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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루나 Jul 03. 2022

삶이 이렇게 행복해도 되는 거였다니

나누고 받는 행복을 깨닫다

순례길을 걷기 전 나는 삶에 대해 이런 생각을 자주 했다. 삶의 베이스는 고통이고 사실 살아야 할 대단한 이유는 없는데 순간순간 우연히 마주하는 기쁨과 행복으로 그나마 포기하지 않고 어쩌다 살게 된다는 것이다. 우리는 모두 삶을 걷고 있는 순례자이니 내가 산티아고 순례길에서 걸어야 할 길의 베이스도 외로움과 고통일 것이라 짐작했었다.




그런 예상은 첫날부터 깨졌다. 여러 나라에서 온 좋은 친구들을 만나 외로움은커녕 소란스러움을 걱정하며 걸어야 할 정도였다. 둘째 날부터는 비가 왔는데 사실 나는 비가 오면 안 걸을 생각이었기 때문에 우비를 따로 챙겨가지 않았었다. 그러나 내가 간과한 게 있었으니 바로 비가 단 하루만 내리지 않을 수도 있다는 것이다. 첫째 날 잠들기 전 다음 날 날씨 예보를 보니 최소 일주일 이상 비 소식이 연달아 있었다. 그러니 그 마을에서 하루 쉰다고 해서 비를 피할 수 있는 것도 아니라 다음날 아침 친구들과 길을 나섰다.


막 출발했을 때는 아직 비가 오지는 않았지만 언제 쏟아져도 이상하지 않을 만큼 날이 흐렸다. 겨우 20분쯤 걸었을 때 비가 한두 방울 오기 시작했고 이윽고 꽤 많은 비가 내리기 시작했다. 약한 비라면 그냥 맞으려 했는데 도저히 맞을 수 있는 양의 비가 아니었다. 친구들을 먼저 보내고 나는 마을로 돌아가 우비를 사고 다음 날 출발해야 하나 혼자 고민하고 있었는데 독일 친구가 자기 우비를 입으라고 줬다. 너는 어떻게 할 거냐 묻자 자기 옷은 전부 다 방수니까 괜찮고 배낭도 방수 커버로 씌우면 된다고 했다. 너무 미안했지만 그 우비를 입지 않으면 도저히 걸을 수 없는 수준의 비였고 그 친구가 자꾸 자기는 괜찮다고 했기 때문에 결국 그 우비를 받아 입었다.


뿌엔떼 라 레이나를 떠나던 둘째 날 아침, 이 사진을 찍은 직후 비가 내리기 시작했다.  ⓒ이루나


그 우비를 입고 걷는데 참 마음이 벅찼다. 길을 떠나기 전에는 이 길의 모든 게 걱정되고 두려웠는데 이렇게 결국은 다 걷게 되는구나, 준비가 안된 것들조차 길에서 다 얻게 되는구나 싶었다. 이날 아침부터는 더 이상 아직 걸어보지 못한 길이 많이 무섭지 않아 졌다. 그때가 되면 또 어떻게든 얻게 되겠지 싶었다. 또 한편으로는 나도 이 길에서 도움이 필요한 사람들에게 조건 없는 도움을 건네리라 다짐하기도 했다.


내가 가장 도움을 줄 수 있는 일은 아무래도 스페인어를 못하는 순례자들을 대신해 말해주는 것이었다. 얼굴도 못 본 한국인 순례자가 병원을 가야 할 일이 생겼다는 걸 듣고 먼저 연락해 전화로 의사 소견을 통역해줬다. 알베르게에서 만났던 또 다른 한국인 순례자도 아프다고 도와달라고 하여 알베르게 관리인에게 증상을 설명하며 병원 위치를 같이 알아봐 주었다. 입맛 까다로운 독일 친구들이 식당에서 베지터리언 메뉴를 요청하거나 참치를 빼 달라, 계란을 빼 달라, 양파를 추가해달라 등등 메뉴판에 없는 음식을 커스터마이징 할 때마다 나서서 다 설명해주곤 했다. 알베르게에 전화로 예약하는 일이나 버스를 타던 날 버스 시간표를 알아보는 일 등등 아무튼 스페인어가 필요할 때면 다 도맡아 했다.


때때로 순례자들 사이의 대화를 통역하기도 했다. 영어만 하는 순례자들과 스페인 순례자들이 서로 말이 안 통하는 지점이 오면 나를 찾았고 그럼 그들 사이에서 또 열심히 서로의 말을 전했다. 그런 일이 전혀 귀찮거나 싫지 않았고 오히려 누군가에게 도움이 되고 있다는 사실이 기뻤다. 내가 걸으며 받았던 호의와 도움을 이런 식으로 다른 사람들을 통해 되돌려 줄 수 있다는 게 좋았다. 덕분인지 순례길에서 유독 '친절하다' '밝다'는 이야기를 자주 들었다. 생각해봐도 정말 매일매일 많이도 웃고 다녔던 것 같다. 근래에 이렇게 많이 웃어본 적이 있었나 싶게 참 많이 웃었다. 비록 걷는 건 느리고 힘들 때도 있었지만 매일 자려고 누우면 그날 행복했던 일이 먼저 기억났다.


그래서 더욱 순례길을 걷기 전 삶에 대해 가졌던 나의 생각이 자주 떠올랐다. 그러다 문득, 삶의 베이스가 내가 생각한 것처럼 고통과 외로움이 아니지 않을까 하는 낯선 기대가 스쳤다. 어쩌면 삶이란 촘촘한 고통 사이에서도 이토록 행복할 수 있는 게 아닐까. 그래서 우리 모두는 더 잘 살아보려고 각자의 기준에서 열심히 버티는 게 아닐까.


내게 나눔의 기쁨을 느끼게 해 준 첫 순례자 친구들 ⓒ이루나


순례길에서 가장 크게 느낀 나의 행복은 '서로 주고받음'에서 왔다. '내가 이만큼 줬으니 너도 이만큼 줘'라고 따지고 계산하는 그런 나눔은 아니었다. 필요한 이에게 필요한 도움을 주고 나 또한 그런 도움을 받았을 때는 겁내 하지 않고 받아들이는 용기였다. 중요한 건 '기대 없이' 해야 한다는 것이다. 내가 이만큼을 주면 상대도 그만큼을 돌려주겠지라고 기대한 순간 그 도움은 빛을 바란다. 때로는 상대에게 필요도 없는 도움을 줘 놓고 이미 돌려받을 걸 기대하기도 한다. 그런 기대는 오로지 내가 만든 것이라 상대방의 마음과 반드시 어긋나게 되어 있다. 또 타인의 도움을 용기 있게 받아들일 수 있는 건, 나도 그 도움을 누군가에게 돌려줄 수 있다는 희망에서 온다. 그러니 다른 이에게 도움을 줄 수 있는 사람은 남의 도움도 기꺼이 받아들일 수 있다.


이렇게 적어 놓고 보면 무슨 세상 성인군자라도 된 듯 하지만, 너무나도 당연히 여전히 부족하고 자주 이기적인 사람이다. 그럼에도 이기적인 생각이 유난히 더 고개를 빳빳이 드는 날이면 순례길에서 배웠던 나눔의 기쁨을 떠올려 본다. 요즘은 큰 욕심 없이 살던 이전과 달리 더욱 '풍요로움'을 자주 기도한다. 물질적 풍요로움의 와서 더 많은 이들과 나누고 싶고 마음의 풍요로움이 와서 그 나눔에서 충분한 기쁨을 얻을 수 있는 사람이 되기를 기도한다. 길이 내게 가르쳐 준대로 행복하게 살고 싶어서 그렇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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