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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루나 Nov 10. 2021

밤 11시의 독자님께

일 때문에 필요한 상황이 아니면 폰은 늘 무음 모드로 해둔다. 그래서 가끔 폰을 보면 잔뜩 떠 있는 알람을 발견하곤 한다. 지난 며칠간 이따금 폰을 보면 브런치 알람이 무더기로 떠 있었다. 언젠가부터 내 글을 읽기 시작한 한 독자님으로부터 온 '좋아요' 알람이다. 모든 알람을 꼼꼼히 보지는 않기 때문에 정확히 언제부터, 어떤 글을 시작으로 그분이 내 글을 좋아하기 시작했는지는 모르겠다. 그분을 기억하게 된 건 며칠간 꾸준히 내 브런치의 모든 글을 다 읽으시며 '좋아요'를 누르고 계시기 때문이다. 알람의 간격은 글의 길이에 따라 2분, 3분, 4분, 5분 다양하다. 그 말은 정말 그 글들을 다 읽고 '좋아요'를 누른다는 뜻이다


알람이 뜨는 시간은 한국 시간으로 늘 밤이다. 대충 9시~12시 즈음이다. 덕분에 점심시간 커피 한잔을 들고 산책하다 알람이 하나둘 도착하는 걸 직접 마주한 적도 있고, 오후 업무를 하다 폰을 확인했을 때 한 무더기의 알람들이 떠있는 걸 발견하기도 했다. 한번은 그 독자님의 밤을 상상해봤다. 간혹 너무 늦은 밤에 알람이 뜨면 괜히 잘 시간을 뺏고 있는 건 아닌지 미안하기도 했다. 그러면서도 내 글이 누군가의 하루 마무리가 된다는 사실은 생각보다 더 큰 행복을 주었다. 밤의 독자님과 함께 나의 옛날 글을 같이 둘러보며 마치 식당을 새로 개업한 사람처럼 글이 입맛에는 잘 맞는지 초조해 하기도 하고, 그 글은 좀 별로인데 읽지 말고 넘어가 주시지 민망하기도 했다. 또 알람이 울리지 않는 날에는 바쁘신건지 괜히 궁금하기도 했다.


알람이 뜨던 오후의 카라멜 마끼야또. 지난 여름 누군가 사줬던 이 커피가 참 맛있었기에 그 기억으로 오랜만에 마셔봤다 (C) 2021, 이루나, All rights reserved


그렇게 '좋아요'를 꼼꼼히 누르시면서 댓글은 한 번도 안 남기시는 점마저 이 독자님께는 고마웠다. 그저 묵묵한 응원 같이 느껴져서 그랬다. 이렇게 그분에게 직접 글을 남기는 것도 '좋아요'를 누른 독자 목록은 나만 볼 수 있기 때문에 밤의 독자님께 어찌 보면 몰래 감사의 마음을 전하는 것이다. 그러니 부디 이 글에도 댓글 대신 '좋아요'만 눌러주시기를 기대한다.




그동안은 글을 쓰는 일이 주는 행복이 컸는데 요즘에는 고통이 좀 더 커졌다. 최근 에세이 같은 글을 많이 써서인지도 모르겠다. 다른 이들의 글을 보다 보면 유독 자기반성이나 자조적인 표현을 많이 쓰는 사람들이 있다. 나 역시 종종 그런 편이다. 가끔은 그 이유가 자기 방어 같다는 생각도 한다. '나 부족한 거 나도 이만치 아니까 뭐라고 하지 마!'라고 소심하게 외치는 꼴이랄까. 겸손과 자기혐오를 구분하기를 희망하고 지나친 반성도 위선이라고 생각하는 까닭에 그런 글을 쓸 때면 특히 조심하려고 노력한다.


하지만 글을 쓰다 보면 잊혀진 일들을 기억하게 되기도 하고 스스로를 자꾸 돌아보게 되다 보니 때로는 내 단점과 실수만 잔뜩 마주하기도 한다. 그런 날은 괴로워서 앞으로 살아가며 할 실수들이 더 많이 남았을 텐데 어쩌면 좋을지 발을 동동 구르고 싶은 심정이다. 그렇다고 본인이 딱히 완전무결한 이상을 품고 사는 사람도 아니면서 그저 싫어하는 내 모습을 마주하게 만드는 글쓰기가 괴로웠다.


하루끝 내 글을 읽고 있을 독자님께 (C) 2021, 이루나, All rights reserved


그런 괴로움 와중에 밤의 독자님이 보내주시는 알람은 글쓰기를 다시 견디게 해주는 물약이 되었다. 글쓰기로 뭐가 되고 싶은지는 나도 모르겠다. 그런 목표가 있었더라면 좀 더 전략적으로 글을 쓰고 투고를 하는 수고를 해보았을 것이다. 아직은 그저 쓰고 싶다는 생각 외에는 도대체 왜 쓰는지는 나조차 확실히 알 수가 없어 그저 쓰는 일만 하고 있다. 대작을 짓는 것도 아니고 그냥 이것저것 쓰는 일에도 괴로워하면서도 또 그때마다 찾아오는 무언가로 결국은 쓰고 마니 일단은 쓰고 있다. 당분간은 밤의 독자님의 알람 백신 덕에 좀 더 쓰는 일을 견딜 수 있을 것 같다. 묵묵한 감사의 마음만 전하고 싶었는데 그럴 방도가 없어 내 딴에는 꽤나 요란스러운, 이런 방식으로 감사를 전한다.


고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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