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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루나 Oct 14. 2021

부먹파 찍먹파? 스페인은 양파가 결정한다

스페인 사람들의 먹취향 TMI 대잔치

언제부터인가 탕수육의 소스를 부어 먹는지, 찍어 먹는지가 논란거리이다.

찍먹파는 냅다 소스를 부어버리는 이의 인성을 의심하는가 하면, 부먹파는 원래 진짜 탕수육은 이렇게 즐기는 거라며 상대방을 맛알못 취급한다. 재밌는 건 나라마다 이렇게 취향이 극도로 갈리며 논쟁을 불러일으키는 음식이 꼭 하나씩은 있다는 것이다. 당연히 많은 사람들이 서로 취향을 주장하려면 그 나라 사람들이 누구나 보편적으로 자주 먹는 음식이어야 한다.


스페인에서는 감자 오믈렛이다.


또르띠야 데 빠따따스(Tortilla de patatas)라고 불리는 스페인식 감자 오믈렛은 얇게 썬 감자를 올리브 오일에 익힌 다음 계란을 푼 것과 섞어서 팬에 지져내는 음식이다. 한국에도 잘 알려진 이 음식은 스페인 사람이라면 99.9%는 먹어 보았거나 자주 먹는 대표 요리 중 하나이다. 조리 과정이 간단한 만큼 테크닉에 따른 미묘한 손맛 차이가 큰 음식이라 매년 챔피언을 가르는 경연대회가 열리기도 한다. 그리고 이 음식에는 무려 두 가지나 사람들의 취향을 갈라서게 하는 요소가 숨어져 있다.


순수 감자파 VS 양파도 섞어파

첫 번째는 이 요리의 재료로 계란과 감자만 넣느냐, 양파도 넣느냐의 문제다. 감자만 넣어 먹는 사람은 양파가 들어간 건 쳐다도 안 보고, 양파를 섞사람은 감자만 들어간 건 취급도 안 해주기 때문이 이건 또르띠야 데 빠따따스 조리법에 있어 매우, 대단히, 심각하게 중요한 문제이다.


또르띠야 데 빠따따스, 위쪽이 양파가 들어간 제품(Con cebolla), 아래쪽이 감자만 있는 제품(Sin cebolla)이다 (출처: google검색)


매우 흔한 음식이니만큼 냉장 조리식품으로도 만들어져 여러 브랜드에서 많이 판매하는데, 대부분 브랜드에서 순수 감자 버전과 양파를 섞은 버전을 나누어 출시할 정도이다. 양파파인 가족은 한 번은 실수로 감자만 들어간 버전을 산 뒤 집에 와서야 그 사실을 확인하고 경악한 적도 있다.


으악! 감자만 들어간 걸로 사 왔어!


이게 얼마나 중대한 문제냐면 마드리드 유일의 미슐랭 3스타 레스토랑의 오너 셰프인 데다가 얼마 전 세계셰프어워드에서 1위를 차지한 스페인 셰프 다비드 무뇨스가 출연한 토크쇼에서 진행자의 마지막 질문도 "또르띠야 데 빠따따스에 양파 넣나요, 안 넣나요?"였다.


그의 대답은 무엇이었을까? 그의 대답은 "양파는 안 넣는 게 진리!"였다.


신선한 계란과 잘 익혀진 감자만 있다면 양파의 맛 따위는 필요 없다고 말하면서도 "아마 이게 방송되면 항의 전화 좀 받겠다"라고 걱정을 덧붙였다. (그리고 그의 걱정대로 토크쇼 내용이 기사에 뜨자 '저 셰프라는 사람은 아무것도 모른다!'며 양파파들의 공격이 시작되었다.)


계란 반숙파 VS 계란 완전 익혀파

양파 논란과 더불어 또 다른 논란이 되는 건 이 감자 오믈렛의 속을 완전히 익혀서 포실포실하게 먹을 것인가, 속의 계란물을 반숙 상태로 두어 크리미하게 먹을 것인가의 문제이다. 완전히 익혀 먹는 걸 좋아하는 사람은 덜 익은 계란물이 비위 상한다고 표현하고, 반숙으로 먹는 걸 좋아하는 사람들은 포실포실하게 먹는 사람들을 촌스러운 사람으로 무시하기 일쑤다. 반숙으로 먹기 위해선 우선 계란이 신선하고 좋은 것이어야 하며, 뒤집는 테크닉에 있어서도 반숙 상태는 더 높은 난이도를 요구하기 때문에 같은 오믈렛이어도 좀 더 으로 여겨지기 때문이다.


여기에 북쪽으로 가면 대구살을 넣기도 하고, 어떤 지역에서는 쵸리소를 넣기도 하며, 어떤 곳은 다 만들어진 오믈렛의 반을 갈라 그 사이에 치즈와 햄 같은 걸 넣어 샌드위치처럼 먹기도 한다. 또 이렇게 튜닝(?)한 걸 싫어하는 사람은 이건 진짜 또르띠야 데 빠따따스가 아니라고 고개를 절레절레 젓기 때문에 스페인 사람들 앞에서 함부로 오믈렛 취향을 이야기했다가는 장황한 잔소리를 듣기 십상이다. 그게 외국인이라면 더더욱 자신의 취향을 진리인양 이야기해주려는 스페인 사람들의 '네가 뭘 모르나 본데' 공격을 받게 될지 모른다.


아니 참, 취향에 맞고 그름이 어딨다고 부먹이든 찍먹이든, 양파파든 감자파든, 뭐 대수인가?

그런 의미에서 당당히 말하겠다.


"전 찍먹파이고, 순수 감자파이자 반숙파입니다."



덧.

혹시 마드리드에 오실 일이 있으실지도 모르는 독자님들을 위해 마드리드의 또르띠야 데 빠따따스 맛집을 소개합니다. (참고로 반숙 스타일의 곳입니다^^) 스페인 TOP3에도 선정된 곳으로 '다니의 집'이라는 이름의 식당이구요, 명품 쇼핑거리(Serrano) 인근에 위치한 마켓 안에 입점해 있습니다. 절대 우아하게 먹을 수 있는 그런 분위기는 아니고 정신없는 분위기에서 다니가 만들어주는 또르띠야 데 빠따따스를 맛보고 싶다면 추천할만한 곳입니다. 구글에 보면 4.4천 개가 넘는 리뷰가 알려주는 로컬 찐맛집이니 한번 가보시는 것도!  까사 다니(Casa Dani) 구글 정보 보기 클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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