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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루나 Jan 04. 2022

알고 보면 은근 잘난 스페인, 스타트업은?

- 주목받는 스타트업부터 차세대 유니콘 후보까지 -

지난 연말 동안 드라마 <스타트업>에 뒤늦게 푹 빠져 지냈다. 어찌나 재밌게 보았던지 이후 업계 사람들의 인터뷰와 기사들까지 여럿 찾아볼 정도였다. 스타트업은 기술과 아이디어를 무기로 불확실한 내일을 견디며 오늘을 뛰는 기업들이다 보니 그들의 이야기를 듣는 것만으로 상당한 용기와 위안을 얻었다. 그러다 문득 스페인 스타트업들은 어떨까 하는 궁금증이 생겨났다.


스페인에 관광 말고 볼 거 있어? No No~

그에 앞서 스페인과 스타트업이라는 단어가 서로 잘 어울리지 않는다고 생각할 수도 있을 것 같다. 스페인이 큰 주목을 받는 나라는 아니다 보니 별 관심이 없거나 그저 관광산업 멱살만 잡고 경제가 돌아가는 나라 정도로 인식하는 것도 외부의 시선에서는 무리가 아니다. 하지만 스페인은 알면 알수록 은근히 못하는 게 없는, 그래서 "어랏? 이것도 잘한다고?"라는 말이 튀어나오는 나라이다.


비록 자체 브랜드는 없지만 외국 자동차 회사의 제조 및 부품 공장이 북부지방을 중심으로 포진해 있는 스페인은 독일에 이은 유럽 2위의 자동차 제조 강국으로 국가 GDP의 11%, 수출의 15%가 자동차 산업에서 발생한다. 건설 분야에서는 해외 수주액 기준 11년 연속 1위 자리를 지키고 있는 ACS를 비롯해 Ferrovial(10위)와 TR(20위) 등 50위권 내 스페인 건설사가 6개나 있다. 참고로 같은 랭킹 내 가장 높은 순위의 한국 기업은 현대건설로 16위이다. (ENR 2021년 보고서 기준)


2021년 세계 건설사 순위 (출처: ENR)


또한 스페인 최대 전력회사인 이베르드롤라(Iberdrola)는 세계 2위의 신재생 에너지 기업으로 지난해 GS에너지와 관련 분야 아시아 시장 공동 진출을 위한 업무협약을 체결하기도 했다. 이 외에도 금융, 패션 리테일 등 여러 산업에 걸쳐 세계적인 기업들을 가지고 있으며 하다 못해 광물 자원도 풍부한 편으로 전기차 배터리에 꼭 필요한 리튬 매장량 유럽 2위 국가이기도 하다.


스페인 스타트업 투자 유치 유럽 6위, 유니콘 기업 12곳

그래도 스타트업은 좀 약하지 않을까 생각했지만 한참 오산이었다. 영국 벤처 캐피탈 회사 아토미코(Atomico)에 따르면 스페인 스타트업 투자 유치금 규모는 유럽 6위이며, 지난해 3분기까지 투자 유치금은 26억 유로로 2020년 전체 대비 약 3배가 늘어났다.


기업가치가 10억 달러(1조 원) 이상이면서 창업한 지 10년 이하인 비상장 스타트업 기업을 의미하는 유니콘 기업들도 최근 여럿 추가되었다. 바르셀로나에 본사를 둔 배달 서비스 업체 글로보(Glovo)와 테슬라를 퇴사한 엔지니어가 창업한 전기차 및 주택용 충전기 개발업체 월박스(Wallbox) 등이 그 주인공이다. 그 결과 현재 유럽 전체 유니콘 기업 321곳 중 12곳이 스페인에 있다.


앱으로 관리받는 셀프 치열교정기, 차세대 유니콘 기업 후보까지 요즘 뜨는 스페인 스타트업!

그런가 하면 비즈니스 네트워크 플랫폼 링크드인(LinkedIn)이 선정한 '일하기 좋은 유망 스페인 스타트업 회사' 순위에서는 보다 다양한 분야에서 성장 중인 스페인 스타트업 회사들을 엿볼 수 있다.


에우라 푸드(Heura Food): 2017년 창업, 바르셀로나 본사, 푸드테크, 식물성 육류 개발 및 생산

더 파워 MBA(ThePowerMBA): 2018년 창업, 마드리드 본사, MBA 분야 중심 온라인 교육 서비스, 마이크로 러닝(소액, 단시간 투자 공부) 제공

콜빈(Colvin): 2016년 창업, 바르셀로나 본사, 생산자 직송 온라인 꽃배달 서비스, 최근 프랑스 시장 진출을 위한 4.5천만 유로 투자 유치 성공, 스페인 외 포르투갈, 이탈리아, 독일에서 서비스 중

프레쉬리 코스메틱스(Freshly Cosmetics): 2015년 창업, 타라고나 본사, 온라인 기반 친환경 내추럴 화장품 판매 (오프라인 매장 2곳 운영)

비도미(Vidoomy): 2017년 창업, 마드리드 본사, 영상광고 제작 및 디지털 마케팅

임프레스(Impress): 2019년 창업, 바르셀로나 본사, 치과가 아닌 집에서 직접 사용하는 셀프 치열교정기 제작 업체로 전용 앱을 이용해 시술 관리, 최근 4.1천만 유로 투자 유치로 기운영 중인 시장(스페인, 이탈리아, 영국, 프랑스, 포르투갈) 내 성장 추진 중

플라타노멜론(Platanomelon): 2015년 창업, 바르셀로나 본사, 온라인 성인용품 판매 및 관련 유튜브 채널 운영(구독자 145만 명)

팍토리알(Factorial): 2016년 창업, 바르셀로나 본사, 중소기업용 인력 관리 솔루션 및 소프트웨어 개발, 최근 6.7천만 유로 투자 유치로 브라질과 미국 법인 설립 추진 중

트래블퍼크(TravelPerk): 2015년 창업, 바르셀로나 본사, 비즈니스 트래블 전용 온라인 예약, 관리 플랫폼, 업계 선정 차세대 유니콘 기업으로 성장할 가능성이 가장 높은 회사 중 한곳


앱으로 관리받는 셀프 치열교정기를 판매하는 스페인 스타트업 임프레스 제품 사용 예 (출처: IMPRESS)

 

엑시트에 성공한 창업가들의 놀라운(?) 행방

이런 스타트업 생태계에서 성공을 가늠하는 척도이자 가장 중요한 것 중 하나가 엑시트이다. 엑시트를 통해 투자자는 투자금을 회수하게 되고 창업자는 회사를 현금화하여 경제적 이익을 얻게 된다. 현금화를 위해서는 더 큰 기업에 회사를 팔거나(M&A) 기업공개(IPO)를 통해 회사 주식을 공개하여 파는 방법이 있다. 개인적으로 가장 놀랐던 것은 이렇게 엑시트가 성공적으로 마무리된 스타트업 창업자들의 이후 행방이다. 당연히 큰돈을 거머쥔 채 남은 인생 신나게 즐기며 살거라 생각했는데 많은 경우 재창업을 한다고 한다(!). 스타트업 생태계에 엑시트가 중요한 이유가 이 때문이다. 투자자는 자금을 회수하여 새로운 스타트업을 키울 수 있고, 기존 창업자는 기술과 현금화한 자산을 가지고 또 다른 스타트업을 창업해 사회와 기술 발전에 기여하기 때문이다.


유학시절 은행을 통한 학비 송금이 너무 복잡하고 어려워 직접 글로벌 결제를 위한 핀테크 기업 플라이와이어(Flywire)를 창업해 유니콘 기업으로 성장시킨 뒤 엑시트에 성공한 MIT 공대 출신의 스페인 사업가 이케르 마르카이데도 같은 경우다. 그는 엑시트 이후 고향 발렌시아로 돌아와 다시 창업가로 변신했으며 지역 스타트업 협회를 만들어 스타트업 생태계의 선순환에 공헌하고 있다.


머스크의 1달러 프로젝트

한편 현시대 가장 위대한 창업가 테슬라의 일론 머스크의 일화도 인상 깊다. 그는 창업 전 이른바 '1달러 프로젝트'를 감행했다. 하루 1달러씩 한 달 30달러로 사는 실험이다. 이를 위해 대형마트에서 30달러어치의 냉동 핫도그와 오렌지를 산 뒤 매일 그것만 먹으면서 돈 없이 사는 게 어떤지 체험했다고 한다. 경제적으로는 큰 어려움 없이 자란 그가 가난을 시험해본 이유는 단 한 가지였다. 창업에 실패해서 망해도 살만한지를 알아보기 위해서였다. 아무리 망해도 한 달 30달러는 벌 수 있겠지라는 생각으로 한 이 실험의 결론은 '그래도 살만하다'였고 그는 바로 창업에 도전했다.


언제나 새로운 세계를 알아가는 일은 흥미롭다. 외진 여행지를 가면 어떤 작은 집에 걸린 빨랫감만 봐도 안심되곤 한다. 그건 이렇게 구석진 곳에서도 사람은 죽지 않고 사는구나 하는 안도감에 가깝다. 드라마 <스타트업>에서 시작해 잘 알지 못했던 스타트업의 세계가 어떤지 엿보는 이 며칠은 다른 종류의 안도감과 용기를 주었다. 망설임 없이 꿈을 꾸고 실현하며 하나를 이룬 뒤에도 안주하지 않고 기꺼이 다시 한번 리스크를 감수하며 새로운 꿈을 만들어가는 스타트업 창업자들의 패기만큼은 꼭 닮아보고 싶은 새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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