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표적으로 한국과 중국에서는 '죽음'을 뜻하는 한자와 같은 발음인 숫자 4를 불길하다고 생각한다. 스페인 사람들에게 한국 아파트에는 4호 라인이 없거나 엘리베이터에 4 대신 F라고 표기해놓은 경우가 있다고 말하면 굉장히 신기해한다. 스페인에도 불길한 숫자가 있다. 다른 기독교 문화권 국가들과 마찬가지로 13이 그 주인공이다. 그래서 스페인에도 호텔에 가면 13호가 없는 경우가 종종 있다. 하지만 재밌게도 로또를 살 때만큼은 13을 선호하는 사람들이 꽤 있다. 많은 사람들이 꺼려하는 숫자이니 당첨되면 당첨금이 더 높을 것이라는 기대에서 그렇단다.
역시 미신보다 더 무서운 건 돈이다.
위와 같은 명제를 실감한 적이 한번 더 있다. 스페인에 와서 알게 된 미신 중 가장 특이하다고 생각한 건 바로 실내에서 우산을 펼치면 재수가 없다는 것이었다. 한 번은 스페인 백화점에 우산을 사러 간 적이 있다. 한국이라면 점원에게 부탁해 우산을 펼쳐 전체적인 패턴을 확인했을 테지만, 저 미신을 알고 있기에 쉽게 말이 떨어지지 않았다. 몇 번이나 망설이다가 아주 조심스레 점원에게 혹시 우산을 좀 펼쳐봐 줄 수 있냐고 물어봤다. 그런데 그 말이 떨어지기 무섭게 점원은 내가 보고 있던 여러 우산을 과감하게 펼쳐 보여주었다. 염려가 무색할 정도였다. 덕분에 나는 마음에 드는 우산을 살 수 있었다.
사실 숫자 13처럼 스페인에서 믿는 미신은 스페인뿐만 아니라 다른 서양 국가에서도 믿는 미신인 경우가 많다. 실내에서 우산을 펼치면 안 된다는 미신도 나중에 알고 보니 영미권을 비롯해 많은 나라에서 믿는 미신 중 하나였다. 이 외에도 거울을 깨면 불길하다던가, 검은 고양이가 지나가면 재수 없다던가, 벽에 세워진 사다리 밑을 지나가면 안 된다는 미신들 역시 스페인을 비롯한 여러 국가에서 공통적으로 믿는 미신들이다. 유독 스페인어권 국가들에서 주로 인용되는 독특한 미신이라면, 13일의 금요일 대신 13일의 화요일을 불길한 날로 생각하는 것이다. 이와 관련된 말도 있다.
En martes 13, ni te cases, ni te embarques, ni de tu casa te apartes. 13일의 화요일에는 결혼도 하지 말고, 탈 것에 타지도 말고, 집 밖도 나가지 말라.
아주 심하게 미신을 믿는 사람들은 13일의 화요일에 새로운 일을 시작하는 걸 꺼려하기 때문에, 혹시 스페인 사람들과 무언가를 할 일이 있다면 13일의 화요일은 피해 보아도 좋을 것이다.
한편, 불길한 미신들이 있으면 이런 불길함을 물리치는 무기도 있기 마련이다. 스페인에서는 '나무'이다. 나무를 만지면 나쁜 기운이 물러가거나 미신의 저주에서 풀린다고 믿는다. 어떤 나무이든 특별히 상관없고 꼭 살아있는 나무가 아니라 나무 조각이나 나무로 만들어진 무엇이어도 괜찮다. 그래서 불길한 기분이 들 때면 스페인 사람들은 '우리 나무를 만지자'라고 이야기한다.
생각해보면 한국에도 행운을 가져다준다는 나무가 있다. 바로 '벽조목(벼락 맞은 대추나무)'이다. 실은 나도 벽조목 목걸이를 지니고 다니던 때가 있었다. 때로는 묵주 같은 걸 차고 다니기도 했는데 요즘은 의식적으로 이런 걸 믿거나 지니고 다니지 않으려고 노력한다. 오히려 이런 물건들이 때로는 불안의 원인이 되기 때문이다. 한 번은 여행을 앞두고 손목에 잘 차고 있던 묵주가 갑자기 끊어진 적이 있어서 기분이 너무나 안 좋았다. 이제는 그릇이나 컵이 깨져도 이 깨진 물건이 나쁜 운을 가지고 갔다며 '액땜'한 것으로 생각한다. 마음을 편히 가지고 사소한 사인에 집착하지 않기, 그게 행운을 가져다주는 물건을 잔뜩 지니고 다니는 것보다 더 낫지 않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