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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루나 Mar 16. 2021

두 번의 파리 여행이 준 위로

여행은 늘 다른 방식으로 꼭 필요한 위로를 건넸다.

파리에는 두 번 갔다. 처음 갔을 땐 가을이 한창이었고 나는 스물한 살이었으며 큰 이민가방과 함께였다. 그곳은 내가 처음 만난 유럽이었다. 원래 가려고 했던 숙소는 방이 다 차서 못 갔고 큰 가방과 함께 해진 거리를 헤맬 자신이 없어서 바로 옆 작은 호텔로 갔다. 약 7층 건물의 가장 꼭대기 층에 있던 방에는 작은 세면대와 큰 침대가 있었다. 


다음 날부터 홀로 파리를 구경했다. 하루는 루브르 박물관을 갔고, 어떤 날은 에펠탑을 갔으며, 또 다른 날은 샹젤리제 거리와 소르본 대학가를 걸었다. 아침에는 다소 신이 나기도 했지만 오후만 되면 외로움과 두려움이 몰려왔다. 해가 지면 눈에 띄게 한적 해지는 거리 탓에 6시경에는 호텔 근처로 돌아와서 늘 같은 일식당에서 벤토를 하나 시켜먹고는 꼭대기 나의 호텔방으로 돌아갔다. 혼자 여행하던 내가 하루 중 유일하게 말을 하는 시간은 벤토를 주문할 때 밖에 없었다.


해가 진 방안에서는 할 게 별로 없었다. 스마트폰도 없던 시절이다. mp3를 귀에 꽂고 큰 창문에 기대어 맞은편 건물만 하염없이 바라봤다. 맞은편 건물의 한 방은 저녁 8시쯤이면 늘 불이 켜졌다. 그리고 두 남녀가 마주 앉아 매일 식사를 하였다. 나는 그 장면이 너무 부러워 심지어 몇몇 날은 울기까지 했다. 저녁마다 노오란 불 빛 아래 마주 앉아 이야기를 나누며 따뜻한 식사를 하는 일, 그런 평범한 일상이 무척 부러웠다.


아침이면 호텔 1층의 작은 카페에서 아침식사를 했다. 홀로 자리에 앉으면 한 아주머니가 크루아상과 바게트, 쨈, 버터 등이 담긴 바구니를 하나 갖다 주었다. 그리고는 늘 "XXXX 쇼콜라 XXX?"라고 물었다. 알아듣는 말은 쇼콜라 밖에 없었다. 그래서 항상 쇼콜라라고 대답했다. 그럼 팟에 담긴 따듯한 코코아를 가져다주었다. 바게트 한 줄과 1L는 족히 되었을 것으로 기억되는 쇼콜라에 크루아상까지, 모두 한 번에 먹기는 부담스러운 양이었지만 내 계획보다 더 비싼 호텔비를 내고 있었기에 매일 배가 터질 때까지 다 먹어치웠다.


하루는 노트르담 성당을 갔다. 성당 앞에는 엄마 아빠 또래의 한국 관광객들이 모여 있었다. 그중 한 아주머니를 보는 순간 나도 모르게 '저 한 번만 안아주세요.'라고 말하고 싶었다. 그냥 바라만 보아도 좋아서 노트르담 성당보다 한국 관광객 무리를 더 많이 구경하다 왔다.

 

파리를 떠나기 전 날에는 미뤄두었던 베르사유로 향했다. 여러 번 여행책을 확인했지만 길치인 탓에 환승해야 하는 기차를 착각해 다른 기차로 갈아탔고 그 기차는 베르사유가 아닌 음산한 파리 외곽 동네로 향했다. 분명 첫 기차에는 관광객들이 많았는데 갈아탄 기차에는 관광객 같아 보이는 이가 하나도 없었다. 그나마도 속속 다 내렸고 드디어 열차에 홀로 남았을 때 한 역에서 불량해 보이는 남자가 올라탔다. 그는 텅 비었던 열차 중 굳이 바로 내 옆자리에 앉았다. 순간 공포를 느낀 나는 바로 자리에서 일어나 어딘지도 모르는 역에서 그냥 내려버렸다.


겁이 나서 아무 데도 가고 싶지 않았다. 그냥 꼭대기 호텔 방으로만 돌아가고 싶었다. 다음 날이면 파리를 떠나야 하기 때문에 그날 베르사유를 못 가면 베르사유는 못 보는 것이었다. 그땐 내가 유럽에 살 것이라고는 전혀 생각하지 못했기에 어쩌면 평생 베르사유를 못 볼지도 몰랐다. 파리에 일주일이나 머물렀으면서 베르사유를 못 본다는 게 좀 억울했지만 그렇다고 다시 열차를 타고 싶지는 않았다.


결국 호텔로 돌아와 근처 벼룩시장을 잠시 구경하고는 바로 옆 뤽상부르 공원의 민트색 철제 의자에 앉아 하루를 그냥 보냈다. 그렇게 스물한 살의 파리와는 이별했다.


다시 파리를 찾은 건 서른한 살이었다. 10년 전처럼 가을이 한창이었고 남편과 함께였으며 우리는 베르사유에 갔다. 하루 끝에 이르러선 정말 한 발자국도 더는 못 걷겠다고 느낄 만큼 구석구석 오래도 베르사유를 보았다. 모든 건 이렇게 되려고 그때 베르사유를 못 갔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렇게 10년 뒤 더 좋은 날, 더 좋은 사람과 함께 오기 위해서. 


여행은 늘 다른 방식으로 꼭 필요한 위로를 건넸다. 두 번의 파리 여행은 내게 삶은 과정이라는 위로를 주었다. 오늘 비록 고통스럽다 해도 그건 결론이 아니고, 살아있는 한 언제나 무언가를 향해 가는 과정일 뿐이라는 위로였다. 


제가 참여 중인 모임 '따스 한 문장'의 미션 글입니다. 모임에 대해 더 알고 싶은 신 분은 아래 링크를 참고해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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