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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루나 Oct 05. 2021

마드리드가 바로 오징어 도시입니다

오징어 게임 봤어요?

오징어 게임이 스페인에서도 난리다. 지인들이 다들 오징어 게임을 봤냐며 '빨간불 파란불(무궁화 꽃이 피었습니다) 게임 해봤어?' '설탕 과자(달고나) 무슨 맛이야?' '그 배우 유명한 사람이니?' 묻기 시작하더니 언론과 SNS에도 오징어 게임 이야기가 도배가 되었다. 덕분에 마침 지난 일요일 하루종일 내리는 비를 핑계삼아 침대에 푹 파묻혀 오징어 게임을 보았다. '뭔데 난리야' 하는 마음으로 틀었는데 정신 차려보니 일요일이 다 지나 있었다.


어디선가 본 듯한 느낌과 클리셰도 많았지만 그런 점이 진부하기 보다는 오히려 친숙했고 무엇보다 이런 류의 영화나 시리즈에 등장하는 지나치게 복잡한 설정이나 인물구도가 없어서 좋았다. 전하는 메시지도 아주 명료했고 전개도 빠른데다가 요즘 사람들, 특히 여러 코드나 심벌들을 잔뜩 심어놔서 누구나 보고나면 왈가왈부 할 수 있는 즉, 저절로 바이럴이 되는 콘텐츠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나저나 사실 마드리드도 꽤나 오징어와 관련이 깊은 도시인데, 그 이유는 오징어튀김 바게트 샌드위치가 이 도시의 대표 먹거리이기 때문이다. 말 그대로 반으로 가른 바게트 사이에 동그랗게 튀긴 오징어튀김을 끼워 먹는 샌드위치로 시내 관광지 주변, 특히 마요르 광장(Plaza Mayor) 주변에 파는 카페들이 많다.


마드리드 대표 먹거리, 오징어튀김 샌드위치 (출처:barelbrillante.es)


사실 마드리드는 바다는 커녕 강조차 넉넉하게 있는 도시가 아닌데 해산물인 오징어튀김이 도시의 대표 먹거리인게 좀 이상하다. 하지만 마드리드에 비록 바다가 없다 할지라도 수도이기 때문에, 마드리드 사람들은 '제일 신선한 해산물은 마드리드로 온다!'는 말로 자부심을 표하곤 한다. 그런 자부심 덕분에 오징어튀김이 이 이베리아 반도 중심도시의 대표 먹거리가 된 것일까?


한편으로는 역시 수도이기 때문에 일자리를 찾아서 올라온 남부 안달루시아 사람들이 자신들이 즐겨 먹던 생선튀김과 오징어튀김을 마드리드에서 팔기 시작하면서 되려 마드리드 대표 먹거리가 되었다는 설도 있다. 실제로 남부 안달루시아 해안도시들에서는 해산물튀김을 많이 먹는데 이런 이야기도 설득력이 아주 없지는 않아 보인다. 어떤 연유이건 오징어튀김 샌드위치는 특히 70년대부터 마드리드 사람들에게 인기를 끌기 시작하며 소울푸드가 되었고 이후에는 관광객이라면 누구나 한번쯤 맛보아야 하는 음식이 되었다.  


이 음식의 위상이 어느 정도냐면 얼마 전 마드리드의 가장 유명한 오징어튀김 샌드위치 식당인 엘 브릴얀떼(El  Brillante) 주인이 향년 67세의 나이로 돌아가셨는데 마드리드의 많은 정치인들이 그를 추모를 하며 기념비를 제작하기로 했다. 물론 단순히 식당이 유명했기 때문만은 아니다. 부친에 이어 반세기 넘게 식당을 운영하며 마드리드 시민들의 마음 속에 추억과 향수를 심어주었고 이 먹거리가 관광상품화 되는데 일조하여 지역 경제에도 공헌한 바가 적지 않았다. 또 종업원을 채용할 때는 일자리를 구하기 어려운 50세 이상을 우선 채용하는 따뜻한 경영 철학을 가진 사업가이기도 했다.


오징어튀김을 파는 대표적인 식당 Bar El Brillante (출처: barelbrillante.es)


오징어 게임이 흥하는 덕분에 요며칠 난데없는 오징어 생각을 다 했다. 오징어 생각을 하다 내가 사는 도시의 오징어튀김 샌드위치도 생각했고 덕분에 저런 사업가의 인생 이야기도 알게 되었다. 콘텐츠가 가진 진정한 가치는 결국 이런 게 아닐까 싶다. 서로를 이어주고 생각을 나누며 소통하게 만들어 또 새로운 이야기를 알게 하는 그런 것 말이다. 그런 의미에서 문득 이렇게 묻고 싶다.


오징어 게임 봤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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