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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루나 May 31. 2021

글 장인보다는 글 노동자로

장인은 다음 생에 되는 걸로

브런치에 올린 글이 서너 번  메인에 소개되었다. 정작 나는 메인을 잘 보지 않기 때문에 몰랐는데 어떤 글의 조회수가 갑자기 얼마를 돌파했다는 알람이 와서 보면 그런 이유였다. 


글이 영 신통치 않은 탓인지 메인에 소개된 글들과 그렇지 못한 글들 간에는 댓글이나 좋아요 수의 차이가 전혀 없으며 구독자도 별로 늘지 않았다. 그러니 메인에 소개되는 게 마냥 좋지만은 않다. 어떤 기분이냐면 사람들이 이 가게엔 뭐가 있나 흥미로운 얼굴로 들어왔다가 아무것도 안 사고 실망한 표정으로 나가는 모습을 지켜보는 가게 주인이 된 기분이다. 씁쓰을-허다.


브런치를 보다 보면 많은 분들이 출간을 희망하거앞두고 있고 출간 작가분들도 적지 않다. 나도 처음 브런치에 입성했을 때는 브런치를 스쳐 지나간 출간 작가 포트폴리오를 보면서 마치 이 플랫폼의 승인이 당장 어떤 출간 제의로 이어질 것 마냥 설레기도 했다. 그러나 오히려 브런치를 자주 쓰며 나는 당최 그럴 위인 못된다는 걸 자각했다.




선 나는 내 글이 활자로 박제되어 누군가의 책장에 있을 거란 상상을 하면 두렵다. 그게 내가 이곳에 주로 쓰는 개인적인 에세이라면 더욱 그렇다. 그걸로 누군가 나를 이렇고 저렇고 평가한다면 더욱 끔찍하다. 설사 그게 긍정적인 언어여도 말이다. 평가야 상대방의 자유겠지만 나는 내가 실재하지 않은 시공간에서 부유하며 해체되는 게 싫다. 누가 어떤 조각을 쥐었든 그건 내가 아니다. 가변 하는 나에게서 어느 한순간 떨어져 나간 조각일 뿐이다. 개인적인 이야기로 책을 쓴다면 이런 조각의 물리적 기록이 될 것이기 때문에 굳이 만들고 싶지 않다.


둘째로 아무튼 글쓰기에 사명이 없다는 것이다. 좋은 글에 대한 개인적인 견해는 다르겠지만 내가 생각하는 좋은 글이란 글쓰기 스킬은 기본이거니와 독자에게 건네는 의미가 있어야 한다. 사회에 화두를 던지거나, 감동을 주거나, 지식을 일깨우거나, 어떤 방식으로든 말이다. 그런데 내가 여기 쓰는 글은 그냥 쓰고 싶어서 쓰는 글이다. 즉 스스로를 위한 글이며, 글쓰기 행위 자체를 즐기는 글이다. 고민하거나 시간을 투자하지 않고 쓴 글이 대부분이며 불편할 수 있는 주제는 아예 건들지도 않는 글이다. 지식인이란 모름지기 세상과 불화를 겪어야 하는 존재가 아니겠는가. 위대한 생각의 시작은 사회의 반감과 조롱에서 비롯되지 않았냐는 말이다. 허나 나는 그런 글을 쓰고 싶은 생각이 추호도 없고 생각만으로도 피곤하다. 물론 요즘은 출판의 창구가 많기 때문에 꼭 사명감이 있어야만 작가가 되는 것이 아니고 글이라는 게 항상 대단히 신성한 의미만을 가지는 것 또한 아니지만서도.




그럼에도 글을 쓰는 일은 다. 지난겨울부터 어떤 이유로 세명을 인터뷰했는데, 내 글쓰기로 그들의 생각을 다듬어 쓰는 일이 좋았다. 그들이 나와의 대화를 편하게 느끼며 해주는 이야기를 귀 기울여 듣는 것도 좋았다. 또 개인적으로 번역 작업도 하고 있는데 서로 다른 언어에 꼭 들어맞는 뉘앙스를 찾는 일이 즐겁고, 조사 하나를 뺄까 말까 오랜 시간 고민해보는 일이 좋다. 하다못해 회사 다닐 때 제일 좋았던 일이 보고서 쓰기였다.


며칠  한국의 한 포털 메인에서 <국가가 거부한 그 남자... 그녀의 포옹에 난리 난 스페인>란 헤드라인의 기사가 뜬 적이 있다. 최근 스페인에 엄청난 수의 불법 이민자가 밀려 들어오며 대두된 사회문제를 다룬 기사였다. 추방명령을 받고 울고 있는 아프리카 이민자를 스페인 여자 봉사자가 안고 있는 사진과 함께였다.


읽는탄식이 절로 났더랬다.

"나도 저 뉴스 봤는데!"


분명 같은 뉴스를 심지어 지에서 더 자세히 봤음에도 저런 제목과 테마를 잡아 글을 쓰지 못했다는 데서 온 탄식이었다. (본인은 일간지 기자 아님 주의) 이런 거 보면 글 욕심이 없진 아니하고 또 글쓰기를 좋아하면서도 사명감은 딱히 없고 그럼에도 글 쓰는 일은 계속하기 바란다. 그러니 글 장인보다는 글 노동자가 더 어울릴 법한 사람이라고 하면 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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