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래의 내가 이끌어 내는 현재,

죽음의 수용소에서 by 빅터 프랭클

by 반선

유대인들은 기록에 탁월한 재능을 가지고 있는 민족이라고들 한다. 그들은 모든 것을 기록하고, 경험과 기억을 문장으로 묶어 후대에 전한다. 기록은 단순한 정보의 축적에 머무르지 않고, 집단의 기억으로 전달된다. 기록이 소실되면 기억도 흐릿해지고, 역사도 묻혀 버리게 마련이다. 그래서 전쟁이 많던 시절, 패배한 나라의 책을 불태우는 일은 단지 종이를 태우는 행위가 아니라, 그 나라의 역사와 민족의 정체성을 무너뜨리는 것과 같았다.


2차 대전이 끝나고 난 후, 수많은 기록들이 세상에 나왔다. 그중에서도 수용소에서 살아남은 많은 이들이 남긴 기록들은 수용소라는 이름아래 묻힐 수 있었던 참혹한 장소를 그들의 기억 속에서 복원하고, 이름 없이 사라질 뻔한 사람들을 다시 불러냈다. 세계가 그 일을 외면하지 못하도록 만든 것은 총이 아니라 기록이 아니었을까.


그중에서도 빅터 프랭클의 ‘죽음의 수용소에서’는 우리에게 특별한 메시지를 전달한다. 신경정신과 의사였던 그는 인간이 가장 비인간적인 환경에 던져졌을 때 무엇이 남는지를 몸으로 겪어낸 이야기를 들려준다. 수용소에서 그는 희망을 잃은 사람들이 실제로 빠르게 쇠약해지고, 끝내 숨을 거두는 모습을 목격했으며, 반대로 희망을 잃지 않은 사람들이 하루라도 더 버텨내는 모습을 통해 인간의 정신이 육체의 생존과 연결되어 있음을 깨달았다.


저자는 인간에게서 모든 것을 빼앗을 수는 있어도, 한 가지는 빼앗을 수 없다. 주어진 상황에 대해 어떤 태도를 취할 것인가를 선택하는 자유라고 설파한다. 굶주림과 폭력, 모멸 속에서도 그는 ‘왜 살아야 하는가’를 붙잡은 사람이 ‘어떻게’의 고통을 견딜 수 있음을 보았다. 사랑하는 사람을 다시 만나겠다는 희망, 완성하지 못한 연구를 끝내겠다는 사명, 혹은 고통 자체를 증언하겠다는 책임감. 미래와 연결된 사람은 쉽게 무너지지 않았다.


이 점에서 그의 통찰은 오늘날의 자기 계발 담론과도 묘하게 닿아 있다. 우리는 흔히 미래를 회피하거나, 막연히 두려워하며 현재를 소진한다. 그러나 미래의 자신과 연결되어 있을 때, 인간은 더 큰 힘을 발휘한다. 다가올 어떤 의미 있는 순간을 향해 자신을 투사할 수 있을 때, 오늘의 고통은 견딜 수 있는 것이 된다. 프랭클이 말한 ‘의미’는 거창한 성공이 아니라, 나를 내일로 이어주는 끈이 되어 주는 것이다.


그의 저서가 오늘날의 우리에게 지속적인 울림을 주는 이유는 이 책이 먼 옛날의 고통의 기록이 아니라 동시에 인간 존엄에 대한 보고서이기 때문일 것이다. 그는 수용소의 잔혹함을 적나라하게 묘사하면서도, 그 안에서 인간이 끝내 인간으로 남을 수 있는 이유를 탐색한다. ‘괜찮을 거야’라는 낙관주의가 아니라 책임을 부여하는 그의 글은 우리에게 ‘우리의 삶에 책임 있게 행동하고 있는지’를 묻는다.


그는 절망을 미화하지 않고, 그 속에서도 인간이 선택할 수 있는 마지막 자유를 보여준다. 그리고 그 자유가 지금 내가 선택할 수 있는 것임을 일깨워 준다.

작가의 이전글재능 있는 작가의 10-20%가 독자에게 전달하는 울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