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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루나 Sep 12. 2022

한국에서 당근마켓을 만났다.

저의 작은 힘도 당근이 되나요?

4년 전 한국에 가서 반년을 살았을 때 당근마켓을 알았다. 본가에 쌓여있는 잡다한 생활용품을 보고 심난해하다가 당근에 올리기 시작했다. 남은 샴푸 선물세트, 아무도 안 먹는 스팸 같은 것들부터 내 취향에 안 맞는 엄마의 요란한 액세서리도 살짝 갖다 팔았다. 물론 팔기만 한 건 아니다. 어느 날은 한 번도 안 신은 새 상품이라고 올라온 빨간 플랫슈즈를 사 왔는데, 오빠가 보더니 "잠깐 한국 와서 별걸 다하네" 라며 기가 차했던 건 덤이다. 그러거나 저러거나 일부러 1만 원 주고 밑창까지 덧대었다던 그 플랫슈즈는 오랫동안 내 최애 슈즈가 되기도 했다.




가장 기억에 남았던 거래는 홍삼 판매였다. 집에는 이쪽저쪽 선물 받은 홍삼 세트가 좀 있었는데 그런 건강식품은 눈에 불을 켜고 챙겨 먹는 나와 달리 가족들은 그것들을 방치해 두고 있었다. 프로폴리스, 비타민 등등 먹을 수 있는 건강식품은 내가 한국에 간 뒤로 부지런히 먹어댔지만 홍삼은 나도 도저히 먹을 틈이 나지 않았다. 예전 회사에서 선물로 샀던 홍삼차가 대충 얼마 안 했던 거 같아 5천 원이라는 가격에 집에 있던 홍삼세트를 당근에 올렸다.


올리자마자 채팅이 마구 떴다. 실시간으로 사겠다는 사람이 줄줄이 나타나 우선 판매 예약 상태로 바꿔두고 첫 번째 분께 판매한다는 약속을 하고는 나머지 분들께는 죄송하지만 예약되었다고 불발되면 연락한다는 챗을 남겼다. 상품을 올리고 불과 5분도 안 되는 사이에 벌어진 일이었다. 그 와중에 상품을 선점하지 못한 어떤 분은 그럼 왜 예약이 끝난 상품을 올리냐고 화냈고(?) 어떤 분은 혹시 집에 다른 홍삼세트가 있으면 꼭 자기에게 연락 달라고 자기가 다 사겠다고 부탁했다. 이게 왜 이렇게 인기가 있지 의아해서 인터넷에 내가 올렸던 상품을 검색해보고는 기절할 뻔했다. 내가 올렸던 건 정가가 10만 원이 훨씬 넘는 제품이었던 것이다.


순간 여러 마음이 오갔다. 10만 원이 넘는 걸 5천 원에 올리다니 그냥 못 판다고 할까, 착오가 있었다고 할까, 잠시 여러 고민 끝에 그냥 그대로 팔기로 했다. 사겠다고 한 분이 너무 감사하다며 우리 집 근처 역까지 바로 그날 오후에 퇴근하고 오겠다고 꼭 자기에게 팔아달라고 신신당부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막상 구매자를 만나러 가는 발걸음은 무거웠다. 여전히 본전이 생각나 너무 아까웠다. 홍삼 박스를 챙기며 엄마에게 이실직고하니 그걸 그 가격에 올렸냐며 또 한소리 챙겨 들었다.


"어차피 우리 집 사람들 아무도 안 먹는데 뭐."

난 괜히 큰소리치며 집을 나섰다. 역에는 구매자가 먼저 와 있었다. 나보다 나이가 대여섯 살쯤 더 있어 보이는 여성분이었다. 내가 홍삼 박스를 건네고 5천 원을 받자 그분이 되려 정말 이것만 드려도 되냐고 물었다. 난 바로 "그럼 조금 더 주실래요?!"라고 반갑게 되묻고 싶은 마음을 억누르며 "네, 저희는 잘 안 먹어서요." 라며 씁쓸히 웃었다. 그녀는 굳이 "이거 저희 아버지 선물드리려고요, 정말 감사합니다." 라며 멋쩍은 인사를 덧붙이곤 떠났다.


아, 아버지 선물이었구나.

갑자기 아까웠던 마음이 누그러들었다. 홍삼 대신 5천 원 한 장 들고 돌아온 내게 엄마가 그래 그건 잘 팔고 왔냐 묻길래 "응. 아버지 선물이었대."라고 말하자 엄마도 더 말씀이 없었다.




지난 직장을 그만둘 때 결심했던 게 있었다. 앞으로 다시는, 내가 할 수 있는 일 말고, 하고 싶은 일을 하며 살겠다는 생각이었다. 그러나 결국 다시 할 수 있는 일을 찾았을 때 -심지어 할 수 있다고 믿었던 일조차 딱히 잘 해내지 못한다는 느낌이 들었을 때- 나는 무척 힘들어했다.


지금 난 또다시 할 수 있는 일을 하고 있다. 이게 하고 싶은 일이었냐고 묻는다면 당연히 아니다. 그런데 의외로 꽤 즐겁게 일하고 있다. 내가 필요한 자리를 채우고 있다는 느낌이 마치 그때 내가 얼떨결에 팔아버린 홍삼세트 같다. 내가 아주 원한 모습은 아니었지만 누군가에게는 꼭 필요할 수도 있는 어떤 것. 난 다 먹지도 못할 홍삼세트를 쟁여두고 있기보다는 나누고 싶다. 돈보다 더 의미 있었던 그 순간의 말들처럼, 내가 나누는 작은 것들에 "이게 꼭 필요했다"는 말을 듣고 싶다. 그때 그 기억은 정말이지 너무나 따뜻했기 때문이다. 언젠가 이 보다 더 필요한 삶을 나눌 기회도 만날 수 있기희망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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