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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루나 May 25. 2021

국토 순례 제가 해봤는데요

막 인생을 돌아보며 걷게 될 것 같죠?

요즘도 그런지 모르겠다. 라떼 이즈 홀스(나 때는 말이야), 여름이면 TV에서 국토 종단하는 대학생들의 이야기가 다큐로 자주 방영되었다. 발가락에 물집이 잡혀서 울다가도 친구들의 도움으로 절뚝이며 결국 완주하는 모습과 청춘들을 간지럽히는 어떤 설렘, 그리고 별별 감동 스토리가 섞여서 보다 보면 정말 가슴이 웅장 해지는 그런 프로였다. 국토 종단을 하기 위해서라도 대학을 가야 할 판이었다. 그래서 대학교에 갔을 때, 국토순례반이라는 동아리에 가입을 했다.




동아리 행사의 꽃은 당연히 국토순례였다. 여름이 되면 일단 1주일 동안 다니던 대학교의 지방(경기도) 캠퍼스로 가서 합숙훈련을 한다. 훈련 조교는 동아리 선배 중 가장 최근에 전역한 사람이다. 죄송하게도 선배 이름과 얼굴은 기억나지 않는데 '온몸 구르기'만은 아주 확실히 기억이 난다. 악 소리를 내며 1주일 동안 새벽 기상-군대식 훈련을 반복했다. 1주일 만에 없던 체력이 생겨났을 리 없는데 어쨌건 자전거는 출발을 한다. 경기도에서 출발해 강원도-경상도-부산항-제주도-목포항-충청도-서울 캠퍼스로 돌아오는 3주간의 여정이었다.


고등학교 때 체력장 전날이면 '어떻게 다리가 부러져서 오래 달리기를 면하지' 고민했던 사람인지라 동아리 회원 중 단연코 내가 제일 못 달렸다. 그래서 늘 단장의 뒤 2번 자리에서 달려야 했다. 내가 뒤에서 달리면 혼자 뒤처지기 때문에 오히려 가장 앞에서 달리게 한 것이다. 비가 오면 비가 오는 대로 자전거 바퀴와 부딪힌 도로의 흙탕물이 얼굴을 다 튀어서 힘들었고 해가 나면 해가 나는 대로 헬맷과 머리 사이에 땀이 찼다. 강원도 산길을 낑낑거리고 올라갈 때 옆에 차가 쌩하고 지나가면 아 이래서 인류는 차를 발명했구나를 실감했다. 하루 열두 번이 아니라 매 1분 1초 그만두고 싶었다.




달리는 순간을 제외하고 가장 괴로웠던 순간은 의외로 먹을 때와 씻을 때였다. 순례를 하면 뭔가 인생을 차분히 돌아보고 많은 생각을 하게 될 것 같지만 실상은 그와 정 반대였다. 몸이 힘드니 사람이 굉장히 원초적이 되었다. 한마디로 입에 들어가는 거에 엄청나게 예민해졌다. 점심은 다 같이 늘 라면을 끓여 먹었는데 당연히 모든 냄비의 라면이 같은 속도로 익지 않으니 누군가는 먼저 먹게 되었다. 그때 처음으로 누군가 나보다 라면을 더 먼저 먹었다는 이유만으로도 미워할 수 있다는 걸 깨달았다. 씻을 때도 마찬가지였다. 나도 어서 찝찝한 몸을 씻고 쉬고 싶은데 앞에 사람이 너무 오래 씻고 있으면 그렇게 얄밉고 싫을 수가 없었다.


지금 생각해보면 스무 살짜리에게 돌아볼 만큼 뭐 얼마나 대단한 인생이 있었겠냐도 싶지만, 그게 아니더라도 그저 '그만 달리고 싶다' '어서 씻고 싶다' '오늘은 다른 거 먹고 싶다' 이런 생각만 주구장창 하면서 달렸던 것 같다. 보이는 것이라곤 발 밑의 검은 아스팔트와 노란 페인트 선, 단장의 뒷모습뿐. 나는 이 미친 짓은 인생에 하등 도움이 안 될 것임을 매 순간 확신하며 달렸다. 반면 그렇기 때문에 한 번의 미친 짓으로 끝내기 위해서라도 완주를 해야 했다. 혹시 미련이 남지 않도록 말이다.




그러나 틀렸다. 국토순례는 성인이 된 이후 나를 지탱해주는 가장 큰 힘이 되었다. 늘 체력에 자신이 없었던 나였다. 끈기가 없었고 깡도 없었다. 지금도 아주 많다고는 못하겠다. 그러나 혹시 지금 그나마 아주 조금이라도 이런 걸 가지고 있다면, 그건 모두 국토순례 덕분이었다고 생각한다. 체력과 정신은 완전 다른 문제라고 생각했고 정신력으로 체력을 이길 수 있다고 믿었는데, 정신력을 주는 건 체력이었다.


이보다 더 큰 수확도 있다. 왜 인생을 복잡하게만 보려고 했을까. 왜 달리면서 강박적으로 당장 무언가를 깨달아야 한다고 생각했을까. 사실 어떤 일의 한가운데에서는 알 수 있는 의미가 별로 없는데 말이다. 매년 새로운 의미로 다가오는 국토순례를 회상하며, 너무나 의미 없어 보이고 소용없어 보이는 일을 하며 괴로울 때면 이 또한 언제가 다른 의미가 될 수 있음을 상기했다. 그런 생각을 하면 괴로운 일도 조금 더 담담히 참아낼 수 있었다. 당장 의미는 모를지라도 언젠가는 삶에 의미를 줄 수 있는 일들이기 때문이다.


지금 순례를 다시 가면 어떨까? 마침 일부러 먼 곳에서도 찾아오는 산티아고 순례길이 있는 스페인에 살고 있다. 인생에 이런 미친 짓은 다시 안 하겠노라며 국토순례를 완주했지만 요즘 들어 가끔 까미노를 걷는 내 모습을 상상해보곤 한다. 분명 또 힘들고 지쳐 매 순간 원초적인 고민만 하면서 걸을게다. 그러나 돌아보니 어떻게 하면 라면을 더 빨리 먹을 수 있을지 따위를 고민하며 달리던 그 여름날이 무척 행복했었다는 것 또한 알게 되었기에 다시 걷는다면 저런 원초적인 고민에도 문득 행복할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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