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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루나 Apr 30. 2021

잘 쓴 글과 읽고 싶은 글

그럴싸하기만 한 글은 이제 그만!

요 며칠 이런 생각을 해보았습니다.

잘 쓴 글과 읽고 싶은 글은 어떤 글일까?


어떤 글은 군더더기 하나 없이 참 잘 썼는데 그다지 읽고 싶지 않고, 어떤 글은 종종 비문도 보이고 엉성한데 결국 끝까지 읽게 되더군요. 첫 번째 글은 점잖은 어투로 맞는 소리만 하는 선생님 같았고요, 두 번째 글은 살짝 취해 흩날리는 발음으로 진심을 이야기하는 친구 같았어요. 맞아요. 차이는 '공감'이었어요.


그래서 다시 이런 질문을 해보았답니다.

내 글이 공감을 받은 적이 있었나?


논술 덕에 대학도 수월히 간 편이고, 회사 다닐 때는 그럴싸하게 썩 잘 쓴다는 평가에 보고서와 보도자료 작성을 담당하기도 했어요. 지금도 가끔 돈이 되는 활자를 쓰고 있으니 아주 못 쓰는 건 아닌 듯해요. 그런데 돌이켜 보니 칭찬 말고 공감을 받은 기억은 잘 안 떠오르는 거예요.


오히려 고등학교 때 이런 일이 있었어요. 고1 수학여행을 다녀온 후 모두 기행문 형식으로 후기를 작성해야 했어요. 전교생 중 가장 잘 쓴 글을 뽑아 교내 문예지에 실을 예정이었지요. 저 역시 작성해 냈고 며칠 뒤 선생님께 불려 갔답니다. 제가 글을 가장 잘 써서 문예지에 싣고 싶은데 너무 부정적으로 썼으니 내용을 좀 바꾸면 어떻겠냐는 의견이었어요. 전 그때 한국 공교육에 대한 반발의 연장으로 이딴 군대식 수학여행을 왜 가는지 모르겠다며 한껏 시니컬한 글을 썼거든요.


제가 어떤 대답을 했는지 그 뒤 상황은 잘 기억이 나지 않는데, 결과적으로 문예지에 실린 기억 또한 없으니 아마 협상은 결렬되었나 봐요. 선생님과 친구들 중 그 누구도 한 번뿐인 수학여행의 추억을 그런 부정적인 글로 기억하고 싶지는 않았을 거예요. 전 아무도 공감할 수 없는 글을 쓴 거지요.


한편 이런 경험도 떠올랐어요. 그동안 나름 많은 예술가와 기획자들을 만났는데, 그들 중 정말 자기가 하고 싶은 것만 하는 사람들이 있어요. 퇴사한 지 3년이 지났지만 아직 직장인의 때를 미처 다 벗지 못한 저는, '하고 싶은 것만 하면서 심지어 그걸로 돈을 벌고 싶어 하는 사람'에 대한 저만의 작은 반발심이 있어요. 모름지기 돈으로 치환되는 일은 어느 정도 고통이 수반된다는 주의거든요. 그게 싫으면 돈 욕심은 버리면 돼요. 그냥 하고 싶은 것만 하고 살면 되는 거죠.


그런데 하고 싶은 것만 하면서 돈까지 벌고자 하는 사람은 자신이 틀렸을 가능성에 대해선 생각하지 못하고, 자신을 인정해주지 않는 무대나 감상자 혹은 환경을 원망해요. 그러면서 점점 더 깊은 외골수의 길로 빠져들고 말지요. 자신을 아무도 안 알아주는 이 시대의 마지막 예술가로 포장하면서 말이에요. 그들이 꼭 현실과 타협해 매스미디어에 나오고 상업적인 예술을 해야 한다는 게 아니에요. 하고 싶은 것을 하면서 진짜 돈도 버는 창작자들도 있거든요. 그런 사람들의 힘은 어쨌든 '공감'을 이끌어 낸다는 거라고 생각해요.


왜 브런치에 글쓰기가 점점 흥이 안 날까 생각해보니, 공감이 없는 글을 쓰고 있어서 그랬던 것 같아요. 그런데 그런 글을 써본 적이 없어서 사실 어떻게 써야 할지 모르겠어요. 공감을 얻지 못하는 게 무서운 이유는 그 외골수 같던 사람들이 바로 제 자신일까 봐 그런 것 같아요. 그들은 결코 인정하지 않았지만 결과적으로 공감받지 못한다는 건 많은 경우 그냥 잘하지 못했던 거였거든요. 잘하고 진심인 사람들은 설령 마이너한 콘텐츠일지라도 결국은 공감을 일으켰어요. 다만 조금 시간이 오래 걸렸을 뿐이지요.


공감은 외면한 채 그동안 들은 칭찬만 집요하게 기억하면서 '난 글을 썩 잘 써'라며 애써 위로하고 있었던 건 아닌지 문득 뜨끔해집니다. 봐줄 만은 하나 읽고 싶지는 않은 글이나 쓰면서 말이에요. 제 생각엔 그건 그냥 못 쓴 글이거든요. 올봄은 조금 더 공감을 얻는 글을 쓰는 연습을 해야겠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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