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 속 에피소드 1. 기원전후, 옛사람들은 이 버섯을 먹었을까?
우리는 과장된 멀티미디어에서 굉장히 화려한 트러플을 기억하고 있다. 모 유명 할리우드 연예인이 화이트 트러플 경매에서 2억 유로에 가까운 돈을 내고 샀다, 모 홍콩 주재 한인 동포가 친구들과 먹으려고 경매에서 사들였다, 등등. 마치 별나라 사람들이 먹는 우주 음식으로 취급할 정도로 공중부양 파급적 대우를 하고 있다. 뭐, 요즘에는 우주 음식도 원하기만 하면 온라인 주문으로 살 수 있는 환경이지만 말이다.
실상, 트러플이 나는 농가 사람들은 이 녀석을 그다지 즐기지 않는다. 시골 사람들은 뭐 이런 희한한 향과 맛이 있지? 라며 한 번 맛보고는 만다. 단순한 삶의 시골밥상은 트러플이 없어도 생활 에너지를 얻는 데 부족함이 없다. 그래서 시골사람들에게는 '향에 중독된 나 같은 사람들(특히 외국인)'에게 트러플을 팔고 돈을 버는 것이 더 큰 목적이다. 심지어 어떤 시골 할아버지들은 트러플이 얼마나 싫었으면, '먹으면 병에 걸려 죽는다'는 출처 없는 소문을 퍼트리기까지 할까?
누군가가 규정해놓은 '고급'이라는 현상은 무엇일까? '서민들은 모르는 맛이지만, 우리 고위층은 이 맛과 향에 중독되는 특별함을 알고 있지.' 뭐 믿거나 말거나한 이야기이지만 시골 살면서, 이곳 삶의 방식에 익숙해지다 보면 왜 시골 사람들이 이런 향에 멀어지게 되는지 어느 정도 짐작은 할 수 있다. 익숙하지 않은 새로운 삶의 방식을 꺼리는 그 단순한 삶이 시골에 있기 때문이다.
나는 스페인 고산에 살면서 이 트러플 향에 매료되어 지역 주민들의 의견을 요리조리 모아 혼자 분석하기도 했다. 대부분의 시골 할아버지에게는 '병 걸려 죽을 맛'이 트러플이고, 신세대 젊은이들에게는 채소가게에서 흔하게 살 수 있는 재료로 시장에 내놓기 위한 '미래를 개척하는 향신료'로 탈바꿈한다. 물론, 그렇게 하기 위해선 가격대를 낮춰야 하겠지만....... 그렇게 고군분투다. 이 점으로 보아 트러플 취향이 바뀜을 짐작할 수 있다. 드디어 시골에서도 구르메(gourmet, 프랑스어로 미식이라는 뜻) 라이프가 시작되었다.
그렇다면 먼 옛날에도 사람들은 이 트러플을 먹었을까?
궁금한 나머지 트러플 연구가의 도움으로 트러플의 역사를 어느 정도 공부할 수 있게 되었다. 알고 보니 이 트러플은 역사의 문헌에 기록된 굉장한 녀석이었다.
BC3500년 무렵, 바빌로니아 사람들은 사막에 나가 모래를 파헤쳐 사막의 버섯을 채집하여 식용했다고 한다. 사막에 먹을 것이 없으니 뿌리라도 캐서 먹자는 것은 어쩌면 당연한 것 아닌가? 모래 속의 투버(트러플을 일컫는 학명의 첫 이름. tuber; 종기, 종양, 버섯 등을 일컫는 라틴어)와 현대에 일컫는 트러플과는 직접적인 연관성이 없지만, 땅 속에서 버섯 찾는 행위는 트러플 연구가에게는 투버과의 버섯임을 짐작하게 한다.
또한, 이집트 케옵스(Keops) 왕 시대(BC2589 -BC2566)에는 트러플 향을 듬뿍 우려낸 요리로 대사관 파티 때 크게 명성을 올렸다고 한다. 그 시대 이집트에서 정말 트러플이 나왔을까? 이것도 확신할 수 없는 이야기이지만, 대사관 파티 때 땅 속에서 캐낸 버섯으로 요리를 했다니 뭐 그럴 듯한 것은 사실이다.
시대가 흘러 그리스에서는 아리스토텔레스의 제자이며, 훗날 후계자가 된 테오프라스토스(Theophrastus, BC 371 - BC287)가 서양 송로버섯(트러플)에 대한 한 가설을 내렸다고 한다. "천둥 번개가 많으면 트러플이 많이 생긴다"라고 확신했다는데 오늘날의 시골 사람들은 이 가설을 확증에 가깝게 믿고 있다. 사실 내가 사는 스페인 고산의 트러플 농사꾼들은 여름의 천둥과 번개를 무척이나 반긴다. 과연 천둥 번개가 많은 해에는 확실히 트러플 생산량도 많고 질도 좋았다.
라틴 작가이며 과학자, 자연주의자, 로마군 등등, 로마 시대의 유명인들이 다 그랬듯이 직업이 다양했던 플리니오(Plinio, 23 - 79)는 트러플은 '뿌리 없는 식물'이며 '땅의 굳은살'이라고 했다. 또 트러플은 자연적으로 생겨나 씨앗이 없어 모종 할 수 없는 식물이라고도 했다. 한마디로 자발적으로 탄생하는 버섯이라는 개념이다. 하긴 그 시대 눈에 보이지 않는 균의 존재를 명확히 규명할 수 없어 그런 논리를 냈을 게다. 현대의 트러플 농사꾼들은 어린 참나무 모종 뿌리에 균을 배양하여 트러플을 생산하거나, 말린 트러플 가루를 땅 속에 뿌려 균을 땅에서 직접 배양하여 생산해낸다.
디오스코리데스(Dioscorides, 40 - 90 )는 그리스 출신의 물리학자였으며 약사로도 인기를 끌었다. 우리는 약학 대학 학생들이 약사로 살기 위해 다짐하는 문서인 디오스코리데스 선서라는 단어에 더 익숙하지만, 이 디오스코리데스는 우리 인류 역사에 꽤 훌륭한 업적을 남겼다. 그는 의사의 신분으로 네로 황제와 그의 부대와 함께 출전하여 길 위에서 600여 종이나 되는 식물 연구도 했다. 그 연구에서 트러플에 대한 소견을 밝혔는데 다음과 같다."동그란 뿌리, 잎 없고, 줄기 없고, 어쩐지 벌겋고, 봄에 난다. 신선하게, 혹은 익혀서 먹는다" 군의관으로 길 위에서 약초에 대한 대발견, 혹은 재발견을 한 그이다.
그리고 '트러플'을 새롭게 도입하고, 재해석하여 유럽 전역을 나름대로 그 시대에 맞게 강타한 사람이 있다. 누가 이런 영향을 끼쳤을까? 클라우디오스 갈레노스(Claudius Galenus, 129 - 199)다. 의사였던 그가 어떤 말로 몇 백 년 넘나드는 세월 동안 트러플(서양 송로버섯)의 인기를 더하게 만들었을까?
이 한마디였다.
"트러플(truffle)은 최음제로서 강한 정열을 불러일으킨다"
최음제란 무엇인가? Aphrodisiac medicine 아닌가? 우리말로 '최음제' 하니 그냥 성적 흥분을 유발시키는 약 같다. 그런데 어원을 따져보면 아프로디테적 약(?)이 되는데 아프로디테는 미와 아름다움의 상징이고 사랑을 주관하는 그리스 신화의 여신이 아닌가? 아프로디테 여신이 내리는 식물과 열매는 얼마나 아름다운 사랑을 불러일으킬까, 로맨스와 사랑, 달콤한 남녀의 사랑, 밀회, 정열 등등 뭐 이런 것들이 이 트러플을 더욱 빛나게 하지 않았을까? 그리하여 트러플이 유럽으로 점점 전진, 확대, 슬슬 아프로디테가 예고하는 사랑이라는 굴레와 함께 삶 속으로 파고들지 않았을까?
버섯 주제에 이런 역사를 가지고 있다니 처음 트러플 연구가에게 이 이야기를 들었을 때 나는 무척이나 놀랐다. 이런 역사의 기록 때문에 우리는 어느 정도 이 녀석의 본질을 추측(상상)할 수 있으니 말이다. 그 후 유럽에서는 트러플이 대중화되었을까? 재미있게도 트러플과 관련된 역사 속의 에피소드는 더 있었다. 다음 장에는 유럽 역사 속에 등장하는 요즘 말하는 트러플이 어디서 어떻게 누구에 의해 어떤 에피소드로 발전되었는지 이야기하고자 한다.
* 참고
위의 글은 트러플이 나는 스페인 현지에서 보고 들은 정보를 바탕으로 쓴 글입니다. 참고 서적은 Truficultura.Fundamentos y técnicas, Editorial Mundi-Prensa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