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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루나 Oct 12. 2021

스페인 MZ세대는 투우장에 가지 않는다

근데 왜 내가 눈물이 나지?

스페인의 남부 도시 세비야를 배경으로 펼쳐지는 오페라 <카르멘>에는 위풍당당한 아리아 <투우사의 노래>가 울린다. 프랑스 작가 메리메가 스페인을 여행하다 영감을 얻어 쓴 이 작품 <카르멘>은 오랫동안 스페인을 대표하는 이미지의 복합체였다. 태양 가득한 이국적인 풍경, 집시 여인, 정열과 사랑, 그리고 투우와 투우사까지. 


그런데 오늘날의 스페인에서도 투우사의 물레따*가 이야기 속에서만큼 여전히 화려하게 펄럭이고 있을까?


* 물레따(Muleta): 투우사가 소와 대결하며 흔드는 붉은색의 천


최근 스페인 정부가 발표한 2022년 예산안으로 다시 한번 정치권과 사회가 들썩이고 있다. 이번 예산안에는 내년에 만 18세를 맞이하는 청년들에게 인당 400유로의 '문화패스'를 지급하는 내용이 새로 추가되었는데 이 문화패스를 사용할 수 있는 대상에서 투우는 쏙 빠져 버린 것이다.


사실 투우가 이렇게 홀대를 받게 된 건 스페인에서는 전혀 놀라운 일이 아니다. 투우가 스페인을 대표하는 이미지이기는 하나 모든 국민들이 좋아하거나 전국에서 행해지는 문화는 아니기 때문이다. 태양, 지중해, 투우, 플라멩코와 같이 스페인을 대표하는 이미지는 지난 세기 프랑코 총독의 독재 정권 하에 추진했던 관광정책의 산물이다. 당시 스페인은 관광산업을 효과적으로 육성하기 위해 다른 유럽과 확연히 대조되는 스페인 고유의 이미지를 만들고자 노력했고 그렇게 선택된 것이 바로 남부지방 중심의 전통문화와 자연환경이었다.


'스페인은 다르다(Spain is different)'라는 슬로건을 내건  20세기 중반 스페인 관광홍보 포스터


이러한 관광 정책은 60년대부터 효과를 드러내기 시작해 팬데믹 이전인 2019년 기준, 스페인 관광산업은 전체 GDP의 12.4%를 차지할 만큼 성장했다. 또한 세계 관광 대상국 랭킹에서도 2위를 차지하며 명실공히 세계 최대의 관광대국 중 하나가 되었다. 그러나 산업이 성숙함에 따라 최근에는 바닷가로 짧게 놀러 와 술판만 벌이고 돌아가는 관광객들을 거부하는 분위기도 생겨나고 저런 획일화된 관광상품은 부가가치가 낮은 것으로 인식되어 오히려 지양하는 기류마저 생겨났다.


한편, 스페인은 수세기 동안 여러 왕국으로 나뉘어 있었고 현재 국토의 넓이도 대한민국의 5배에 달할 만큼 크기 때문에 지방마다 지역색도 뚜렷하고 지방자치도 발달한 편이다. 덕분에 역사적으로 스페인 중앙정부와 사이가 거의 앙숙에 가까운 지방들도 있다. 대표적으로는 바르셀로나가 위치한 카탈루냐 지방이 그렇다. 이곳의 축구팀인 FC바르셀로나의 팬들은 축구 경기가 있을 때면 '카탈루냐는 스페인이 아니다'라는 슬로건을 내걸 만큼 이곳 주민들은 스페인으로 싸 잡히는 것에 대해 큰 거부감을 가지고 있다.


이런 상황이니 카탈루냐에서는 가장 '스페인스러운' 문화 중 하나로 꼽히는 투우를 이미 지난 2008년에 법적으로 금지시켜 버렸다. 이렇게 카탈루냐가 쏘아 올린 반(反)투우 분위기는 최근 커지는 동물 보호 요구와 맞물려 스페인 전역에서 점점 확대되고 있다. 큰 투우 경기가 있는 날이면 투우장 앞에는 어김없이 동물보호단체들의 반대 시위가 열리고 방송인, 예술가 등 스피커의 힘이 큰 인사들의 공개적인 반(反)투우 선언도 꾸준히 이어지는 중이다.


그렇다면 스페인 MZ세대는 어떨까?

사실 스페인 MZ세대는 누군가 물어보기 전에는 투우를 아예 떠올리지도 않을 가능성이 크다. 언제부터인가 투우는 꼰대들의 단골 정치 이슈가 된 지 오래이다. 대체로 보수성향의 사람들은 투우를 옹호하고 지지하는 반면, 진보성향의 사람들은 투우를 혐오한다. 이에 더해 젊은 층의 무관심은 성향을 떠나 일반적인 것으로 지난 16년 설문조사에 따르면 스페인 16~24세 청년의 84%가 투우에 대해 '전혀' 자랑스럽지 않거나 '아주 조금' 자랑스러운 문화라고 답했다.


이렇게 투우에 대한 사회적 홀대가 이어지는 와중에 이번 정부의 '문화패스' 대상에 투우가 빠진 것은 반(反)투우 움직임의 결정타가 되었다. 하지만 사실 이번 정부의 이런 결정도 위에 언급한 정치 성향에 따른 투우에 대한 인식을 생각해 보았을 때 아주 새로운 일은 아니다. 현재 스페인 정부는 중도좌파와 좌파 성향의 두 당이 연립정부를 구성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리고 이 결정에 대해 역시나 보수 야당들은 '정부가 청년층의 표를 의식해 벌인 짓'이라든가 '문화재로 지정된 투우를 무시하는 일'이라고 크게 반발했다.


당사자인 투우협회에서도 '정부가 투우를 문화패스 사용 대상에서 제외한 건 차별이며 법정 소송까지 갈 것'이라고 예고했다. 이런 반발에도 해당 정책을 주관하는 문화부에서는 '투우가 법적으로 문화로 인정받는지 아닌지 여부를 떠나, 정부가 우선적으로 장려하고자 하는 대상이 아니다'라는 분명한 어조로 투우를 제외한 이유를 설명했다.


화려한 복장으로 투우와 대결을 펼치는 투우사의 모습


지금은 사회적 이슈로 더 자주 언급되는 뒷방 늙은이 신세가 되었지만, 분명 한때 투우사는 스페인 최고의 엔터테이너이자 스타였다. 날렵한 체형을 그대로 드러내는 화려하고 딱 맞는 복장을 입고 사나운 투우와 마주하면서도 흔들리지 않는 투우사의 모습은 여성들에게는 연정의 대상이자 남성들에게는 선망의 대상이었다.


헤밍웨이, 피카소와 같은 시대를 풍미한 예술가들도 투우를 사랑했고 이에서 영감을 얻곤 했다. 오페라 <카르멘>의 마지막 무대도 투우장이었다. 또한, 후에는 축구선수로 요즘은 유튜버로 바뀌었지만 한때 많은 소년들이 꿈꾸던 직업이기도 했다.


그러나 요즘 스페인 MZ세대는 투우장에 가지 않는다. 아니 투우 자체에 큰 관심이 없다.


모든 게 피고 나면 지는 것이 순리이니 시대가 변하며 화려한 무대 뒤로 쓸쓸히 사라져 가는 것이 어디 투우뿐일까. 한때 스페인의 대표 이미지로 추앙받던 투우의 몰락을 지켜보며 변화하는 스페인 사회와 시대상을 다시 한번 실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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