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젠가 그런 시절도 있었다고 추억할 날까지만 있어 볼게요.
어떤 일이 잘 풀리지 않을 때면 나는 가끔 어디에서부터 모든 것이 잘못되었나 되짚어 볼 때가 있다. 유학을 가고자 했던 것부터 잘못이었을까. 아니, 더 거슬러 올라서 너무 터무니없는 목표로 고 3 때 전공을 선택한 것이 잘못이었을까. 아니, 더 거슬러 올라서 나는 문과 과목의 성적이 조금 더 좋으니 잘 못하는 이과 과목도 잘하고자 이과를 선택한 고 1의 내 선택이 잘못된 것일까. 아니, 더 거슬러 올라서....... 이렇게 거슬러 오르다 보면 결국 호기심이 많고 새로운 걸 좋아하는 내 성정까지도 탓을 할 때가 있다.
내가 스웨덴에 정해진 숙소 없이 왔다는 사실은 너무 지겹도록 말을 해서 이제 온 세상 사람들이 다 알 지경이다. 나에게는 큰일이었고, 지금도 너무 큰일이다. 스웨덴에 도착해서 나에게 주어진 가장 큰 퀘스트였다. 2 년은 아니라도 장기적으로 살 곳을 구하는 것. 보증금이라는 제도가 없어서 그럴까. 스웨덴의 방값은 내 생각보다 훨씬 가혹했다. 화장실과 욕실, 주방은 함께 쓰는 아파트에 방 하나에 55만 원부터 시작해 평균 60만 원. 코로나로 인해 환율은 전혀 안정적이지 않고 평년보다 높은 것을 감안해도 결코 만만한 비용은 아니다. 거기에 호스트와 단 둘이 산다면 남자 호스트는 제외하고 생각하게 되고, 위치와 가격까지 고려하면 정말 단 하나의 방도 찾을 수가 없었다. 다행이게도 코로나로 교환학생들이 오지 않아 단기로 학생 기숙사에 1월까지 머무를 수 있게 되었다. 그렇게 일이 잘 풀리는 줄 알았다.
일단 6 개월은 벌었으니, 다 가지고 오지 못 한 짐을 한국에서 엄마가 부쳤다. 살 방을 찾아야 하는 퀘스트의 데드라인이 조금 밀린 사이에, 관세라는 퀘스트가 다시 생성되었다. 사용하던 옷을 보냈는데, 우체국 직원이 이것을 선물이라고 체크를 한 것이다. 가격 역시 210 불이 적혀 있어 1117 크로나 (한화 약 15만 원, 환율 132원 적용)가 붙었다. 스웨덴 관세청에서는 이것을 다시 환불받을 수 있다고 하였다. 하지만 결제 수수료까지 생각하면 절대 적은 돈이 아니므로 아예 관세 없이 받고 싶었다. 그래서 여기저기 연락을 하다가 ups에서는 처리를 해 줄 수 없다는 답변을 들었다. 이와 동시에 당장 관세를 지불하지 않으면 다시 짐이 스톡홀름으로 돌아간다는 전화만을 받았다. 급하게 ups와의 통화로 카드로 결제를 하고 싶으니 링크를 달라고 압박했으나, 생각보다 느린 일 처리로 아직 링크를 받지 못하였다. 대신 링크가 올 때까지 짐을 예테보리에 보관을 하고 있겠다는 구두 답변만 들었다. 이후 이게 어떻게 흘러갈지는 정말 모르겠다.
장을 볼 때 해외 카드를 사용하면 가끔 여권을 요구하기도 한다. 그 이유는 충분히 이해한다. 조금 불편하지만 전혀 불만은 없었다. 문제는 여기에서 발생했다. 무인 계산대에서 계산을 하였고, 영수증이 나오지 않았다. 기기의 오류로 보였고 직원이 와서 해결을 하는 중 3번 결제 시도 끝에 결제가 되었고, 영수증을 받았다. 하지만 카드사에 확인을 해 보니 3번 모두 결제가 된 것이다. 다시 마트를 찾아갔고, 직원은 여기에서 처리할 수 없으니 본사에 문의를 넣으라고 했다. 하지만, 모두가 예상할 수 있듯, 반전은 없었다. 본사에서는 마트에서 다시 결제 취소를 할 수 있다는 답변만 했다. 이 문제는 뒤에 말할 일 때문에 아직 해결은 못 하였다. 이런 사소한 것들이 나를 너무 괴롭혔다.
이것들을 처리하는 와 중에 학교 수업 이야기도 빼먹을 수 없다. 모든 코스가 온라인으로 진행되고, 나는 방 밖으로 나갈 일이 없었다. 영어보다 친구들과 통화하느라 한국어를 더 많이 사용했다. 슬슬 현타가 오기 시작했다. 이럴 것 같으면 나는 왜 무리해서 코로나를 뚫고 스웨덴에 왔는가. 점점 해는 짧아지고, 해결해야 할 일은 많고, 우울이 나를 잡아먹고 있었다. 그러는 동안 조금 밀렸던 수업은 눈덩이처럼 불어났고, 앞부분을 이해하지 못한 나는 수업을 따라갈 수 없었다. 놓친 부분을 다시 공부하는 동안 진도는 계속 나가고 있었다는 사실을 나는 망각하고 있었던 것이다. 게다가 나는 코딩에 매우 약한 편인데, 처음 배우는 머신러닝 개념 모든 것을 코딩으로 해결하는 과제들은 생각보다 나에게 버거웠다. 아, 물론 내가 조금 미루지 않았다면 더 나았을 수도 있다. 나는 원래 배움이 조금 느린 편이다. 아니, 이건 변명이다. 나의 나태 탓이 맞다. 겹겹이 쌓인 퀘스트 속에서 도무지 공부만 할 수는 없었다. 겨우 하나씩 해결해 가는 동안 다른 친구들은 너무 잘 지내는 것 같아 더 힘들었다. 이런 상황은 온 우주가 힘을 모아 나에게 스웨덴에서 떠나라고 하는 것 같았다. 그렇게 일주일 넘게 집 밖으로 나가지 못하고 과제에 매달렸다. 이렇게 매달려도 곧 다가오는 시험, 곧 제출해야 하는 과제들에서 낙제를 받을 것만 같았고, 지금도 그런 불안함이 없지는 않다.
기숙사 비는 어떠한가. 과제에 집중하는 동안 계속 계좌 개설을 미뤘고, 한국에서 기숙사 비를 보내는 것은 시간이 조금 걸렸다. 내가 오늘 보내도 며칠 뒤에 도착하니까. 우편이 하나가 왔다. Colligent라는 회사였다. 내용은 스웨덴어로 적혀 있었지만 확인 결과 5일 늦게 입금된 기숙사 비용에 대한 이자 청구였다. 그리고 이것은 카드 결제가 되지 않고 오직 송금만 가능했다. 미치고 환장할 노릇이었다.
시간은 그렇게 흘러서 벌써 12월에 입주 가능한 방이 나오기 시작했고, 나에게 배정된 방은 없었다. 그렇게 곧 1월이 올 것이라는 생각 역시 미치고 환장할 것 같았다. 아니 환장할 것 같다. 세상이 나에게 네가 있을 곳이 아니라고 말하는 것 같다.
그렇게 일주일을 집 밖으로 나오지 않았다. 아름다워 보였던 거리들은 그저 돌덩이로밖에 보이지 않았고, 건물이 낮아 뷰가 너무 예뻐 보였던 점은 이래서 내가 살 곳이 없다는 화로 변했다. 내가 좋아하던 예테보리의 하늘은 그저 비를 쏟아내는 변기 같았다. 그렇게 아름다운 도시는, 내가 첫눈에 반해버린 이 도시는 이제 생각만 해도 고통인 곳으로 변했다. 아직 두 달이 채 되지 않았지만 지칠 대로 지쳐버렸다. 마치 일 년은 넘게 겪은 느낌이었다. 그냥 다 접고 한국에 갈까?라는 생각도 했다. 갑자기 너무 우스웠다. 아, 그런데 아직 두 달도 안 됐어? 내가 해야 할 일들의 데드라인까지는 미친 듯이 시간이 달렸는데 다 돌아보니 두 달이 안 됐다. 그냥 헛웃음이 났다.
내가 출국하기 전에 캐나다에서 유학 생활을 오래 한 언니가 나에게 말했다. 가서 고생하겠네. 희경아, 너는 잘할 거지만 그래도 힘들면 그냥 돌아와도 돼. 이 말이 그 당시에는 그렇구나 생각했는데 지금 와서 생각해 보니 그렇게 위로가 될 수가 없었다. 다들 거기 어떠냐, 좋으냐, 부럽다.라고 말하는 중에 유독 언니만 떠올랐다. 그렇게 전화를 해서 한 시간을 울었다. 언니, 내가 제일 못 견디겠는 건 왜 나한테만 이런 일이 일어나는지 모르겠어요. 남들은 그냥 다 잘 지내는 것 같은데. 힘들면 그만 해도 된다는 말이 그렇게 위로가 될 수 없었다.
언니, 그런데 지금 내가 그만두고 가면 다음부터는 아무것도 도전을 못 할 것 같아요. 그리고 다른 사람이 나를 한심하게 보는 것보다 제가 제 자신을 실패했다고 생각할 것 같아서 그게 너무 무서워요.
원래 그래 아무도 도와줄 사람 없고 다 혼자 힘으로 해야 하잖아. 처음 가면 다 그래. 울어도 돼. 나도 예전에 아픈데 아무도 없는 게 너무 서럽더라. 와도 되는데 그게 무서우면 조금만 더 해 봐. 지금 잘하고 있어.
가라고 등 떠밀어도 아직 조금만 더 엉덩이 비벼볼 예정이다. 아, 싫어. 학교가 장학금 준다고 했으니까 일단 그거 다 쓰고 생각할 거야.
앞으로 어떻게 될지는 모르겠지만 그래도 응원해 주는 사람들한테 조금만 더 찡찡거려 볼 예정이다.
언젠가 그때, 아무것도 모를 때 정말 고생 많이 했지.라고 추억할 때까지만 버텨보려고 한다.
언니, 언니가 조금만 더 들어줘요. 사랑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