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국에 100여 명의 사이버범죄 예방강사가 있다.
2012년 대국민 사이버범죄 예방을 위해 경찰청 사이버안전국이 전폭적으로 지원한 드라마 '유령'이 공개되었다.
15.3%의 최고 시청률을 기록하며 사이버 세계 속 인간관계를 밝혀내는 사이버 수사대 형사들의 애환과 활약을 다루며 큰 인기를 끌었다. 그리고 이때 경찰청은 전국에서 최초로 사이버범죄 예방강사 1기를 선발하며 대대적인 예방교육과 함께 홍보도 시작했다.
반드시 사이버범죄 수사팀에 근무하는 수사관들만 지원할 수 있었고 강의 경험이 없으면 지원할 수 없을 정도로 엄격했던 터라 나는 2014년 3기로 선발되었다. 선발 후 2주간 합숙 훈련을 하며 스피치 발성 기법과 강의안 작성 노하우등 교육을 마치고 곧바로 교육을 시작했다.(2주간의 교육으로 절대 강의 능력은 향상되지 않는다. 무엇보다 현장에서의 경험이 누적되면서 무대에 대한 공포증도 사라지고 청중들로부터 받은 피드백으로 성장한다는 사실은 누구라도 예측할 수 있다.)
나는 무엇보다 사이버안전국(2022년 현재 사이버수사국으로 명칭이 변경되었다.)의 '예방'이라는 모토에 동참하고 싶었다. 시골 3 급지 경찰서에 근무하는 3 급지 수사관이 경찰청 본사 직원들의 세부 근무 여건은 몰라도 예방을 위해 'Stand Together(함께 연대 하자’)라는 슬로건은 가슴을 뛰게 만들었다.
나 또한 사이버범죄는 검거와 예방에 우선순위를 둘 수 없다는 걸 뼈저리게 느끼고 있었으니 지원하지 않을 수가 없었다.(그때 경찰청 담당자는 왜 이제 지원했냐며 지원과 동시에 선발되었다.)
하지만 그냥 슬로건뿐이었는다. 경찰을 포함한 공무원 시스템에 있는 가장 위험한 취약점 중 하나가 '인사 발령'이다.
"그건 앞에서 했던 담당자하고 얘기하세요!"
이 말 한마디가 모든 걸 설명해준다.(더이상 다른 말이 필요없다. 이 말 한마디면 된다.)
전국에서 선발된 100여 명의 사이버범죄 예방 전문강사는 예비 피해자들을 지키기 위해 '함께 연대'했지만 제도는 점점 무의미한 경쟁으로 변질되고 있었다. 정확하게는 2013년도부터 시작했으니 10년간 지켜본 결과 의미 없는 경쟁으로 변질되었다. 무엇보다 폭증하는 사이버범죄로 인해 예방은 더 이상 설 자리가 없었다. 당장 현실 앞에 피해를 당한 신고자들이 자기 사건을 처리해 달라고 줄을 서 있는데 예방 교육을 위해 자리를 비운 다는 건 직무유기 감이었다. 그래서 전국의 예방강사들이 하나둘씩 그만두기 시작하고 그 빈자리를 무작위로 채워 넣기 시작했다. 사이버범죄 수사 경력이 조금이라도 있으면 국민들 앞에 서서 예방 교육하는 건 시간 때우기보다 쉽다는 아주 무서운 편견이 이 제도를 추락시켰다. 형사들은 이미 다 알고 있는 사실 그거 알려 주는 게 뭐가 대단한 일이냐는 지독하고 어리석은 편견과 1년마다 바뀌는 지휘관의 무관심 그리고 노력에 대한 보상이 없는 점들이 누적되면서 모두들 그만두기 시작했다.
나와 함께한 20명의 예방강사들도 모두 같은 이유로 그만두었다. 전담 업무 부서를 만들면 되지 않느냐는 의견은 지극히 조직의 시스템을 모르는 순수한 외부인들만 말할수 있는 의견이다. 전담 업무란 없다. 기본 업무에 전담 업무가 생길 때마다 추가로 전담해야 하기 때문에 전담 업무가 생길수록 기본 업무를 못하게 되는 결과가 생긴다. 인원과 예산을 늘리면 해결될 거라는 이론은 이 땅에 공무원이라는 조직이 태동하면서 불가능한 이론이 되었다.
'전담'업무를 위해 '인원'과 '예산'을 늘리면 된다는 이론은 '블랙홀 이론'이다.
결국 함께 연대할 사람들을 찾는 수밖에 없었다. 그래서 2019년부터 함께 할 사람들을 찾아다녔다. 사이버범죄로부터 가족부터 지켜야 한다는 연대에 동참할 사람들을 찾기가 쉽지 않았다. 나도 그렇게 의미 없는 경쟁에 휩쓸려 필요한 곳을 찾아다니며 예방교육에 전념했다.
하루는 경찰청 사이버범죄 예방교육 담당자로부터 전화가 걸려 왔다.
"의정부권에서 교육 요청이 하나 접수되었는데 20명도 안되는 것 같습니다. 이거 그냥 취소시킬까요?"
예방교육은 최소 20명이 되어야만 나갈 수 있다는 경찰청의 공지 사항(2022년 현재는 코로나 상황 때문에 최소 인원 규정은 없어졌다.) 때문에 취소하기 전 전화가 걸려왔다.
"아닙니다. 제가 관계자 분하고 통화해서 다녀오겠습니다."
교육을 신청한 곳은 의정부 경단녀(경력단절 여성) 활동을 하고 있는 학부모들이었다. 의정부시에서 지원하는 취업 지원 프로그램 교육 수료 후 사이버범죄에 관심을 가지고 검색하던 중 예방교육을 신청하게 되었다고 설명했다. 그리고 교육 당일은 50명의 참석자가 모였다.
이분들에게는 무의미한 '성과'도 없었고 '인사이동'도 없었다. 어떻게 하면 예방을 할 수 있는지가 공통 관심사였다. 첫 교육 후 스스로 학습 동아리를 만들어 매주 모여서 사이버범죄에 대해 연구하고 강의안을 만들고 있었다. 모를 때마다 전화가 걸려오면 나도 공부를 하고 있는 곳을 찾아가서 함께 강의안을 만들었다. 무대에 대한 공포를 넘어설 수 있도록 군부대에 교육을 나갈 때 함께 가서 발표도 했다.
그렇게 시행착오를 거쳐 '사이버불법유해정보대응센터'라는 이름도 만들고 역할 분담을 시작해 국내에서 유일하게 사이버범죄예방교육을 함께 시작했다.
이들은 나와 함께 연대하고 있는 첫 번째 파트너가 되었다.
사이버불법유해정보대응센터
https://blog.naver.com/hope_city/22153172402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