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이루나 Jun 24. 2021

존재가 머물었던 자리

만남도 작별도 나는 다 어렵더라

길고양이 임보 가정을 신청하고 처음으로 고양이가 우리 집에 왔다. 원래 오기로 했던 아픈 고양이는 우리 집을 밟아 보기도 전에 고양이별로 가버렸고 대신 검은 새끼 고양이 남매가 왔다. 보호단체의 사람을 만나 고양이를 건네받으며 이동가방 안에 웅크린 남매의 얼굴을 보았다. 지금 생각해보니 그때가 남매의 얼굴을 직접 본 처음이자 마지막 순간이었다. 암컷은 새까만 얼굴이었고 수컷은 코에 하얀 점이 있었다.


이름은 네가 지어.

보호단체 사람의 그 말에 순간 설렜다. 나는 고양이가 든 이동가방이 흔들리지 않게 조심스레 들고 집으로 왔다. 글을 쓰고 있던 방에 가방과 모래판과 음식을 두었다. 배가 고프면 나올 수 있게 가방을 열었고 유튜브에서 '고양이가 편안해지는 음악'을 골라 틀어 두었다. 고양이들이 잘 있는지 보고 싶었지만 가방 안이 어두워 검은 고양이 남매는 잘 보이지 않았다. 무서워서 안 나오는가 보다. 나는 그저 할 일을 하며 고양이들이 마음을 열어주기를 기다리기로 했다. 하지만 그때 이미 고양이들은 없었을 것이다.




너무 안 나오는 게 이상해 가방 안을 비춰보니 이미 텅 비어있었다. 문이 열려 있던 공간을 샅샅이 뒤져 한 마리는 욕실의 욕조와 가구 틈에, 다른 한 마리는 내가 있던 방의 옷장과 벽 사이에 있는 걸 발견했다. 둘 다 좁고 긴 틈이라 고양이들이 나오지 않는다면 일부러 끌어내기가 어려웠다. 정신없어하는 와중에 다시 보니 이제 그 공간들 마저 고양들이 보이지 않았다. 나는 어쩐지 공포스러운 마음이 들어 글 쓰는 방, 복도, 큰 욕실 문만 열어두고 안방으로 피신해버렸다. 내가 사라지면 고양이들이 안심하고 나오겠지.


고양이들의 흔적은 있었다. 얼마 뒤 다시 나온 복도에는 똥과 오줌이 있었으니까. 고양이들은 다 알아서 모래판에 배변하는 거 아니었나? 배설물을 박박 닦으며 행여 고양이가 집안 다른 곳으로 도망갈까 봐 환기도 마음껏 못하고 안절부절못했다. 그 뒤로는 고양이 기척이 잘 느껴지지 않았다. 많은 불안과 고생 끝에 고양이가 욕실의 유럽식 비데 뒷 공간으로 숨었다는 걸 알게 되었다. 그곳에 고양이 두 마리가 숨을 만한 공간이 있다는 사실을 이 집에 10년 넘게 살며 처음 알았다. 내가 본 건 그 공간으로 숨어 들어가는 한 마리의 엉덩이와 꼬리였기 때문에 사실 거기에 두 마리가 다 있었는지도 그때는 몰랐다. 나는 집안 어디선가 잘못된 아기 고양이를 마주하지는 않을까 불안해 잠을 자지 못했다.


아침이 되자마자 보호단체에 내가 생각이 짪았다, 임보가 쉬운 게 아니었다, 불안해서 잠도 못 잤고 고양이가 우리 집에서 잘못될까 봐 너무 무섭다, 그러니 미안하지만 다시 데려가 달라고 메시지를 남겼다. 문제는 그 비데의 뒷 공간에서 고양이를 빼낼 방법이 없다는 것이다. 보호단체에서 두 번이나 와서 고양이를 꺼내려했지만 손에 피만 봤다. 다행히 핸드폰을 넣어 사진을 찍어보니 두 마리가 같이 있었다. 한 마리는 내가 처음 봤던 웅크린 눈빛 그대로였고 다른 한 마리는 아예 고개를 돌리고 있었다.


정말 3일간 다 적지 못할 고생 끝에 고양이가 우리 집을 떠났다. 밤새 울던 고양이 소리에 잠에 깨 조심스레 욕실을 확인하던 일도, 밥도 물도 안 먹고 우는 고양이가 탈수라도 될까 봐 불안해하던 일도 이제 다 끝났다. 고양이만 가면 솔직히 후련할 것이라고 생각했는데 고양이가 떠난 적막한 오후가 어쩐지 쓸쓸하다. 이제 집안의 문도 마음대로 다 열고 환기하고 욕실을 들어갈 때마다 불안해하지 않아도 되는데 말이다. 욕실을 보면 어쩐지 울던 아기 고양이들이 생각나 기분이 울적해진다.


존재가 머물었던 자리는 왜 언제나 이토록 티가 나고 마는 것일까.


고양이가 떠났던 오후, 며칠간 같이 고생하던 존재들과도 마지막 작별을 했다. 대부분 아마 다시는 보지 못할 것이다. 외국에 산다는 게 그런 일이라 나는 다시 못 만날 존재들과 많이 만났다. 어떤 존재와의 헤어짐은 후련했고 어떤 존재는 아팠다. 그렇지만 티가 안 나는 존재는 없었다. 좋았던 존재들일수록 아쉬움은 짙었다. 물론 시간이 지나면 아쉬운 마음이 무뎌지기도 하고 무뎌지는 것 말고는 방법이 없어 그걸 택하기도 하지만 그래도 흔적을 남기지 않는 존재는 없었다. 다만, 이제는 굳이 그런 거에 연연하지 않는다는 게 달라진 것일까.


인연이라는 게 길게 지속된다고 좋은 것도 아니고 짧다고 나쁜 것만도 아니다. 짧을 수밖에 없어 짧게 만나고 헤어지는 존재들도 있다. 붙잡고 아쉬워한다고 잡히는 것도 아니고 그 마음 다 내보인다고 같은 마음도 아닐 테니, 그저 함께한 그 순간이 의미 있었으면 그걸로도 충분하다고 생각하게 되었다. 그렇다. 생각하게 되었다. 그렇게 생각하는 것 말고는 딱히 할 수 있는 게 없어서이다.


생각은 그렇게 해도 머물었던 고양이가 그립다. 머물었던 존재들이 아쉽다. 우는 고양이가 없는 편한 밤인데 잠은 생각보다 오지 않는다.




매거진의 이전글 두 번의 파리 여행이 준 위로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