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시기 뭐시기 by 이어령
글은 누구나 쓸 수 있지만, 재능이 있는가는 또 다른 문제라는 생각이 든다.
누구나 마음만 먹으면 글을 쓸 수 있고 꾸준히 노력하면 작가라는 이름을 얻을 수도 있는 것 같다. 그러나 재능 있는 작가는 단지 매끄러운 문장력을 구사하는 것을 넘어서서, 독자들의 감각 어딘가를 톡 건드려, 스스로도 몰랐던 다른 무언가, 생각의 통로를 일깨우는 것과 같은 경험을 선사한다. 물론 이 또한 독자마다 선호하는 글의 스타일이나 감성이 다르기 때문에 굉장히 주관적인 영역이겠지만 말이다.
내게는 이어령 선생님이 그런 분이었다. 오래전부터 그분의 글은 우리가 매일 사용하면서도 제대로 들여다본 적 없는 일상적인 말, 글, 단어들을 새롭게 만나게 해 주었다.
생각해 보면, 보통 우리는 매일 쓰는 말, 습관처럼 반복하는 표현, 관용적으로 굳어진 문장들을 그저 의사를 전달하기 위한 도구처럼 여기며 크게 고민하지 않고, 큰 의미부여 없이 사용하곤 한다. 그러나 이어령 선생님의 글을 읽고 있으면, 그 너무도 익숙하게 사용하고 있었던 일상 속의 언어들이 선생님의 독특하고 섬세한 감성을 만나 생명을 얻어 움직이는 것 같은 느낌을 받는다. 말하듯 차분히 부드럽게 설명하는 구절에는 한 단어에 숨겨져 있는 수많은 역사와 문화, 정서의 결이 껍질 벗겨지듯 드러난다. 마치 너무도 친숙한 이웃집 아저씨가 사실은 숨겨진 고수였다는 것을 발견하게 된 어린아이가 된 기분이다.
작가란 어쩌면 익숙한 것에서 새로움을 발견하는 사람인지도 모른다. 모두가 이미 알고 있다고 생각하는 8~90퍼센트의 공감대 위에, 단 10~20퍼센트의 낯선 시선을 얹는 사람. 그 작은 차이가 문장을 살아 움직이게 한다. 선생님의 글은 우리가 다 아는 단어를 사용하면서도, 그 단어의 명암을 보여주고, 새로운 시각을 채워준다.
‘거시기’라는 단어 안에는, 정확한 단어로 표현하기 민망한 점잖았던 옛날 사람들의 지혜와, 생각이 잘 안나는 어르신을 배려하는 마음, 말하지 않아도 눈빛만 보고 통하던 화자간의 친숙한 감정과 같은 우리나라의 문화와 정서가 모두 담겨있다.
언어 속에서 생명을 발견하고, 그 생명을 독자에게 건네는 이어령 선생님의 글이 더 많이 이 세상 사람들에게 닿았으면 좋겠다. 그리도 나의 문장들도 그러한 생명력을 갖고 누군가에게 닿았으면 하는 바람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