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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루나 Oct 31. 2021

3만 5천 명이 읽는 글을 쓴다

단지 글이 쓰고 싶어서 썼는데 수천 명이 읽었다는 알람이 뜨기 시작했다. 처음 그 알람을 받았을 때는 너무 두렵고 싫어서 당장 그 글을 삭제해버리고 싶었다. 스스로 공개된 장소에 올려놓고 왜 그런 생각을 할까 싶겠지만 이는 많은 초보 작가들이 겪는 공포 중 하나이다. 얼마 전 즐겨 듣는 팟캐스트에서는 출간 작가들조차 책 출간일이 다가오면 "이 글이 세상에 나가도 되나" "이걸 누가 읽는다고"라는 생각이 엄습한다고 한다. 이미 인쇄까지 끝났는데 그때 마음에 안 드는 부분이 발견되면 돌이킬 수 없다는 생각에 정작 인쇄된 책을 본인은 읽지 못하기도 하고 급기야는 "제가 잘못했어요! 계약금 돌려드릴 테니 제발 출간하지 말아 주세요!"라고 빌고 싶은 심정까지 든다고 한다.


운이 좋아 여러 번 메인에 소개되다 보니 이제 많은 사람들이 읽었다는 알람은 크게 신경 쓰지 않을 만큼 두려움은 사라졌다. 그런데 이제 그와 별개로 내 글이 이렇게 많은 사람들이 읽을 가치가 있는 글인가 하는 고민이 시작되었다. 객관적인 소재만 쓰려다 보면 너무 지루해지고 개인적인 이야기를 쓰려하면 일기나 사생활 떠벌리기식의 글이 될 것은 걱정에 늘 이도 저도 아닌 글을 쓰는 기분이 든다. 그렇다고 뻔한 교훈이나 감동을 자아내는 고루한 글을 또 쓰기 싫으면서 어쨌든 독자에게 어떤 식으로든 긍정적인 영향을 주고 싶다는 생각을 하니 점점 답이 없어진다. 그리고 이 모든 고민은 결국 누가 보아도 좋은 글을 쓰고 싶다는, 이룰 수 없는 바람과 맞닿는다.


그러나 그건 얼마나 오만하고도 불가능한 바람일까. 나의 행동, 생각, 의견에 대한 상대방의 수용 방식이나 반향은 내가 통제하거나 선택할 수 없는 부분이다. 때론 나의 의미 없는 행동이 상대방을 불편하게 하기도 하고 심지어 선의를 가지고 한 행동조차 부정적으로 받아들여질 때도 있다. 나의 행복을 추구한 일이 다른 누군가에게는 상처가 되기도 반대로 뜻하지 않게 누군가를 돕기도 한다. 그건 나도 그렇다. 살면서 얼마나 많은 이들을 오해하고 그들의 행동과 생각을 곡해했을까. 언제나 그리고 누구나 자신은 절대 선善이기 때문에 자신을 자주 돌아보며 사는 사람이라 할지라도 늘 본인을 기준으로 남을 생각하게 된다. 사는 일도 이러한데 내 글이 누구나에게 좋은 것이었으면 좋겠다는 바람은 참으로 무모하다.


궁극적인 지향점이 파워블로거나 인플루언서는 아니라서 일방적으로 전해지는 알람 외에는 글의 통계를 굳이 찾아보진 않는다. 그런데 이번 달은 유난히 조회수 알람이 자주 와서 통계를 들어가 보니 월간 조회수가 3만 5천을 넘었다. 내 글이 그렇게 많은 사람들이 읽을 만한 글인가 하는 지루한 자기반성은 구태여 다시 하지 않겠다. 내가 쓰고 싶어서 썼듯이 그들도 읽고 싶어서 읽었고 감상은 그들 고유의 몫이다.

그래도 읽어주신 분들이 많아 감사하다


지금까지 수십 개의 글을 올렸지만 그중 마음에 쏙 드는 글은 거의 없다. 이미 올려버린 글은 한자리에 박제되어 멈추어 있지만 사람은 계속해서 변화하는 존재이기에 멈추어 버린 나의 글 속에서 이제 동의하지 않는 생각의 흔적들도 발견하곤 한다. 바뀌어버릴 생각들을 왜 쓰는지 묻는다면 정말 쓰는 이유는 하나도 남지 않고 사라져 버리지 않을까. 세상에 절대적인 것은 없다. 절대적인 무언가를 갈망하며 쓰는 건 아니다. 그러니까 도대체 왜 쓰냐면, 이 또한 곧 바뀌어버릴 생각일지도 모르겠지만, 더 나은 사람이 될 수 있다는 희망으로 쓴다.


늘 마음에 안 드는 글을 쓰면서도 내일은 조금 더 만족스러운 글을 쓸 수 있을지 모른다는 희망, 그리고 그런 글을 쓸 수 있는 사람이라면 더 나은 사람일지도 모른다는 기대로 쓴다. 모두에게 더 나은 사람이 되고 싶은 기대는 하지 않는다. 그럴 수 없음을 이젠 알기 때문이요, 굳이 그렇게 되고 싶지도 않아졌기 때문이다. 결국 사람은 자신다울 때 가장 행복한 것 같다. 그 자신이 어떤 모습이라도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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