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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루나 May 29. 2021

스페인 여름 그 맛!

이곳의 여름은 특별하다

여름이 언제 시작되냐는 사람마다 생각하는 기준이 다르다. 누군가는 절기로 이야기할 수 있고 다른 누군가는 날씨를 기준으로 생각할 수도 있다. 내가 생각하는 마드리드의 여름이 시작되는 순간은 도심 거리에 차양이 설치되는 날부터이다.


차양으로 덮인 마드리드 쁘레시아도스(Preciados) 거리('21.5.28)


스페인 대부분의 도시는 여름이면 40도를 웃돈다. 다만 해안가를 제외하고는 건조하기 때문에 그늘만 잘 형성해줘도 체감과 실제 온도가 10도는 내려간다. 그래서 여름이 되면 이렇게 많은 도심의 보행자 거리에는 차양이 설치된다. 이제 햇빛을 피해야 하는 계절이 다시 돌아온 것이다. 주말이 되어 일주일 만에 나간 시내에는 지난주와 달리 어느새 차양이 설치되어 있었다. 내게 저 차양은 여름이기 때문에 보는 순간 기분이 고조되며 여름에 대한 이야기를 해보고 싶어 졌다. 스페인의 여름은 특별하기 때문이다.




스페인의 여름은 쉼이다. 여름에는 모든 게 쉰다. 스페인은 법적으로 연간 자연일 기준 30일을 연가로 사용할 수 있다. 회사에 첫 입사하는 순간 받는 기본 연가이며 연차가 쌓일수록 회사 규정에 따라 조금씩 올라간다. 근무일 기준으로는 약 22일 정도 되는 기간이다. 연가는 회사원뿐만 아니라 모든 직종에 적용되며 스페인 근로자들에게 있어 신성불가침의 영역이다. 또한 한국과 달리 연가 보상의 개념이 없다. 법 상 아예 '경제적인 것으로 보상이 불가함'이라고 명시되어 있다. 또한 다른 휴가의 사용 여부와 상관없이 사용할 수 있는 휴가이다. 만약 출산휴가 중인 직원이 있다면 출산휴가로 인해 저 연가는 단 1일도 깎이지 않는다. 출산휴가에 바로 덧붙여 사용할 수도 있기 때문에 가능하다면 대부분 그렇게 붙여서 사용한다. 스페인에는 다양한 종류의 휴가가 세세한 기준으로 존재하는데, 연가는 그중 단연 휴가계의 '에르메스'이다.


이 휴식은 모두가 다 누려야 하는 권리이기 때문에 스페인에 보낸 첫여름에는 다소 문화충격을 받기도 했다. 가게들마다 '8월 1일부터 8월 31일까지 쉽니다'라는 안내와 함께 문이 굳게 닫힌 모습은 그중에 가장 약한 충격이었다. 뉴스 앵커도 휴가를 가서 대직자가 뉴스를 전하고, 인기 프로그램도 여름에는 방영을 안 한다. 대신 최소한의 방송국 인력으로 운영이 가능한, 재방송 혹은 영화가 계속 상영된다. 관공서를 가도 시간이 크게 중요하지 않는 몇몇 업무는 8월 동안 아예 처리를 안 한다는 안내가 붙어 있다.(휴가의 피크는 8월이다.)


관공서와 방송국이 이러하니 회사의 모습이라고 특별히 다를 건 없다. 작은 회사나 공공기관의 경우 아예 8월 내내 거의 셧다운을 하기도 하고, 큰 회사에서도 직원들에게 어서 휴가를 가라고 종용한다. 이때 누군가 나는 여름휴가를 안 가겠다고 하면 환영받을까? 그렇지 않다. 남들 쉴 때 쉬어야지 남들 일할 때 쉬려는 얌체로 보이기 십상이다. 그래서 대부분 회사가 최소 2주 이상의 휴가를 여름에 사용하도록 권고한다.


스페인에서 즐기는 여름 맛들도 있다. 가장 대표적으로는 가스파초(Gazpacho)와 틴토 데 베라노(Tinto de verano)이다. 가스파초는 토마토, 오이, 피망, 마늘, 올리브 오일, 빵 등을 모두 갈아서 만든 토마토 냉수프이다. 짭조름하고 좀 더 묵직한 토마토 주스 정도로 생각해도 좋을 것 같다. 스페인에서 여름을 지내보면 왜 이 가스파초가 스페인의 대표 여름 음식인지 알게 될 것이다. 일단 더워서 뭔가 뜨겁고 씹어야 하는 게 별로 안 당기기도 하거니와 도저히 불 앞에서 요리를 할 수가 없다. 그러니 불을 쓰지 않고 모든 재료를 갈아서 먹는 저 요리가 여름에 최적화된 요리이다. 저것만 먹으면 다이어트식이 따로 없기에 좀 든든히 먹기 위해선 여러 토핑을 올려 먹는다. 보통 하몽과 삶은 계란이다. 부족한 단백질 보충에 딱이다. 그보다 더 든든하게 먹으려면 빵을 좀 더 많이 갈아 넣은 살모레호(Salmorejo)라는 요리도 있다.

 

가스파초, 요즘 우리집 주식이다


틴토 데 베라노는 해석하자면 '여름 레드와인'이라는 뜻이다. 덥기 때문에 상온의 와인은 당기지 않고 도수가 있는 술을 마시면 술에 취해 더 더워진다. 틴토 데 베라노는 평범한 테이블 와인에 토닉이나 레몬 환타 등을 섞어 도수는 낮추고 탄산의 청량감은 높여 마시는 술이다. 음료수처럼 달달하고 마시기 쉬울뿐더러 일반 와인 음용법과는 달리 얼음을 듬뿍 담아 마시기 때문에 시원하기까지 하다.


스페인에서 여름을 느끼는 또 다른 순간은 거리에 어느 순간 스페인어보다 다른 유럽어가 더 많이 들릴 때이다. 유럽인들이 가장 선호하는 여름 휴가지답게 곳곳에서 휴가를 온다. 지난해는 좀 다른 모습이었지만 올해는 벌써 거리에 유럽 관광객들이 쉽게 눈에 띈다. 오늘 아침 뉴스에는 영국이 스페인의 대표적인 휴양지인 카나리아 제도와 발레아레스 제도를 여행 위험지역에서 제외할 예정이라고 했다. 느리지만 조금씩 예전의 일상을 되찾아 나가고 있는 것 같아 반가운 소식이다.




마지막으로 스페인에서 여름을 나기 위해선 반드시 지켜야 하는 철칙이 있다. 바로 '밤에 창문 열어 환기하고 아침에는 창문을 모두 닫고 페르시아나스* 내리기'이다.


페르시아나스(Persianas): 스페인 건물 창문 바깥쪽에 설치된 일종의 블라인드로, 모두 내릴 경우 햇빛이 완전히 차단된다.


말했다시피 건조하기 때문에 햇빛만 차단해줘도 온도가 올라가는 걸 막아서 더위를 나는데 좀 더 용이하다. 낮동안에도 환기를 하면 시원할 것 같지만 일단 불어오는 바람이 남쪽 아프리카에서 올라오는 더운 공기인 경우가 아 전혀 시원하지 않고 오히려 집안을 데우는 역효과를 낸다. 건조한 만큼 밤에는 온도가 떨어지는 편이기 때문에 환기는 밤에 해야 한다.


스페인어에는 여름과 관련해 이런 재밌는 말이 있다.

'여름은 결혼하고, 헤어지고 다시 결혼하기 충분한 시간이다' 


여름만 되면 괜히 사랑노래가 나오는 게 아닌가 보다. 여름은 절정이다. 모든 게 절정으로 향해 가고 있는 지금, 있는 곳에서 마주할 여름이 평안하고 아름답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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