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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루나 Jan 10. 2022

코로나 덕에 얻은 뽀뽀 안 할 권리

가볍게 인사하고 싶어요!

아는 사람은 다 알다시피 스페인에서는 만나고 헤어질 때 양볼을 서로 맞대고 '쪽' 소리를 내는 볼 뽀뽀 인사를 한다. 그것도 한쪽 볼당 한 번씩 두 번이나! 그래서 이 인사법을 스페인어로 도스 베소스('뽀뽀 두 번'이라는 뜻)라고 한다.


오만 사람들과 다 볼 뽀뽀를 하는 건 아니고 가족, 친지, 친구, 친한 지인 등  어느 정도 가까운 사람들 간에 주로 하는 인사법이다. 물론 간혹 생전 처음 보는 사람과 할 때도 있긴 하다. 예를 들면 연인의 지인들을 처음 만났을 때 연인이 이 사람은 누구다 소개해 주면 서로 볼 뽀뽀를 하며 반갑다고 이야기하는 게 일반적이다. 가족행사에서 처음 보는 먼 친척이나 가족의 지인을 만났을 때도 볼 뽀뽀를 하며 자기소개를 한다.


반면 공적인 관계에서는 여성들끼리나 이성간은 볼 뽀뽀를 하는 경우가 있지만 남자들끼리 하는 경우는 거의 없고, 매일 보는 직장동료들과는 성별을 떠나 당연히 하지 않는다.


그렇다 해도 대부분의 사람들은 가족이나 친한 관계들이 있기 때문에 볼 뽀뽀 인사 자체는 스페인에서 매우 보편적이고 일상적이다. 아니, 그랬었다. 코로나 이전의 세상에서는.


코로나가 길어지니 지인들과 뽀뽀를 하며 인사한 게 언제인지 잘 기억나지 않는다. 2020년 스페인 정부에서는 사회적 거리두기의 일환으로 인사할 때 볼 뽀뽀 대신 팔꿈치를 서로 부딪히라고 권장하는 캠페인을 했다. 이후 팔꿈치 인사는 주먹을 쥔 손을 서로 가볍게 맞닿는 인사로 바뀌었다. 이 주먹 인사는 스페인뿐만 아니라 한국을 비롯해 여러 나라에서 권장하는 '코로나 시대의 인사법'이기도 하다.


팔꿈치를 마주치며 인사하는 스페인 총리와 야당 대표 (출처: youtube 캡쳐)


처음에는 적응이 안 되었는지 아니면 예전 습관 때문이었는지 굳이(!) 마스크를 쓰고서까지 볼 뽀뽀를 하고 있는 스페인 사람들을 자주 목격했다. 그땐 도대체 왜 저렇게까지 볼 뽀뽀에 집착하냐며 경악했지만 나 역시 막상 가족이나 지인들과 만날 때 볼 뽀뽀를 안 하려니 뭔가 허전하고 어색해서 괜히 팔꿈치를 들이밀며 흰소리를 해댔다.


"하하하하하! 요즘은 팔꿈치 인사를 한다죠! 자 팔꿈치 팔꿈치!"


그러나 팬데믹이 길어지며 점점 가족 간에도 볼 뽀뽀를 하는 빈도가 줄어들어 이제는 급기야 누군가 볼 뽀뽀를 하려고 다가오면 당황하는 지경에 이르렀다. 특히 이번 크리스마스 시즌에 그걸 실감했다. 가톨릭 문화권인 스페인에서는 크리스마스가 최대 명절이기 때문에 온 가족이 다 모인다. 덕분에 오랜만에 본 조카들이 내 주먹을 지나쳐 마스크 쓴 얼굴을 가까이 대자 너무 놀라 하마터면 뒤로 물러설 뻔한 것이다. 이후 빠르게 정신 차리고 태연한 척 볼 뽀뽀 인사를 하며 '아 맞다. 이런 인사를 하던 시절도 있었구나'를 새삼 생각했더랬다.


다행히(?) 오랜만에 본 조카들 말고는 모두 그냥 서로 손을 흔들거나 주먹을 맞닿는 인사를 했다. 덕분에 인사하는 시간이 획기적으로 줄어들었다. 예전에는 모든 사람들과 만나고 헤어질 때 볼 뽀뽀 인사를 해야 했기에 가족이 많이 모이는 우리 같은 경우는 인사에만 10분 이상이 소요되었다. 또 그냥 볼 뽀뽀만 던져서는 안 되고 볼 뽀뽀 후 눈을 마주치고 '잘 지냈니? 회사랑 집은 별일 없고?'와 같은 일상적인 안부와 더불어 나는 외국인인 탓에 '한국의 가족들은 다 잘 계시지? 부모님도 안녕하시고? 새로 태어난 조카는 건강하니? 몇 개월이랬지?' 등등 바다 건너 가족들의 안부 인사까지 전하려면 정말 인사가 한도 끝도 없이 길어졌다. 


그런데 이번 명절에는 인사 때 서로 가볍게 손을 흔들며 '잘 지냈지? 건강하고?' 이 정도만 가볍게 이야기하니 그렇게나 간편하고 좋을 수가 없었다. 그렇다고 인사만 하고 헤어지는 것도 아니고 어차피 같이 식사를 하며 그간 밀린 장황한 안부와 러 이야기를 하는데 이전처럼 엉거주춤 서서 혹시 누구랑 볼 뽀뽀를 놓친 건 아니겠지 분주히 움직이며 인사를 하지 않아도 되는 게 상당히 쾌적하고 좋았다.


그야말로 코로나 덕에 얻은 뽀뽀 안 할 권리이다.


혹시 나만 너무 냉정한 생각을 하는 건가 궁금해 '코로나' '볼 뽀뽀 인사' 같은 키워드로 인터넷을 찾아보니 이미 많은 스페인 사람들이 진즉부터 나와 같은 생각을 하고 있었다. 특히 공적인 관계에서도 더 잦은 빈도로 볼 뽀뽀 인사를 강요받았던 여자들은 '됐고! 바이러스랑 상관없이 이제 볼 뽀뽀는 끝이다!'라고 트위터나 각종 SNS를 통해 선언하며 굉장히 많은 호응을 받고 있었다.


* 트위터에 스페인 볼 뽀뽀 인사를 뜻하는 "도스 베소스"를 치면 나오는 인기 트윗들: 업무상 관계까지 여자들이 볼 뽀뽀 인사하는 건 제발 이제 그만 / 볼 뽀뽀 인사로 다시 돌아갈 필요 없어. 진심 이대로가 좋음 / 포옹 인사가 더 낫지 웬 볼 뽀뽀 / 다시 볼 뽀뽀 인사하는 사람들 뭐야? 그거 아무도 안 원해 / 깐또델로꼬(스페인 가수) 돌아오는 건 오케이, 볼 뽀뽀는 노


타인과 가까운 신체 접촉을 하는 게 내키지 않고 비위생적이니 아예 성별을 떠나 가족이 아니면 볼 뽀뽀 인사는 안 하는 걸로 국가적 합의를 보자는 의견까지 있었다. 비슷한 생각을 하니 그런 의견이 더 부각되어 보였던 것이겠지만, 스페인에서 아주 보편적이고 일상적이었던 볼 뽀뽀 인사에 내심 불만이 많은 사람들이 의외로 많았다는데 신선한 충격을 받았다.


어느덧 코로나 원년 3년을 맞이하는 올해, 이젠 그다지 새삼스럽지도 않지만 코로나가 정말 많은 것을 바꿔 놓고 있다. 앞으로는 스페인의 인사법도 많이 달라질 듯하다. 그간 스페인 어디서나 흔하게 보이던 볼 뽀뽀 인사도 이제는 아주 가깝고 각별한 사이에서만 하는 것으로 점차 변하지 않을까 생각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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