일부러 안 보이게 그린 그림들도 있고 손이 나오는 초상화는 단가가 올라갔다.
그럼 벨라스케스는 손 하나 제대로 못 그리는 화가였던 것일까? 벨라스케스도 물론 손을 잘 그릴 수 있었다. 실제로 그의 작품들 중에는 손이 아주 잘 그려진 작품들도 많다.
벨라스케스<계란 튀기는 노파>에 등장하는 손, 노파의 손에서는 위쪽 아이 손에 비해 부족한 피부 탄력까지 엿보인다
판 데르 베이던의 <십자가에서 내려지는 예수님>과 디에고 벨라스케스의 <시녀들>은 그려진 지역과 시기도 다르고 목적도 다르기 때문에 단순히 어떤 것이 더 좋은 그림이라고 판단을 하기는 어렵다. 다만 개인의 취향을 말할 수는 있을 것이다. 나라면 벨라스케스 쪽이다.
판 데르 베이던의 세밀화가 모든 요소를 완벽하게 그리고자 힘을 빡 준 그림이라면 벨라스케스의 <시녀들>은 대충 그려도 되는 부분은 힘 빼고 그린 그림이다. 모든 부분을 완벽히 표현하고자 애썼던 베이던의 그림은 전체적으로 보면 조금 어색한 느낌이 든다. 인물들이 전부 지나치게 생생하고 선명히 그려져 있기 때문이다. 반면 벨라스케스의 그림은 멀리서 봤을 때 전체적으로 훨씬 조화롭고 자연스러운 느낌이다.
벨라스케스라고 왜 손을 더 자세히 그리고 싶지 않았을까. 자신이 손을 이렇게 잘 그린다는 걸 <시녀들>에서라고 왜 뽐내고 싶지 않았을까.그런데도 그걸 과감히 포기하고 전체적인 균형을 생각해서 그린 그림이다. 그 결과 놀라운 시각적 효과까지 도출해냈다. 이 그림은 내가 좋아했던 <슬레이어즈>의 제로스와 닮았다. 대충 그린 것 같지만 실은 그 누구보다 잘 그린 그림 한 폭.
완벽한 요소가 완벽한 완성을 보장하지는 않는다. 그리고 대충 '잘' 하기 위해선 열심히 잘하는 것보다 훨씬 더 큰 구력이 필요하다. 나의 구력을 더 키워 힘 빼고, 대충 해도 되는 건 대충 하면서 살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