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이라는 콘텐츠의 힘.
#사이버범죄 #첫출간 #알라딘구매가능
이 해쉬태그를 포스팅하는데 2년이라는 시간이 걸렸다. 브런치에 한 편 한 편 연재하기 시작해 출판사로부터 연락을 받고 책이 나오기까지 걸린 시간이 2년이다. 아마도 여기서 글을 쓰고 읽는 많은 분들이 그렇겠지만 '글'은 분명 영향력 있는 콘텐츠다. 하지만 내가 쓴 글이 영향력이 있는지는 온전히 조회수 외에는 확인할 방법이 없어 쓰다 그만 두기를 수없이 반복한 것 같다. 당연히 조회수가 나오지 않다 보니 나의 '글'에 대중성이 더해지기에는 한 없이 부족한 것 같은 자기 검열에 빠진 것도 사실이다. 특히 나와 같은 직업에 근무하고 있는 동료와 선후배들은 이 '셀프 검열'의 지옥에서 빠져나오기가 쉽지 않다. 세상에 드러내어서는 안 될 비밀들이 너무나 많기 때문이다. 이 비밀은 엄밀히 말하면 영업 비밀이다. 영업 비밀 중에서 최고의 극비 사항은 수사기법 노출이다. 당연히 범죄자들을 추적하고 체포하는 수사관들의 노하우는 공개되어서는 안 된다. 나 또한 이런 신념을 가지고 있었지만 사이버범죄 예방교육을 다니면서 만난 많은 분들은 영업 비밀이 아닌 예방법을 알고 싶어 했다. 사이버범죄는 인터넷이라는 기술이 집약된 공간에서 일어나기 때문에 예방의 중요성을 강조해야 한다는 방향은 반드시 글을 써야 한다는 나침반이 되었다. 하지만 글을 써야 하는 동기는 찾았다고 하더라도 직업 자체가 가지고 있는 폐쇄성과 세상의 편견 그리고 대중성 없는 글력 때문에 셀프 검열은 수시로 찾아왔다. 특히 책이 나오기까지 찾아왔던 많은 위기의 순간과 이를 극복했던 과정을 정리해 봤다.
1. 사이다나 팝콘처럼 톡톡 튀는 글력의 부재.
외근에서 내근직으로 부서를 옮긴 후 찾아오는 스트레스는 정말 장난 아니었다. 이해하고 싶지도 않고 필요한 것 같지도 않은 일들을 왜 이렇게 만들기를 좋아하는지 심한 괴리감에 쌓여 있을 때 탈출구는 운동과 독서였다. 평소 한 달에 한 권 정도 읽는 습관은 유지하고 있었지만 이때 독서량이 3배 정도 늘었던 것 같다. 대부분 업무 방향성과는 정 반대인 퇴사, 부캐, 이직을 위한 자기 계발, 여행과 관련된 주제들을 다룬 책과 글로 위로를 받았다. 그리고 글도 써야 했기에 표현력을 높일 수 있는 인사이트를 얻을 수 있는 곳이라면 기꺼이 찾아다녔다. 브런치에서 엄청난 구독자수와 사랑을 받는 작가들의 강연도 찾아다녔다. '팔리는 나를 만들어 팝니다'와 '회사 체질이 아니라서요'는 나와는 전혀 다른 길을 가고 있는 분야의 책이었고 글에는 자신감이 묻어 있었다. 이 두 명의 스타 작가들이 신촌에서 강연회를 하는 소식을 발견하고 직접 듣고 싶어 찾아간 적이 있다. 하지만 자괴감만 가지고 돌아왔다. 도저히 따라가거나 흉내 낼 수 없는 내공을 가지고 있는 것 같았다.(돌아보면 두 작가분이 가지고 있는 자신감이 커 보여 그런 느낌을 가질 수도 있었지만 브런치에서 선정한 스타 작가들의 내공은 달라도 뭔가 다른 것 같았다.) 한없이 자존감 떨어지는 글력의 부재는 가장 큰 자기 검열의 지옥이 되었다.
2. 전혀 다른 분야의 책으로 생각의 깊이를 더했다.
악성코드 분석. 칼리 리눅스 파헤치기. 파이썬 코딩. IT 엔지니어를 위한 네트워크 입문과 같은 책만 보다가 그나마 시각 확장을 위해 선택한 책도 '나는 아마존에서 미래를 다녔다'와 같은 IT 분야를 넘어가지 못했다. 그래도 '사이버범죄에 로그인되었습니다(원제:cyber effect)'는 심리학적 측면에서 사이버범죄를 다룬 가장 몰입도 높았던 책이었다. 하지만 대부분 컴퓨터 사이언스에 기초를 둔 기술 과학 책이 대부분이었고 인문학적 시각으로 접근한 책은 찾을 수 없었다.(이때 새로운 시장을 개척하는 것도 좋겠다는 확신도 들었다.)
전혀 다른 분야를 찾다가 우연히 브런치에서 '프랑스 학교에 보내길 잘했어'와 '단테의 신곡'을 발견했다. '프랑스 학교에 보내길 잘했어'는 무엇보다 경험하기 힘든 과정을 겪으면서 성장해 나가는 한 가족의 성장 스토리에 책을 읽는 내내 나 또한 가족들과 함께 프랑스로 이민을 가고 싶다는 생각이 완독 할 때까지 떠나지를 않았다. 이렇게 자신의 경험을 풀어내는 스토리텔링만큼 강력한 글력이 없다는 걸 새삼 알게 해 준 의미 있는 책이었다. '단테의 신곡'은 사이버범죄 속에 녹아 있는 어렵고 딱딱한 컴퓨터 사이언스에 대한 고정관념을 어떻게 풀어낼 수 있는가를 고민하면서 택한 책이었다.(하지만 단테의 신곡은 컴퓨터 사이언스를 다룬 책 보다 더 어렵고 심오해 천국과 지옥편을 두 번씩 읽어도 이해하기는 어려웠다.)
전혀 다른 분야의 책을 통해 얻고 싶었던 것은 자신의 경험을 스토리 텔링화 한다면 자신감을 가질 수 있고 글력으로 이어질 수 있다는 확신을 가지고 싶었다. 그리고 컴퓨터 사이언스를 많은 사람들에게 어떻게 쉽고 깊이 있게 알릴 수 있는지 고민하게 되었다.
그 출발점은 30대와 40대를 함께한 사이버범죄 피해자들, 피의자들과 함께한 스토리 텔링에서 출발하기로 했다. '별게 다 영감'이라는 책에서 지식을 얻기 위한 세 가지 방법으로 책 읽기, 위대한 사람들과의 대화, 새로운 곳으로의 여행이라고 말하고 있다. 다시 생각해 보면 나도 이 세 가지를 하고 있었다. (사이버범죄 피해자들과 피의자들과의) 대화. (인터넷 공간)이라는 새로운 세계로의 여행 그리고 책 읽기까지 그렇다면 나도 지식 전달자로서의 자격은 충분하지 싶었다.
바로 이 '글감'은 자기 검열을 깨고 나오는데 가장 큰 원동력이 되었다.
3. 조회수에 집착하지 않았다.
수많은 내적 갈등을 극복하고 글을 업로드했지만 조회수가 나오지 않으니 자신감이 떨어지는 건 부인할 수 없는 사실이었다. 특히 사이버범죄는 '당하는 사람들'만의 이야기로 치부되다 보니 애써 외면할 수밖에 없는 주제여서 더 조회수가 나오지 않았다. 하지만 글이라는 콘텐츠의 힘을 믿고 업로드를 위한 일상 속 루틴을 만들었다. 1주일에 한편 업로드가 나중에는 1달에 한 편으로 떨어지고 분기에 한 편으로 들쑥날쑥 해 졌지만 틈 나는 대로 헬스장을 찾아가서 운동을 하는 것처럼 루틴화 시켰다. 다만 브런치에 연재할 때는 글의 강약을 조절해야만 했다. 스토리 북으로 묶을 수 있는 작은 주제를 스케치하고 각 주제별로 다뤘던 사건들을 정리하면서 그 당시 느꼈던 생각과 공개해도 문제없는 내용만을 적으면서 나름 감정의 깊이를 조절하면서 써 나갔다. 동종 업계에 근무하고 있는 동료들로부터 비난을 받을까 봐 늘 걱정이었는데 아니나 다를까 모 경찰서 사이버범죄 수사팀에 근무하는 동료로부터 연락을 받았다.
'지치지 말고 분명 예방의 효과는 클 거라고 생각합니다.'
사실 같은 동료로부터 이런 말을 가장 듣고 싶었는데 만난 적도 없는 분으로부터 받은 응원의 메시지는 가장 큰 힘이 되었다. 이 또한 형사는 이런 걸 하면 안 된다는 자기 검열을 뚫고 나오는데 큰 역할을 한 것 같다.(브런치를 접한 동료들로부터 내부 메신저를 꽤 많이 받았다.) 그래서 이미 많은 브런치 작가들이 조언한 것처럼 조회수에는 연연하지 않기로 했다.
4. 도구가 필요하다.
노트북과 스마트폰을 수시로 오갈 수 있는 앱은 필요한 것 같다. 에버노트는 가장 효율적인 도구가 되었다. 언제든지 아이디어가 떠오르면 스마트폰으로 스케치가 가능하고 이어서 노트북으로 작업이 가능하니 가장 효율성이 좋아 지금껏 사용하고 있다. 그리고 엑스마인드(xmind)는 구체적인 목차와 세부 주제를 연결할 수 있어 생각을 구체화하는 데 사용하고 있다. 쓰는 글이 누적되다 보면 반드시 정리하고 글과 글을 연결할 도구가 필요할 수밖에 없는데 에버노트와 엑스마인드가 이를 해결해 주었다.
이외에도 브런치를 시작하면서 '북튜버'에도 관심이 생겼다. 어떤 관점에서 좋은 글로 평가를 하고 독서평을 남기는지 궁금해 브런치 시작과 동시에 북 튜버 구독 채널도 늘었다. 그렇게 브런치를 시작한 지 1년이 넘어서 출판사로부터 연락이 왔다.
5.'글'은 막강한 콘텐츠였다.
출판사를 만나고 중간중간 진행 상황을 점검하면서 글이 얼마나 큰 힘을 가지고 있는지 해상도가 뚜렷해졌다.
"브런치에 담은 얘기보다 더 많은 스토리를 가지고 있는 것 같아 꼭 같이 작업하고 싶습니다."
브런치를 시작한 지 1년쯤 되었을 때 출간 계획서를 만들어 출판사에 이메일을 보내려고 준비 중이었는데 이 말 한마디에 계획서를 지워 버렸다. 하지만 이건 시작(정확하게 말해서 일종의 낚시질(?)과 같은 입질)에 불과했다. 브런치를 시작할 때와는 다른 강도의 중압감과 싸워야만 했다.(그래도 처음 브런치를 시작할 때 마음 단련이 되어 있어 극복하는데 그리 오래 걸리지는 않았다.) 최종 원고를 넘기기까지 시간은 충분했지만 처음 몇 개월간 방향 설정과 자료 수집을 핑계로 시작도 할 수 없었다. 브런치는 순전히 순수한 의도였다면 이제부터는 정제되고 명확한 입장을 취해야만 했다. 사건이 발생한 순서대로 만났던 사람들과의 얘기를 타임라인 방식으로 만들고 싶었지만 출판사는 주제별로 묶어서 메시지를 전달해야만 한다고 강조했다. 그래서인지 중간 점검 때면 숙제 검사를 받는 것 같아 좀 무서웠다. 그래도 마음속 목줄이 풀리니 평일 퇴근 후, 주말에 글에 집중하는 시간이 늘었다. 출판사와 미팅을 할수록 통화를 할수록 방향이 정해지면서 그 방향에 따라 메시지를 다듬을 수 있었다.
6. 어렵게 쓰면 안 된다.
첫 글자를 쓰면서부터 제목과 함께 가장 많이 고민한 부분이었다. 사이버범죄는 네트워크 주소의 이해, 컴퓨터 기본 운영 원리, IP 주소 체계의 이해가 있어야만 예방까지 진도를 뺄 수 있는데 이렇게 접근하면 기술서적이 될 것 같아 애초부터 방향을 전면 수정했다. 기존의 출판 서적을 뒤져봐도 이미 개척된 시장이 없어 참고할 만한 도서마저도 없었다. 그래서 '사건'과 '사람'들의 이야기를 풀어 가기로 했다. 하나의 '사건'에서 만난 사람들과의 얘기와 만나게 된 과정에 기술이 조금 들어간다면 어렵지 않을 거라 생각하고 책을 쓰는데 가장 많은 시간을 할애했다.
그리고 출판사는 '글'을 브랜드화할 줄 아는 엄청난 조력자였다. 미팅 때는 몰랐는데 계속 진도가 나가다 보니 왜 그런 의도로 방향을 설정했는지 알 수 있었다.(글쓰기 수업을 받아 본 적도 없고 처음이다 보니 깨닫는데 시간이 좀 걸렸다.) 긴 작업 끝에 최종 편집본을 받는 순간 출판사는 브랜드 회사가 맞았다. 그리고 그동안 엄청난 조력자 역할을 해 주었다.
시작한 지 1년 8개월 만에 '사이버범죄 전담 형사의 리얼 범죄 추적기'라는 타이틀로 책이 나오게 되었다.
사이버범죄의 고통은 더 이상 피해자들의 몫이 되지 말아야 한다는 메시지를 전달하고 싶었고 출판사와 많은 분들의 도움으로 책을 출간하게 되었다.(혼자만의 힘으로는 출간이 어렵다는 사실을 너무나도 잘 알게 되었다.)
30대와 40대를 사이버범죄로 만난 피해자, 피의자들과 함께 보냈다면 40대 후반부터는 사이버범죄 예방 활동을 하면서 만난 사람들과 함께 하고 있다. 그만큼 사이버범죄는 나의 인생에 중요한 범위를 차지하고 있다.
앞으로 언제까지 경찰을 할 수 있을지 몰라도 사이버범죄는 내 인생의 큰 변곡점이 되었다. 그리고 범죄의 고통은 남은 사람들의 몫이 되어서는 안 된다.
#인격살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