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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루나 Jun 27. 2022

그러니 오늘도 부디 걸어주세요

서로의 뜻하지 않은 위로가 될 수 있다면

순례길을 떠올리면 유난히 기억나는 순간들이 있다. 보통 아주 사소한 순간들이다. 그중 하나는 한 사람의 발자국 소리에 관한 기억이다.



 

순례 첫날 만나 내내 함께 걸었던 친구들과 여러 이유로 헤어져 혼자 걷게 되었다. 한 친구는 다리가 아파 며칠 쉬기를 원했고 다른 친구들은 느린 우리의 속도를 맞춰 걷느라 늦어진 일정을 재촉하기 위해 떠나야만 했다. 다른 이들의 속도만큼 빠르게 걸을 수 없던 나는 부르고스를 떠나던 날 드디어 혼자가 되었다.


사실 처음에는 혼자라는 사실이 은근히 좋았다. 조용히 많은 생각을 하며 걷고 싶었던 기대와 달리 너무 많은 순례자들과 친해졌고 매일 그들과 어울려 놀며 정신없는 날들을 보냈기 때문이다. 그래서 중간에 드디어 만난 고요함에 설레기까지 했더랬다. 그러나 그 설렘이 곧 고독으로 바뀌기까진 반나절이 채 걸리지 않았다.


가뜩이나 느린 걸음인데 혼자 걷는 길은 더 축축 늘어졌다. 가끔 다른 순례자들과 마주치긴 했지만 모두 형식적인 인사만 하고 쌩 지나쳐 갔다. 내가 늦게 걸어 보이지 않으면 혹시 내게 무슨 일이 생긴 건 아닌지 연신 메시지를 보내고 괜찮다는 내 답에도 굳이 앞선 길을 멈추고 기다려주던 이전 친구들이 더욱 그리워졌다.


그렇게 늦은 오후 겨우 도착한 오르니요스 델 까미노라는 마을의 알베르게는 내가 혼자라는 사실을 더욱 두렵게 만들었다. 모두 네 명의 순례자가 있었는데 그들은 모두 남자였고 이미 낮부터 마신 술에 거나하게 취해 있었기 때문이다. 그중 한 스페인 할아버지는 평생 마신 술에 취한 듯 코가 다 빨갰다. 여자 순례자에 대한 그들의 과장된 환영과 관심은 나의 걱정을 한층 더 고조시켜 무서운 생각까지 들게 만들었다. 그나마 위로가 된 건 그들이 원래부터 일행이 아니라 순례를 하다 만난 사이란 것과 그들 중 내 또래였던 이탈리아 남자애는 상대적으로 술도 많이 안 마시고 정상적(?)으로 보였다는 것이었다.


그렇게 그들과 멀찍이 거리를 두고 앉아 몇 마디 주고받고 있을 때 구세주 같은 순례자가 한 명 더 등장했다. 프랑스 할아버지 쥘레였다. 스페인어를 하던 다른 순례자들과 달리 영어밖에 못 하던 쥘레 할아버지는 그들과 어울리지 못했고 사실 어울리고 싶어 보이지도 않았다. 그가 내게 '저렇게 술을 퍼마시다니 저들은 미쳤어' 라며 푸념했기 때문이다.


나는 어쨌든 밤이 되면 관리인도 떠나 버리는 이 알베르게에 저 네 명 일행 말고 혼자 온 다른 순례자가 있다는 사실에 크게 안심했고, 밤늦게까지 술을 마시던 그들을 뒤로하고 쥘레 할아버지와 일찍 도미토리 방으로 갔다.


하지만 그날은 거의 잠을 자지 못했다. 방이 너무 추웠을뿐더러 늦게 들어온 4명이 취해서 큰 소리로 떠들었고, 그 뒤에는 코를 심하게 골았으며 하필 내 침대는 안전바도 없는 2층 자리였다. 그 높이가 지각되고 나자 내가 조금만 뒤척여도 그만 바닥으로 떨어질 것 같은 공포감에 몸이 자꾸만 긴장됐다. 그 전에도 2층 침대에서 잔 적이 있고 잘 때 거의 움직이지 않는 편인데도 그 공포감이 가시지 않았다.


'아까 이탈리아 애가 자리 바꿔준다고 할 때 그냥 덥석 받을 걸.'


몸은 졸린데 자꾸 긴장이 되어 잠을 못 자고 시간은 계속 새벽으로 가자 다른 순례자의 호의를 거절했던 게 너무 후회가 됐다. 그 와중에도 끊임없이 이어지던 코골이 소리에 이어폰을 끼고 음악을 크게 틀어놔야 겨우 그 소리에서 벗어날 수가 있었다. 결국 선잠을 자고 이른 아침 그 알베르게를 나섰다. 내가 일어나는 걸 보고 그 네 명 일행을 '크레이지 피플'이라고 칭하던 쥘레 할아버지도 일찌감치 길을 나섰다.


할아버지는 나보다 나이가 서른 살 정도 많고 다리도 다친 상태였지만 나보다 빨리 걸었다. 비슷하게 걷던 서로의 길이 점점 벌어지다 할아버지가 마침내 안 보이게 되자 나는 다시 축 늘어져 터벅터벅 걷기 시작했다.


'어차피 기다리는 사람도 없는데 뭐.'


높은 지대에 평평한 길이 이어지던 메세타를 걷던 날이었다. 주변에 보이는 거라고 들과 하늘뿐인데 그 공간을 매서운 바람이 촘촘히 채우고 있었다. 나는 거의 그 바람들에 얻어맞는 기분으로 걸었다. 연신 바람이 내리치는 귀가 다 얼얼했다. 평평한 지형 덕에 앞을 보면 걸어야 할 길이 끝도 없이 펼쳐져 있어 차라리 안 보느니만 못했다. 왠지 걸어도 걸어도 제자리인 바람의 사막에 갇힌 기분이 들었기 때문이다.


그렇게 맞바람을 최대한 피하려고 고개를 숙이고 걷다 보니 그 아무것도 없는 길에 용케도 앉을 만한 돌을 찾아 앉아 쉬고 있던 쥘레 할아버지를 다시 만났다. 우리는 그 돌 위에 나란히 앉아 조금 쉬고 이야기를 나누다 일어나 같이 길을 걷기 시작했다.


할아버지나 나나 걸을 때 말을 많이 하는 편이 아니었고 딱히 말할 기운이 있지도 않아서 같이 걸었어도 서로 별말 없이 그저 걷기만 했다. 그렇게 한참 바람의 사막을 하염없이 걷다 보니 휘몰아치는 바람 소리 사이에서 또 다른 소리가 들렸다. 할아버지의 발걸음 소리였다. 나는 문득 그 발걸음 소리에 귀를 기울였다. 내 짐을 나눠진 것도 나 대신 걸어줄 수도 없지만 그저 누군가 내 옆에서 걷고 있다는 걸 알려주는 그 발걸음 소리가 엄청난 위안이 되었다. 비록 쥘레 할아버지가 의도한 것은 아니었겠지만 말이다.


까페가 있던 첫 마을로 도착하던 때 쥘레 할아버지의 뒷모습 (c)이루나


그날은 알베르게를 떠난 지 거의 4시간 만에 문을 연 첫 카페를 만났다. 잠도 제대로 못 자고 돌이켜 보면 가장 힘들었던 날들 중 하나이지만 그날 아침 그래도 그 길을 잘 걸을 수 있었던 건 단연코 옆에서 걷던 쥘레 할아버지의 발걸음 소리 덕분이었다. 그때 느낀 마음이 얼마나 감동이었는지, 그날 메모에는 '그 발자국 소리처럼 나도 언젠가 힘든 누군가에게 뜻하지 않은 위로가 되어주고 싶다'라고 기록해두기도 했다.




부끄럽지만 나는 강하지 못한 삶의 순례자이다. 하루를 살다 보면 문득 아주 사소한 걱정에도 삶이 자신 없어질 때가 있다. 어떤 날은 패기 넘치게 지내다가도 어떤 날은 작은 일에도 그만 주저앉아 버리고 싶어 진다. 그런 두려운 날에는 잠시 시끄러운 바람 소리 사이에 가만히 귀를 기울여 본다.


그러면 이 삶이라는 순례길을 묵묵히 걷고 있는 다른 이들의 발걸음 소리가 들린다. 그들이 나를 위해 걷는 것은 아니지만, 또 내 짐을 나눠 들어줄 수는 없겠지만, 그저 나처럼 걷고 있는 그 누군가가 있다는 그 자체가 이미 큰 위안이다.  발자국 소리를 따라 가끔 흔들리는 내 발을 뗀다. 때때로 주저앉고 싶은 생을 지탱하는 건 그저 오늘을 살고 있을 뿐인 타인의 생이다. 그러니 오늘도 부디 걸어주시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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