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페인의 봄은 블라시오 성인과 함께 온다

입춘대길 건양다경

by 이루나

종이 달력 보기가 귀해진 시대이지만, 예전 기억을 더듬어보면 한국 달력의 양력 날짜 밑에는 무언가가 빼곡히 적혀 있었다. 대개 음력 날짜와 절기 표기였다. 이렇게 주로 사용하는 양력 날짜 외에도 무언가 잔뜩 적혀 있는 건 스페인 달력도 마찬가지이다. 가톨릭 문화권인 스페인의 달력에 적혀 있는 건 바로 그 날짜에 축일을 맞이하는 성인의 이름이다. 가톨릭에서 축일은 보통 성인이 돌아가신 날짜로 순교자의 죽음을 끝이 아닌 새로운 탄생으로 보고 축하한 데서 기인한다.


그중 입춘 무렵인 양력 2월 3일은 4세기 기독교 박해 때 순교한 주교 블라시오 성인의 축일이다. 스페인어로 블라시오 성인은 블라스(Blas)라는 이름으로 불리는데 그 앞에 성인을 의미하는 산(San)을 붙여 산 블라스(San Blas)로 통칭한다. 한국과 같은 절기는 없지만 스페인에도 각 시기마다 날씨를 암시하는 구전 속담이 많은 편으로 스페인의 봄은 바로 이 블라시오 성인과 함께 온다.


산 블라스 날이면 황새가 보인다

Por San Blas la cigüeña verás


스페인에서는 블라시오 성인의 축일 무렵 겨울을 나기 위해 남쪽으로 갔던 황새가 돌아온다 하여 '산 블라스 날이면 황새가 보인다'는 속담으로 입춘을 알린다. 보통 이렇게 날씨나 절기를 표현하는 속담은 각운을 맞추어 리듬감을 주기 마련인데, 이 속담 역시 '뽀르 산 블라스, 라 시구에냐 베라스'로 라임을 살렸다.


블라시오 성인의 날을 맞이해 살라망카 대성당 앞 화단을 가꾸는 모습 (c)2022. 이루나. All rights reserved


봄의 시작을 알리는 날답게 머물고 있던 살라망카 도시의 대성당을 지나는데 화단을 가꾸는 손길이 분주했다. 지난 2주간 최저 기온이 계속 영하로 떨어져 추웠던 것과 달리 유난히 훈풍이 느껴졌다. 비록 문구 그대로의 의미는 아니지만 오늘 미사에서 전한 복음 역시 '너희 발 밑에 먼지를 털어버려라'였다. 먼지가 내려앉아 낡아 버리기 전 캐캐 묵은 지난해의 때를 완전히 털어 버리며 새로운 한 해, 새로운 계절과 인사한다.


올해 한국은 스페인보다 하루 늦은 2월 4일에 입춘을 맞이한다. 봄에 크게 상심하고 아팠던 기억이 있어 봄의 아름다움에 상대적으로 상처 입을 이가 또 있을까 하여 무턱대고 찬양하기 어려운 마음이 들기도 한다. 부디 아름다움 앞에서 그 아름다움에 온전히 기뻐할 수 있는 여유와 행복이 모든 이와 함께 하기를 소망하며 익숙한 네 음절의 말을 곁든다.


입춘대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