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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루나 May 30. 2021

외국에서 만나는 한식당은 情입니다.

어쩌면 맛보다 정을 먹으러 가는 걸까

스페인에 초기에는 굳이 가지 않던 곳이 바로 한식당이었다. 목마른 자가 우물을 판다고 내가 먹고 싶은 요리 정도는 직접  수 있었다. 또 아쉬울만하면 여러 이유로 한식 먹을 기회가 생기기도 했고 어느 순간부터는 한식이 몸에서 잘 안 받는 것 같아 꺼리게 되었다. 이제 김치 정도만 먹어도 매운맛에 배탈이 나기도 하고 한식에 많이 들어가는 양파, 마늘 같은 향신채가 잘 소화가 안 되는 체질이라 먹고 나면 더부룩했다. 한식이 늘 먹고 싶지만 먹고 나면 붓는 느낌 때문에 뭔가 한식은 다음 날 아무 스케줄도 없을 때 집에서 편하게 잠옷 입고 먹어야 하는 그런 음식이 되었다.




하지만 최근에는 한식당에 종종 가는 편이고 사실 가는 일이 상당히 즐겁다. 특히 다른 도시로 여행을 갈 때면 항상 가장 먼저 찾아보는 것이 한식당이다. 그래서 꼭 한 끼 정도는 여행지에서 한식을 먹고 온다. 한식당을 가는 일이 즐거운 이유는 뭔가 음식 이외의 따뜻함 때문이다. 한식당을 들어서는 순간 서로의 눈빛은 이미 한국인임을 간파하고 '올라'라는 인사말 대신 '안녕하세요'라는 인사말을 나눈다. 보통 현지 식당에서는 서빙해주는 대로 편하게 받아먹는다면 한식당에서는 마치 친구 집에 놀러 갔을 때 친구 어머니가 차려주는 음식처럼 괜히 접시라도 거들며 받게 된다. 입으로는 연거푸 '감사합니다'를 연발하면서 말이다. 이런 일이 어찌 보면 불편해 보일 수도 있겠지만 나는 그저 정겨운 느낌이 든다.


또 이곳은 스페인이기 때문에 밥과 김치는 별도 플레이트로 파는 경우가 대다수고 한국식당 포함 현지 어느 식당을 가도 물은 사 마셔야 한다. 전채 요리는 인원보다 적게 시켜 나눠먹을 수도 있지만 1인당 음료 1개, 메인 요리 1개씩은 시키는 게 일반적이다. 이 모든 걸 알기에 나는 행여나 같은 한국인이라고 특별한 대접을 해주기를 바라지 않는다. 나야 하나의 서비스를 받는 거지만 식당 입장에서는 오는 한국 손님마다 그렇게 해줘야 한다면 상당히 손해 보는 일이 될 것이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갔던 많은 식당에서 슬쩍 '오늘 깍두기가 맛있어서 좀 드려요'라고 내주기도 했고 '우리끼리 먹으려고 만든 반찬인데 조금 먹어봐요'라며 뭔가를 얹어 주었다. 밥이 입맛에 맞냐며 내 등을 쓱쓱 쓰다듬기도 하고 가끔 개인적인 걸 묻는 분들도 계신다. 실은 나는 자주 가던 가게일지라도 갑자기 내게 아는 척을 하면 부담스러워 발길을 끊는 사람이다. 내게 손님 이상의 친절을 베푸는 걸 아주 질색하는 성격임에도 불구하고 한식당의 이런 분위기는 그저 따뜻하고 좋다. 이런 게 모국의 정이라는 걸까.


지난해부터 올해까지 코로나로 힘든 시기임에도 불구하고 스페인 곳곳에 꽤 많은 한식당이 새로 오픈했다. 오픈 예정 중인 곳도 더러 있다. 마드리드에도 새로운 곳들이 최근 오픈해 그중 한 곳을 시내에 간 김에 들르게 되었다. 맛있는 밥과 따뜻한 인사와 더불어 가게 전체에서 뿜어져 나오던 새로운 시작이 주는 설렘과 환희를 밥에 꾹꾹 눌러 담아 맛있게 먹었다. 곳곳에 느껴지는 그 긍정적인 기운이 내게도 고스란히 전해져 상당히 행복한 식사가 되었다. 나서는 길 번창하기를 바라는 진심을 담아 고개를 숙여 인사했다. 스페인에서는 도통할 일이 없는 고개 숙이는 인사 또한 한식당에서는 괜히 즐거운 인사가 된다.




자주 하지는 않지만  역시 요리를  좋아하는 편이다보니 카페나 한식당 개업을 생각해본 적이 있다. 심각하게는 아니지만 여전히 종종 생각한다. 경험을 쌓기 위해 얼마 전에는 남쪽 도시 한식당에서 모집하던 직원 모집에 지원해볼까도 한참 고민했더랬다. 내가 정말 한식당을 오픈한다면 어떨까. 포근포근한 식당이 될까. 나도 낯선 한국 손님의 등을 쓸어주며 이것도 한번 먹어보라고 내줄 수 있을까. 오늘도 상상만 자꾸 늘어간다




+ 생각난 김에 이전에 만들었던 음식 중 한식(+일식?)비스므리한 음식 사진들을 다 끄집어 내봤다. 확실히 별로 없긴 하다. 한식 중 찌개, 국, 탕은 안 좋아하고(이게 한식의 메인 아닌가 싶지만...) 밑반찬은 먹을 사람이 으니 안 해서 모아놓으니 좀 썰렁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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