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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루나 Jun 29. 2022

가야 할 길이 훤히 보이면 걷기 쉬울까요?

평탄한 메세타가 제일 힘들었던 이유

"사는 게 다 읽은 책 같아."


혼자 자주 되뇌었던 말이다. 사는 게 이미 다 읽어본 책을 또 읽는 것처럼 재미가 없었다. 심지어 그 책은 기승전결도 별로 없고 특별한 이야기도 없는 그저 그런 책이었다. 차라리 불쏘시개로나 쓰면 더 가치가 있을 법했다. 그게 불과 삼십 대 초반이었던 내가 정의한 나의 인생이었다.


그 무렵 나의 삶은 변수가 있을 게 별로 없었다. 매일 출근해야 하는, 웬만하면 잘리지 않고 월급이 끊길 일도 없는 직장이 있었고, 이미 결혼이라는 결론에 도달한 사랑도 있었다. 어쩌다 아직 아이가 없다는 것조차 변수가 생기지 않는데 한몫했다. 우리는 삶의 변수를 모조리 겁내 한 나머지 '아이'라는 존재마저 극도로 두려워했다. 어쨌든 이 정도면 마음의 평화와 함께 감사히 살았어야 마땅했다.


그러나 그 끔찍한 평온은 아주 작은 균열에도 지나친 공포를 주었다. 모든 게 평온한 게 기본값이었기 때문에 아주 작은 사건 하나에도 나는 크게 흔들렸다. 가령 주말 오후 햇살을 맞으며 남편과 조용히 함께 집에 있다 보면 이 중 무언가 하나라도 없어지면 내 삶이 곤두박질칠 것 같은 두려움에 그 행복을 오히려 버거워했다. 이런 감정은 일에도 영향을 끼쳐서 모든 게 완벽하지 않으면 굉장히 불안했다. 해도 해도 부족한 것 같은 느낌, 일부러 그런 것도 아닌데 분명 어딘가는 잘못되어 있을 것 같은 예감, 그런 생각들이 머리를 스쳐 등줄기에 흐를 때면 불안해 잠이 오지 않았다. 퇴근 후 마시던 맥주의 양은 한 캔, 두 캔 늘어갔다.


그러니까 이상하게도 극도의 평온과 극도의 불안이 공존했던 시기였다. 나는 도망쳤고 그건 정말 생존을 위한 선택이었다. 그때의 나는 그 고요하고 잔잔한 바다가 무서워 차라리 뛰어들어 버리고 싶었으니까. 그래서 그 고요함에서 최대한 멀리 도망가야만 했다.


지나고 나니 휘몰아치던 그런 감정들은 다 흐릿해지고 아름답던 바다의 모습만 기억에 남았다. 그래서 가끔 내게 스스로 물어봤다. 왜 그때 도망쳤을까?




순례길 초반에 아직 끊임없이 오르막길과 내리막길을 번갈아 걷고 있었을 때, 이미 같은 길을 걸어봤던 멕시코 순례자 피델이 해준 메세타 이야기에 큰 기대감을 가졌다. 앞이 훤히 보이는 평탄한 지형이라는 것이다. 걷다가 졸릴 정도라고도 했다. 그는 첫 순례를 남동생과 둘이 함께 했는데 메세타를 걸을 때 첫날은 서로 쉴 새 없이 이야기하다가 둘째 날은 말수가 줄었고 셋째 날부터는 거의 아무 말도 안 했다고 했다. 그러다 마침내 메세타를 벗어날 때 즈음 남동생이 '형 나 드디어 평화를 얻었어!'라고 말했다는 것이다. 아니, 평탄해서 걷기도 쉬울 텐데 걷고 나면 평화까지 주는 곳이라니! 나는 어서 빨리 메세타를 만나기를 소망했다.


그러나 지금 내게 어디가 가장 힘들었냐고 묻는다면 단연코 메세타이다. 매일 아침 길 위에 서면 그날 내가 걸어야 할 길이 지평선 끝까지 훤히 보였다. 그럼 아무리 걸어도 결코 가야 할 길이 줄어들지 않는 것 같은 마법이 발생한다. 그렇게 꾸역꾸역 걷다 보면 다음 마을 표지판이 나오고 또 눈앞에 마을이 보이기도 하는데 절대 그 마을에 도달할 수 없을 것만 같다. 마을을 계속 바라보면서도 2시간을 더 걸어가는 일이 허다했다. 나는 그 평탄한 길에 지쳐 털썩 주저앉고 나서야 앞선 내 질문에 답을 찾았다.


카스트로헤리스(Castrojeriz)로 가는 길, 마을이 금방 도달할 듯 눈앞에 보이지만 두 시간은 더 걸어야 도착한다 ⓒ이루나


내 삶은 다 읽은 책 같았다. 걸어가야 할 길이 훤히 보이는 삶이었다. 그래서 난 그 길을 걷는 걸 포기한 것이다. 평온하지만 대단히 멋스러울 것도 없는 카스티야 지역의 메세타 같았다. 꾸역꾸역 걸어봤자 엄청 예쁜 마을도 없었고 기가 막히게 맛있는 요리를 파는 식당도 없었다. 하지만 적어도 높낮이가 있는 길을 걸을 때는 이런 즐거움과 기대가 있었다.


'이 언덕만 올라가면 내리막길이 시작되겠지.'

'그럼 그 길 끝에 마을이 있을지 몰라.'

'그 마을에는 어쩌면 내가 좋아하는 초코 빵을 팔지도 모르고.'


매일 아침 첫 오르막길을 걸으며 나는 이런 기대를 품었었다. 메세타는 이런 기대마저 허락하지 않는 곳이었다. 몇 년 전 내 삶은 메세타를 걷는 일과 같았고 나는 그 길에서 도망쳤다. 내가 이번 순례에서도 그 지겨운 길을 걷다 못해 끝끝내 프로미스타에서 부랴부랴 기차를 두 번이나 갈아타며 마드리드로 돌아가 버렸던 것처럼. 처음 메세타에 대해 이야기해 준 피델이 이야기 끝에 왜 '난 그 구간이 제일 힘들었어.'라고 말했는지를 비로소 이해하면서 말이다.




그런 내가 얼마 전, 놀랍게도 다시 직장인이 되었다. 도망갔던 길, 또 순례길을 걸으며 내가 왜 그토록 간절히 벗어나고 싶어 했는지를 깨달았으면서도 다시 메세타로 돌아왔다. 그래서 지금 나의 하루하루가 다 보이는 길을 걷는 것처럼 숨이 막히냐 묻는다면 '아니오'라고 답할 것이다. 몇 년 전 나는 걸어가야 할 길의 끝만 보고 걸었다. 늘 눈은 지평선을 향했고 그래서 걷는 즐거움도 보람도 없었다. 그냥 걸어야 하는 길이라 생각해서 오직 걷는 일만 했다. 지금은 옆을 보며 걷는다. 매일 같은 하늘이지만 변하는 구름도 보고 지나가는 순례자와 잠시 걸음을 맞추며 이야기도 하고 힘들면 그냥 앉아서 쉬면서 걷는다.


요즘 퇴근길에는 종종 좋아하는 바에 들러 매번 살짝 구운 푸아그라 타파스에 리베라산 레드와인 마신다. 맨날 같은 조합을 먹으면서도 먹을 때마다 맛있다고 박수를 짝짝 치고 어깨를 들썩인다. 올초부터 내던 후원금은 금액을 조금 더 올렸다. 또 사랑하는 사람들에게 더 자주 맛있는 걸 사줄 수 있고 이유 없는 선물도 한다. 다 정말 별거 아닌 것들인데 예전에는 걷는 일에만 열중하느라 즐기지 못한 여유들이다.


퇴근 후 팬에 살짝 구운 푸아그라 한입 먹고 와인 한잔 마시면 물개 박수 오백 번 가능 ⓒ이루나


이제 걸어가야 할 길이 훤히 보여도 내 삶이 다 읽은 책 같다는 생각은 하지 않는다. 그때는 미처 몰랐던, 지루해 보이기만 했던 그 책에는 아직 빈 페이지가 많았다는 사실과 그 페이지를 채울 펜도 내게 있었다는 사실을 여러 길을 돌고 돌아서야 알아챘기 때문이다. 오랜만에 펜을 잡아 어색해진 글씨로 그 책을 쓴다. 대단히 극적이지 않아도 어쩌면 조금은 의미 있는 글을 쓸 수 있을 것이라는 희망을 눌러 담아 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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