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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루나 Jun 27. 2021

스페인이 마스크를 벗던 날

2021년 오늘, 스페인은 이렇게 삽니다.

401일 만의 일이었다. 스페인에서 야외 마스크 착용 의무가 지난 토요일(6.26) 해제되었다.


작년 봄 스페인에서 야외 마스크 착용이 의무화되던 날을 기억한다. 사람들은 야외에서 마스크를 쓰지 않고 전화통화를 하며 지나가던 행인과 거친 숨을 내쉬며 달리기를 하던 행인들을 불안해했다. 그런 여론이 고조될 즈음 정부는 1.5미터 이상의 거리두기가 불가한 야외라면 마스크를 써야 한다고 발표했고 이내 거리두기와 상관없이 야외에서도 항상 마스크를 쓰도록 규정했다.


늘어가던 확진자 수와는 별개로 스페인은 전 세계에서 가장 많은 제약을 가진 나라이자 가장 처음 야외 마스크가 의무가 된 나라 중 하나가 되었다.




올해는 조금 달랐다. 스페인은 유럽 내에서 가장 빠르게 조치를 풀어 나갔다. 덕분에 인근 프랑스 등이 아직 수개월째 레스토랑 영업을 못하고 있던 봄, 밤 12시까지 문이 열려 있는 스페인으로 관광객들이 몰려왔다. 시내를 걷다 보면 어쩐지 스페인어보다 프랑스어가 더 많이 들리는 듯했다. 공원에서 프랑스 여자가 연신 공원 이곳저곳을 비추며 영상통화를 하고 있는 것을 본 것도 그때였다. 프랑스어를 알아듣지는 못하지만 뭔가 벅찬듯한 그녀의 음성과 얼굴에서 그녀가 이런 말을 하고 있지는 않을까 짐작했다.


야, 여긴 천국이야!


한국의 방역 기준으로는 인구 10만 명당 확진자 수가 4명 이상일 경우 '대유행'단계로 외출금지가 실시된다. 팬데믹 시작 이후 그 어느 때보다 상황이 좋다는 스페인의 현재 인구 10만 명당 확진자수는 95명이다. 빌런(*)이 4명이 있으면 지옥이 되는 곳과 95명뿐이면 천국이 되는 나라, 지옥과 천국도 상대적인 것임을 이번 전염병으로 배웠다.




짐작한 대로 시내 광장에서는 토요일 0시가 되던 순간 소소한 축하 세리머니가 있었다. 사람들을 마스크를 벗어던지고 키스를 했고 얼싸안았다. 뭐든 과장해서 보여주려는 뉴스 화면 속에서도 상당히 소수의 사람임이 느껴졌다. 그도 그럴 것이 오후가 되어 나간 마드리드 시내에는 관광객들을 제외하고는 거의 대다수가 마스크를 여전히 쓰고 있었다. 사람들은 공포를 학습했고 마스크에 익숙해진지 이미 오래였다.


시내에서 제일 먼저 마스크 줄을 샀다. 이제 자주 벗고 써야 하니 그동안 팔에 걸쳐 놓던 방법 대신 목에 걸어놓는 게 편할 것 같다는 생각이었다. 얼마 전까지는 더 예쁘고 잘 어울리는 마스크가 그렇게 사고 싶더니 이젠 또 고심해서 마스크 줄을 고르는 게 어쩐지 우스웠다. 가볍고 썩 괜찮은 마스크 줄을 사서 목에 거니, 마스크 하나만 벗은 것인데도 무거운 코트를 벗어던진 것 마냥 몸이 가볍게 느껴졌다.


제일 좋은 건 사람들의 미소를 다시 보는 것이었다. 무슨 영문인지 어제는 유난히 사람들이 잘 웃어주었다. 스쳐가는 많은 사람들이 나를 향해 마치 오랜 친구를 조우하라도 한 듯 밝고 다정한 미소를 지으며 지나가서 다소 당황스럽기까지 했다. 나도 얼떨결에 그들을 향해 계속 생긋생긋 웃어야 했는데 그런 경험마저 꽤 즐거웠다. 아직은 대부분 마스크를 쓰고 있는 사람들 사이에서 '합법적으로' 마스크를 벗어던진 우리들끼리의 어떤 신호였을까.


어제(6.26)의 그란비아(좌) | 타파스를 먹으며 바라본 시내의 거리(우)


어제의 마드리드는 해가 뜨거웠고 그래서 자주 목이 말랐다. 그럴 때 물을 마시기 위해 마스크를 잠시 내렸다가 황급히 쓰지 않아도 되었고, 그런 행동을 경찰들 앞에서도 아무렇지 할 수 있었다. 아직 다른 대륙의 관광객은 거의 없는데도 마드리드 시민과 유럽 관광객만으로도 도로며 가게며 식당이 꽉 차서 이보다 더 많은 사람이 오면 도시가 견딜 수 있을까 싶을 정도로, 지난봄 이래 가장 많은 사람들에 치이며 다녔다.


집에 돌아와 뉴스를 보니, 여전히 심각한 세상은 요지경이다. 이번에는 델타 뭐시기란다. 정상과 비정상, 실재와 과장, 행운과 불운, 불신과 믿음, 개인과 집단. 참 많은 반의어들 속에 2021년 여름이 지나가는 중이다.  



* 확진자들을 빌런으로 칭하는 게 아니라 지옥과 천국을 표현하기 위한 상징적인 단어 선택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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