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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루나 Jul 23. 2023

삶이 소중해지는 순간

주 전부터 틈날 때마다 명품 브랜드 사이트에 들어갔다. 큰 가방을 별로 좋아하지 않아 많이 없으니까 출장 가거나 일할 때 들 넉넉한 숄더백을 하나 살까, 주말이나 휴가지에서 맬 작은 신상 백을 하나 더 살까, 아니면 자주 사용하진 않지만 있으면 왠지 멋있을 것 같은 시계를 하나 살까 하루에도 여러 번 마음이 바뀐다. 제대로 일을 처리 못한 거래처에 따지고, 상사와 둘이 죽일 듯이 그 거래처 욕을 하기도 하고, 업무 실수를 한 직원을 불러다가는 조목조목 잘못된 부분을 지적하기도 한다. 머릿속에는 이러나 내가 맞고, 이러니 네가 틀렸다는 확신이 가득 찼다. 이렇게까지 이성적이고 합리적인 내가 순간 자랑스럽기까지 하다.


그 와중에 지중해 해안가로 휴가도 다녀왔고, 휴가 중에 어떤 날들은 즐겁게 지내다 어떤 날은 또 화를 내고 싸우기도 했다. 싸우고 나니 기분이 다운되고 다 지겨워져서 도대체 뭘 위해서 사는지 케케묵은 질문을 마음속에 떠올렸다. 이번에는 좀 크게 그랬다. 그냥 내일 당장 내가 죽는다 하나도 아쉬울 것 같지 않은 심정이었다. 이런 감정을 크게 느낀 게 한 7년 전에도 있었는데, 그때보다 7년을 더 산 지금 이 7년의 삶에서 즐거운 순간도 많았지만 사실 안 살았어도 괜찮았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더 살아봐도 별거 없었는데, 삶은 계속 살아갈 이유가 정말 있는 것일까?




휴가에서 돌아오고 얼마 지나지 않아 회사의 회계과장이 갑작스레 큰 수술을 하게 되었다. 고작 3개월 남짓 같이 일했지만 3년을 같이 일한 것처럼 너무 잘 맞았던 사람이다. 맨 정신에, 그러니까 평일 오전 한 11시쯤에 메신저로 업무 이야기를 하다 '너랑 일하는 게 너무 좋아'라고 뜬금없는 고백을 했을 정도다. 원래 가족력이 있어 이십 대 때부터 정기적으로 검진을 해오고 있었다는 그녀가 이번에 검진 간다고 이야기했을 때도 우리는 서로 별로 심각하지 않았다. 그녀가 검진을 받는 부위가 나도 몇 년 전 문제가 있었던 곳인데 최근 몇 년 간 코로나 핑계로 병원을 안 갔으니 이야기 나온 김에 병원에 가봐야겠다며 보험 어플로 검진 예약을 했다.


그 후 약 2주 만에 그녀는 검진 결과 큰 수술이 필요하다는 진단을 받고 병가 휴직에 들어갔다. 그녀가 휴직한 지 일주일이 지났을 때 올초부터 계속 몸이 아프셨던 시아버지의 종양 전이 소식이 들었고, 같은 날 오후 몇 년 만에 검진받은 나의 초음파 사진이 도착했다.  


사립 의료 보험을 이용하기 때문에 메일로 의사 소견서에 앞서 먼저 초음파 사진만 도착했는데, 의료인이 아닌 내가 보기에도 수상한 표시가 2개 되어 있었다. 1번, 2번 번호까지 매겨져 혹의 크기, 위치 등이 상세히 적힌 사진이었다. 회사에서 일을 하다가 초음파 사진 메일을 받았으므로 초음파 사진을 한쪽 모니터에 띄어 둔 채 다른 쪽 모니터에는 쓰던 보고서를 마저 다. 혹시 심각한 것이더라도 지금 당장 달라질 게 없으니 보고서는 마저 쓰고 자세히 찾아볼 요량이었다. 다만 가까운 지인에게 '저번에 검사받은 초음파가 도착했는데 뭔가 혹이 있는지 2개가 표시되어 있네' 하고 메시지를 보내두었다. 보고서를 마저 다 쓰고 난 뒤 너무 걱정 말고 의사 소견서 기다리라는 지인의 말을 보는 순간 갑자기 눈물이 핑 돌았다.


혹시 나쁜 거면 나도 휴직하고 수술받아야 하나 하는 생각이 들자 가장 먼저 떠오른 생각은 '난 그냥 지금 이대로의 삶이 좋은데' 하는 생각이었다. 명품을 더 사지 않아도, 거래처가 제대로 일을 안 해도, 직원이 가끔 이해가 안 가는 실수를 해도, 하루는 즐거워도 다음 날은 또 지겨운, 계속 살아봐도 별거 없었던 이 삶이 나는 너무 좋다는 생각이 들었다.


스스로 삶에 큰 미련이 없는 사람이라고 생각했고, 그래서 혹시나 내 신변에 큰 문제가 생기면 담담하게 받아들이리라 생각했다. 초음파 사진을 처음 봤을 때도 그랬다. 혹시 저 표시된 2곳이 아주 나쁜 것이어도 나는 받아들일 거라고 말이다. 그런데 내 신변에 정말 문제가 있을 수 있다는 생각이 들자, 나는 이 삶이 너무 살고 싶어졌다. 사랑하는 사람들을 더 오래 보고 싶고 이 평범한 회사생활도 계속하고 싶고 별거 아닌 하루를 계속 살고 싶어졌다. 삶은 가장 어두운 순간 가장 소중한 무엇이 되었다.




이틀 뒤 드디어 의사 소견서를 받았다. 악성일 가능성은 높지 않지만 6개월 내 정밀 초음파를 받는 걸 권장한다는 소견이었다. 사실 가족과 주변 사람들 덕분에 미리 어느 정도 정보를 알아 둔 터라 예상했던 결과였다. 어떤 오후의 작은 해프닝 같은 드라마였다. 의사 소견서가 도착한 금요일 오후 시아버지를 뵈러 작은 도시로 왔다. 시아버지는 갈수록 마르고 수척해지시는 중이다. 집안에 온통 시아버지의 젊은 시절 사진들과 어린 남편의 사진들이 있어 도착한 날 오후에는 눈물이 멈추지 않았다. 왜 삶은 이렇게 결국 스러져 갈까. 집안의 가구, 물건, 모든 것 하나하나 시아버지의 삶이 아닌 게 없었다. 오후에는 시아버지 앞에서 울지 않으려고 괜히 이 방 저 방을 돌아다니며 피하다가 저녁에는 시아버지가 즐거워할 만한 이야기를 모두 모여 도란도란했다.


우리 앞의 삶이 영원하지 않다는 걸 머리로는 알면서도 넘치는 하루를 살 때면 그 사실을 매번 잊는다.  그러나 문득 주변을 돌아보니, 또 나를 돌이켜보니 단 하루도 넘치는 삶은 없었다. 이 유한한 삶, 소중한 시간 속에서 무엇을 지키고 또 어느 곳을 향하며 살아야 하는지 이 여름은 내게 묻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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