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해 초를 떠올리면 이제야 크게 와 닿는 기억의 파편들이 있다. 마치 추리소설의 결론을 알고 다시 앞장을 들춰보면 놓쳤던 의미를 이해하게 되는 것처럼 말이다. 당시에는 평범했던 일상의 조각들은 나도 모르는 새 거대한 퍼즐의 일부분이 되어 가고 있었다.
언제나 가장 먼저 떠오르는 기억은 한 카페에서 맥주를 마시며 무심히 TV 뉴스를 보던 일이다. 호화스러움과는 전혀 거리가 멀었던 카페의 형광등 불빛 아래였고, 다소 늦은 저녁이라 손님이라고는 나와 일행, 그리고 한 명이 더 있었다. 카페는 조용했기에 벽의 높은 곳에 달린 작은 TV 소리가 웅웅 거리며 대충은 들렸다. 모든 뉴스가 끝난 뒤 말미에 이르러서야 변방의 소식을 전하듯 계속해서 늘어가는 중국 내 감염자 수를 무심히 전했다.
저 멀리 중국에서나 벌어지는 일. 작년 1월까지만 해도 스페인에서 코로나는 그런 존재였다. 나는 한국 뉴스와 인터넷도 자주 보았기에 조금 더 많은 내용을 알고 있었다. 그렇다고달라질 건 아무것도 없었지만.
그중에는 아파트에 갇힌 우한시의 주민들이 밤이면 스트레스로 베란다에 나가서 소리를 지른다는 영상이 있었다. 절규에 가까운 포효를 보며 약간은 소름이 돋았고 우한시로 통하는 길목을 통제한 군경찰들의 모습을 보며 참 극단적이다 싶기도 했다.
그렇게 대다수는 코 앞까지 닥쳐온 위기를 전혀 의식하지 못한 채 무심했다. 그러나 돌이켜 생각해보니 그때의 공기는 확실히 단순한 신년의 들뜸과는 달랐다. 묘하게 격양되어 있는 공기와 불안한 평화가 공존하는 가운데 나는 '혹시 모르니' 마스크를 사고자 했다.
그게 생각만큼 쉬운 일이 아님을 알게 될 때까지 오랜 시간이 걸리진 않았다. 여러 군데의 약국을 갔지만 번번이 구매를 실패했다. 그들에 따르면 스페인 사람들이 사서 품절된 게 아니라 중국인들과 중국 여행객들이 사재기를 해서 없다고 했다. 공장에서부터 품절되어 입고 계획도 없다는 말과 함께 말이다.
그래도 혹시나 하며 약국이 보일 때마다 들어가서 물어보다 마침내 한 곳에서 '지금은 마드리드 어느 약국을 가도 마스크를 구할 수 없다'는 확언을 듣고는 구매를 깨끗이 단념했다. 지금 생각해보면 당시 마스크를 구할 수 조차 없었다는 것은 이미 상황이 상당히 안 좋았다는 걸 의미하지만 그때는 그렇게 생각하지 못했다.
유난히 맑은 날이 많았던 초봄의 입구였다. 이른 햇살을 즐기러 어딜 가나 사람들이 넘쳐났다. 스페인은 오랜 경제 침체에서 벗어나고 있었기에 그 어느 때보다 활력이 넘쳤다. 매년 연속으로 해외 관광객 수 최고치를 경신하고 있다는 뉴스를 증명하듯 외국인들도 많았다. 나는 많은 사람들과 거리낌 없이 이야기하고 크게 웃으며 반가운 볼 뽀뽀로 인사를 하곤 했다. 마스크를 살 수 없다는 것쯤은 전혀 문제가 되지 않았던, 완벽에 가깝게 행복한 나날들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