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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중현 Nov 09. 2021

요즘 초등학생 문제 클래스, 로봇 세금

로봇 세금 문제의 핵심은 인공지능

공부방은 금요일만 되면 애들에게 꽤 많은 숙제를 내준다.


옆에서 도와주고 있다 보면 조금 과하다 싶을 정도로 숙제를 많이 내는 것 같다. 토요일과 일요일이 끼어 있으니 쉬엄쉬엄 하라는 의도인 것 같은데 애들은 절대 숙제 가지고 질질 끌고 싶어 하지 않는다. 그 자리에 앉아서 끝내 버리고 유튜브를 보던 놀러 나가야 하는데 가끔 숙제가 많아서 울고 있는 모습을 목격하곤 했다. 그래서 급한 일이 아니면 평일 저녁과 일요일 아침은 옆에서 숙제하는 모습을 지켜보면서 도와주고 있는데 이제는 일요일 아침이면 함께 공부하는 날이 되어 버렸다.

 

하루는 큰 애가 문제를 풀다가 이해가 되지 않는다길래 들여다보니 약간 당황스러웠다.

'로봇 세금 더 이상 미룰 수 없다'를 주장하는 논설과 '로봇 세금 도입을 늦추어야 한다'를 주장하는 논설을 읽고 두 사람의 의도를 파악해 보라는 문제였다.


로봇에게 세금을 부과하는 문제를 이해하기 위해서는 적어도 현시점에서 인공 지능 기술이 어디까지 개발되어 있고 앞으로 어느 분야까지 확장이 가능한지를 고민해야 할 건데 큰 애는 인공지능이 적용된 로봇은 영화 터미네이터와 아이 로봇( i, robot)이라고 딱 잘라서 설명했다. 인공지능 로봇 하면 제일 먼저 떠오르는 영화가 맞긴 한데 그건 어디까지나 영화 속 실현 가능한 미래의 이야기이니 지금 현실에서의 인공지능과 로봇을 생각해 보는 게 좋을 것 같았다.


인공지능이 탑재된 로봇은 터미네이터가 있으니 제조사인 스카이넷은 국가에 세금을 내야 한다고 주장했다. 출처:구글 검색


'로봇 세금 도입 더 이상 미룰 수 없다'의 의견은 로봇이 사람을 대신해 일을 하고 있는 영역이 늘어나고 있고 이제는 로봇과 함께 살아가는 방법을 찾아야만 한다고 주장한다. 다만 세금이란 게 현행법으로 자연인과 법인에게만 부과할 수 있기 때문에 로봇은 기계라 직접 세금을 부과할 수 없어 제조사에게 부과해야 한다고 말하고 있다. 여기에 2017년에 유럽 의회는 로봇에게 '특수한 권리와 의무를 가진 전자 인간'으로 법적 지위를 부여하는 입법을 추진하도록 결의했다는 주장도 덧 붙이고 있었다. 용어도 어렵고 초등학생에게 너무 어려운 난이도의 문제가 아닌가 싶었지만 나도 몰랐던 내용이 많아 흥미로운 부분이었다.


반대로 '로봇세 도입을 늦추어야 한다'측의 의견은 아직 제대로 개발되지 않은 로봇에게 세금을 부과하게 되면 로봇 산업 발전에 걸림돌이 될 수 있다고 주장한다. 로봇 기술의 대부분이 외국 기업들이 독점하고 있는 현실에서 기술 없이 로봇만 개발하게 되면 많은 특허 사용료를 외국에 지급해야만 하니 기술 개발은 더 늦어질 뿐이라고 강조했다. 꼭 문제를 풀어야 하기에 개인적으로 로봇세 도입을 반대하고 기술 개발에 집중해야 한다는 의견에 공감했지만 첫째의 상상 속에는 이미 인공지능 로봇은 우리 일상생활과 살고 있지 않냐고 되물었다.  


매일 아침마다 날씨를 물어보는 구글 인공지능 스피커  'OK 구글'부터 원하는 티브이 프로그램을 음성으로 찾아주는 리모컨까지 기업들이 광고하는 인공지능이 탑재된 기기들은 이미 일상생활 깊숙이 들어와 있었다. 사용자들로부터 축척된 데이터를 알고리즘으로 학습해 맞춤형 데이터를 제공하는 인공지능의 기술과 함께 살고 있으니 스스로 생각하고 활동하는 로봇은 분명 있을 거라는 애들의 상상은 당연한 결과일 수도 있다. 하지만 로봇이 세금을 납부하는 시대가 오기까지는 기술의 발전과 함께 사회도 받아들일 수 있는 여건이 마련되어야 하는데 그만큼 시간이 필요할 것이다.


단순히 문제의 답만 찾으면 되는 상황이라 토론까지 할 상황은 아니었지만 큰 애는 인공 지능을 알기 쉽게 설명해 달라고 했다. 나도 TV에서 본 게 전부라 결론은 역시 미래지향적인 영화 터미네이터와 아이 로봇으로 이어졌다.


하지만 그 주 금요일 저녁 우연히 VOD 서비스로 본 영화 프리 가이(Free Guy)에서 문제를 해결할 수 있었다.

영화 프리 가이는 단순한 액션 게임 영화가 아닌 NPC가 자아를 찾아 떠나는 영화였다. 출처:구글 이미지 검색


 금요일 저녁 11시는 무슨 일이 있어도 다 같이 나 혼자 산다 프로그램을 봐야 하기 때문에 그전에 넷플릭스나 VOD로 영화를 볼 때가 있다. 예고편만 봤을 때 영화 프리 가이는 레디 플레이어 원처럼 박진감 넘치는 액션 영화인 줄 만 알았다. 하지만 이 영화는 인공지능이 탑재된 NPC들의 스스로의 자아를 찾아가는 영화였다.


영화를 보다가 NPC를 알고 있는지 물어봤다.

"NPC는 Non Player Character잖아! 게임 속에서 정해진 대로만 움직이는 캐릭터잖아!"

초등학교 5학년 때 로블록스와 브롤 스타즈를 이미 졸업하고 지금은 뱅드림을 즐겨해서 그런지 게임과 관련해서는 오히려 나보다 더 많이 알고 있었다.


NPC는 사람이 직접 조작하는 캐릭터가 아닌 주어진 역할만을 하는 게임 속 엑스트라를 말한다.

소니사가 PS4용으로 출시한 게임 저지 아이즈를 하다 보면 주인공이 도쿄 시내를 걸어갈 때 주변을 걸어 다니는 NPC를 툭 건드리거나 시비를 걸어 넘어져도 다시 일어나 아무 일이 없다는 듯이 제 갈길을 간다. 처음부터 게임 개발사가 그런 역할을 하도록 만들었기 때문에 총알 맞아도 죽지도 않고 차에 깔려도 죽지도 않고 다시 일어나 제 갈길을 간다.

PS4용 게임 저지 아이즈 중 한 장면. 주인공 캐릭터가 주변에 있는 NPC를 때리거나 시비를 걸어도 아무런 일이 없었던 것처럼 무심히 걸어간다.


최근에 메타버스의 핵심으로 주목받고 있는 제페토(zepeto)에서 원하는 맵을 구축하는 빌드 잇(build-it)을 해 보면 거기에도 NPC 캐릭터를 여기저기 배치해 마치 군중이 많은 것처럼 만들 수 있는데 NPC들은 서서 박수를 치거나 하트를 날리는 역할밖에 없다. 애초부터 그 역할만 하도록 만들어진 캐릭터들이다.

만들고 있는 제페토 빌드 잇 맵(경기북부청 범죄 예방교실). NPC를 배치하면 단순히 손뼉 치고 단순히 움직이는 역할만 한다.
만들고 있는 제페토 맵에 NPC의 역할.


영화 프리가이에서 주인공 가이도 게임머니를 환전해주는 은행에 근무하는 NPC였다. 아침에 일어나 늘 똑같이 방문하는 커피숍에서 커피를 마시고 은행에 출근해 게임머니를 환전하면서 똑같은 대사를 하는 NPC였지만 어느 날 자아가 생기면서부터 게임 속에서 자신의 NPC를 거부하기 시작한다.

 맨날 똑같은 커피를 마셔야 하는지 의문이 들면서 라테를 시켜 마신다. 그리고 은행에 함께 출근하는 같은 NPC 친구 캐릭터에게 다른 커피를 마시도록 하면서 주변 NPC들까지 변화를 가져오게 한다. 그리고  사실이 게임회사 개발자들에게 발견되면서 오류를 없애기 위해 다른 악당 캐릭터를 보내 죽이기도 하지만 끝까지  스스로의 자아를 찾아가는 내용을 다루고 있다.

게임 속 NPC 캐릭터인 주인공이 스스로 사고하는 인공지능이 생기면서 자아를 가지게 되고  자신의 삶을 찾아가는 주인공과 개발 오류로 판단해 다음 게임 버전 출시에 치명적인 매출 하락으로 이어질걸  막기 위한 내용은 예상과는 전혀 다른 심오한 주제였다.


영화의 내용대로라면 인공지능으로 인해 스스로 사고하는 게임 속 캐릭터가 생겼고 게임 사용자들로부터 폭발적인 사랑을 받으면서 게임 접속자가 늘어 매출이 올랐으니 개발사는 세금을 내야 하는데 맞을 것 같았다. 그런데 이 영화는 마지막에 큰 반전을 숨겨놓고 있다. 게임 개발사와 개발자 간의 대립에 주인공 NPC는 개발자가 숨겨둔 소스 코드가 있는 비밀공간을 찾아가는데 이 모든 게 의도된 것이었다.(의도된 목적은 영화를 보면 알 수 있다.)  결국 NPC는 영화 속 주인공이 숨겨둔 소스코드를 찾아가면서 인공지능의 자아를 가진 캐릭터들이 오픈월드에서 세계관을 펼쳐가는 업데이트된 게임을 출시하면서 영화는 끝이 난다.




영화 프리 가이 중 주인공이 소스코드를 숨겨둔 이유 출처:구글 이미지


게임을 좋아하는 첫째와 둘째는 영화를 몰입해 보는 것 같았다. 그리고 영화가 끝나고 동생에게 인공지능에 대해 설명했다.


"결국 인공지능은 서버에 보관되어 있는 거네!"


이 영화 또한 인공지능에 대한 단편적인 해석이 될지 몰라도 자기만의 해석을 한 것으로 만족하면 될 것 같다.

물론 평소에도 게임을 좋아하는 분야라 관심을 가졌지 여전히 학교 숙제는 어쩔 수 없어하는 거라며 전혀 즐겁지가 않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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