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르마조프가의 형제들 by 포도르 도스토옙스키
러시아의 겨울은 길고, 그 겨울을 나기 위해 그들의 소설은 길어야만 했다고 하던가. 카라마조프가의 형제들은 워낙 유명한 고전이기에 누구나 한 번쯤은 들어봤을 만하지만, 워낙 장편이라 손쉽게 손이 가지 않는 책이기도 하다. 거기에 끝없이 등장하는 등장인물들의 이름은 시작부터 난관을 선사하고, 얽히고설켜있는 사건의 발생은 소설이 어떻게 흘러가는지 파악하기를 포기하고 한참을 읽어 내려가야 한다.
그렇게 등장한 다양한 사람들의 면모, 그들이 가진 성격, 욕망과 사랑, 미움과 증오, 죄를 갈무리하는 자와 폭발하는 자들이 한데 모여 사건을 점점 도미노처럼 쌓아 올려간다. 글을 읽다 보면 인간이란 존재에 대한 묵상으로 이어지는 것을 피할 수가 없다.
“열 길 물속은 알아도 한 길 사람 속은 모른다”는 말처럼, 인간의 마음은 끝없는 미지다. 누군가는 조금 단순하게 자신의 마음을 드러내기도 하고, 누군가는 속내를 숨긴다. 드미트리는 충동적이고 격정적인 인물로 보이지만 그 안에는 명예와 사랑을 갈망하는 순수함이 숨어 있다. 이반은 냉철한 이성의 화신처럼 보이지만, 그의 회의는 오히려 인간의 고통을 견디지 못하는 예민함에서 비롯된다. 알료샤는 선하고 따뜻한 신앙인으로 보이지만, 그 또한 의심과 흔들림을 겪는다. 독자들은 스스로의 다양한 모습, 겉으로 보이는 모습과 내면의 모습, 그리고 내가 갈등하는 순간들을 등장인물의 모습을 통해 발견하게 된다.
이번에 읽으면서 새롭게 들어온 주제는 자유과 책임이었다. 인간은 오래도록 자유를 갈망해 왔지만, 그 자유는 항상 올바른 길이었는가를 묻는다면 이제는 조금 의문을 갖게 되는 시점이 아닌가 싶다. 누구나 스스로 선택하고 억압이나 방해받지 않는 삶을 살고자 하지만, 자유는 언제나 책임을 동반한다는 것을 모두 이해하는 것은 아닌 것 같다는 생각이 들 때가 있다. 내가 행사하는 자유가 누군가 힘없는 존재의 자유를 빼앗는 행위가 될 수 있음을 우리는 이미 겪으며 살아가고 있다. 말 못 하는 동물의 삶을, 나보다 약한 사람의 권리를, 혹은 보이지 않는 누군가의 시간을 침해하고 있으면서도 나는 그것을 자유라고 부르고 있는지도 모른다. 그러나 아이러니하게도, 내가 침해당했다고 느끼는 순간에는 분노가 앞선다. “그럴 수도 있지”라고 말하던 태도는 사라지고, 억울함과 정의감이 치솟는다. 우리는 타인의 자유에는 관대하고 싶어 하면서도, 나의 자유가 침범당하는 순간에는 단호해진다. 이 모순 속에서 인간의 이중성이 선명하게 드러나게 된다.
그래서 나를 들여다보는 시간은 중요하다. 나의 욕망과 사랑, 인정받고 싶은 마음과 배려, 희생, 그리고 선하고 싶은 마음과 실제로 그렇지 못한 나의 마음, 질투, 두려움, 미움, 그리고 증오 등을 정직하게 마주하는 일은 생각보다 달갑지 않다. 그래도 그렇게 마주한 시간들은 결국 타인을 이해하는 데로 이어진다. 내가 흔들리는 존재임을 인정할 때, 타인의 흔들림도 함부로 판단하지 않고 조금 더 품고자 노력하게 되는 것이 아닐까 생각해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