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병은 기어코 나라를 이동하기 시작했다. 한국과 이란에서도 확진자가 증가하자 TV에서는 이 뉴스를 다루는 데 좀 더 많은 시간을 소요하기 시작했다. 그와 동시에 나는 이웃들로부터 동양인에 대한 적대감을 감지했다. 스페인에 산지 만 10년이 훨씬 넘었지만 그간은 아주 드물게 느끼던 것이었다. 그나마도 적대감이라기보다는 무지에서 파생된 가벼운 조크에 가까웠던 것들이었다.
백화점에 들어설 때 맞은편에서 나오던 금발의 중년 여성은 나를 보자 황급히 팔꿈치를 올려 코와 입을 막으며 지나갔다. 그런 경험은 처음이었기에 한참이 지나서야 그것이 의미하는 바를 이해했다. 그러자 아주 잠깐 스쳐 지나갔던 그 여성의 불신과 적대감으로 가득 찬 눈빛이 사진처럼 뇌리에 박혔다. 한 번은 한 무리의 학생들이 나를 향해 아주 선명히 '코로나 바이러스!'라고 외쳤다. 그들 역시 코를 막는 시늉을 덧붙였다.
그즈음에는 무지, 적대, 무례 같은 불쾌한 단어들이 세트처럼 붙어서 목격되었다. 카니발을 앞둔 주말, 마드리드 중심가에서 중국인 분장을 하고 피 묻은 마스크를 쓴 채 돌아다니는 무리를 만났다. 이런 분장이 작년 카니발의 핫한 트렌드였는지 여러 무리들의 사진이 뉴스에도 나왔다. 타인의 불행과 죽음이 먼 곳에서는 유희가 된다는 사실이 절망스러웠다.
감정을 숨기지 못하는 어린아이들은 때론 더욱 노골적이었다. 동양인을 볼 때면 '중국인들'이라며 코를 막기를 주저하지 않았다. 저 아이들의 가정에서는 뉴스를 볼 때, 가족들끼리 식사를 하기 위해 모여 그 화두를 꺼내놓을 때, 부모들은 과연 어떤 표현과 말들을 쏟아내었을까 상상해보았다.
그리고 결국 스페인에서도 공식 확진자가 발생했다. 확진자가 일단 한번 발생하자 전국 곳곳에서 확진자 소식이 들려왔다. 당시 이런 신문기사도 있었다. 한국 관광객들이 소매치기를 당해 스페인 경찰서에 도난신고를 위해 면담을 하고 머물렀는데 그 이후 그 경찰서에서 코로나 증세를 보인 경찰들이 여러 명 나왔다는 기사였다. (이후 이 관광객들은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자가 아님이 밝혀져 정정보도가 나갔다. 일부 사람들에게는 큰 의미 없는 사실이었겠지만.)
공식적인 감염자 수는 아직 적었지만 전국에서 확진자가 발생한다는 건 이미 바이러스가 상당히 퍼졌다는 걸 의미했기에 외출을 할 때면 마스크가 몹시 쓰고 싶었다. 비록 마스크를 사진 못했지만 집에는 예전에 한국에서 사 왔던 천 마스크가 3개 있었다. 그거라도 쓰고 나가려 하자 가족이 오히려 말렸다. 동양인인 내가 마스크를 쓰고 다니면 사람들이 안 좋게 보고 나쁜 일을 당할 수도 있다는 것이었다.
결국 나는 스페인 사람들보다도 먼저 앞서서, 어떠한 제한 조치도 생기기 전에, 불필요한 외출을 삼가기 시작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