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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중현 Jun 24. 2023

갑질한 자 그리고 블랙해커 중 누가 더 나쁜가?

우리는 그들로부터 메시지를 받았다.

│Based on Actual events.

│실제 사건을 기초로 했다. 하지만 피해자들의 신원 보호를 위해 일부 재가공했다.


데이팅 앱에서 피해를 당한 군인


당직 근무날 한 군인이 민원실에서 작성한 진정서를 들고 사무실 문을 열었다.


“내 인생에 두 번 다시 랜덤 채팅은 없습니다.”


진정서에 첨부한 채팅 대화 내용을 읽어 보고 있는 동안 피해자가 내뱉은 말이었다. 잠시 동안이겠지만 그 말에는 진심이 담겨있다. 불법 인터넷 도박 사이트 운영자들이 체포 후 구속 영장 실질 심사장에 들어갈 때 이번에 구속되면 도박은 손 씻고 나오겠다는 자백과 같은 라임이다. 하지만 도박 사이트 운영자들은 나오면 또 손을 댄다. 다만 운영장을 국내에서 해외로 무대를 옮길 뿐이다. 마찬가지로 캐주얼한 만남에 랜덤 채팅만큼 더 좋은 도구는 없다. 그러니 시간이 지나면 자연스럽게 또 랜덤 채팅에 접속할 거란 걸 잘 알고 있다.


피해자는 랜덤 채팅 속 그녀로부터 성기가 노출된 영상을 유포하겠다는 몸캠 피싱 피해를 당하고 있었다. 범죄자들이 피해자에게 보낸 영상 속 주인공은 피해자였다. 스마트폰에는 피싱범이 보낸 1분 54초짜리 영상이 저장되어 있었다. 그리고 2천만 원을 송금했다. 나체로 화상 통화를 하자고 유도한 뒤 이를 녹화해 돈을 보내지 않으면 유포해 버리겠다는 몸캠피싱 범죄가 최근 군부대에서 많이 접수되고 있다. 2019년부터 스마트폰 반입이 허용된 후 이렇다 할 교육을 받지 못했으니 당연한 결과다. 피해자에게는 불법 촬영물이겠지만 그들은 1분 54초짜리 영상으로 2천만 원을 벌었다.


피싱 범은 부모님과 부대 직장 상사들에게 자위 영상이 첨부된 파일을 예약전송 하려고 대량 문자 발송 사이트에서 준비된 화면을 띄워 협박을 시작했다.

피싱범들은 피해자의 스마트폰에서 주소록을 탈 취한 뒤, 대량 문자 발송 사이트 돈을 송금하지 않으면 피해자의 성기가 노출된 영상을 가족들에게 뿌리겠다고 실시간으로 협박하고 있었다


피싱범들은 계획된 시나리오 대로 대량문자 서비스에서 자위 영상을 첨부한 메시지 수신자를 부모님과 직장 상사로 설정해 놓고 예약문자 발송 화면을 보여 주면서 협박하고 있었다. 주어진 시간은 5분이었다. 돈을 마련하지 않으면 그동안 쌓아 올린 모든 사회적 가치가 한순간에 추락하는 순간이었다. 그렇게 모아둔 2천만 원을 송금하고 더 이상 돈을 빌릴 곳이 없어 신고를 한 것이다. 여기서 단 돈 1원도 송금하면 안 된다. 그들은 한 사람만 노리는 게 아니라 찔러서 반응하는 사람에게만 돈을 갈취하기 때문에 가족과 주변 사람들에게 먼저 알리는 용기만 가진다면 돈을 보낼 필요가 없다. 이 사건으로 피해자가 송금한 계좌에는 같은 날 몸캠 피싱 피해를 당한 다른 피해자들로부터 4,500만 원을 갈취해 총 6,500만 원을 벌어들였다. 너무나도 불공평한 세상이다.


아무리 돈을 송금해도 피싱범들의 협박은 멈추지 않는다. 그러니 가족과 동료들에게 먼저 알리는 용기를 가져야 한다. 출처: 군인 피해자 SNS 대화 내용 캡처


피해자는 아만다(아무나 만나지 않는다)라는 데이팅 앱에서 처음 여자를 가장한 피싱범을 알게 되었다. 그리고 다른 피해자들과 마찬가지로 채팅앱에서 영상 통화가 가능한 스카이프(skype)로 옮겨서 영상 통화를 했다. 여기서 ‘아만다’는 이미 사회적으로 이슈가 되었던 데이팅 앱이었지만 ‘당한 사람들만의 이야기’였기에 사무실을 방문한 피해자는 당연히 알 길이 없었다.

아무나 만나지 않는 데이팅 앱 ‘아만다’ 사건의 전말은 이렇다. 직장 내 갑질을 고발하는 ‘직장갑질 119’에 한 제보가 접수된다. 제보자는 그 당시 누적 가입자수 660만 명에 달하는 데이팅 앱 ‘아만다’의 내부 개발자였다. 이 개발사는 내부 직원들로 하여금 가짜 계정 수백 개를 만들어 마치 여성인 것처럼 활동하게 강요하였으며 해외 여성들의 프로필을 가져와서 계정을 만들었다는 내용이었다. 데이팅 앱에서 시작된 몸캠 피싱 사건을 수사하면서 늘 가지고 있었던 의문점이었지만 이런 식으로 세상에 공개될 줄은 예상하지 못했다. 게다가 누적 가입자 수에 또 한 번 놀라지 않을 수가 없었다.


관련기사

https://www.hankookilbo.com/News/Read/A2022041323570003727


‘Life is Short! Have an affair!’


그리고 또 하나의 데이팅 앱 사건이 있다.


‘인생은 짧습니다! 바람피우세요!’라는 강력한 슬로건으로 국내에 상륙한 해외 데이팅 앱 애슐리 매디슨(Ashley Madison)도 차별화된 마케팅에 성공했다. 이제 가입자들을 나눠 먹는 제로섬게임(Zero-Sum Game)이 되어버린 시장에서 살아남으려면 자극적이고 차별화된 전략밖에 없다. 그리고 애슐리 매디슨도 2015년 개인정보가 유출되면서 사회에 강력한 메시지를 던져 주었다.


‘애슐리 매디슨의 프로파일은 소송감이다. 이 사이트의 사용자 90-95%가 남자다.’


다른 사람의 고통으로 이익을 올리는 기업들에게 경고의 메시지를 전달하기 위해 개인정보를 탈취한 해커 그룹은 가입자 비율도 함께 공개했다. 2015년 7월 유출된 정보와 함께 메시지를 사회에 던져 주었지만 가입한 그들도 그리고 몸캠피싱으로 사무실을 방문하는 피해자들도 모두 외면했었다. 범죄 피해를 당한 그들만의 이야기였기 때문이다. 이러한 무관심은 도적적으로 타락한 회사를 먹여 살린다. 개인정보 유출 이후 달라진 건 ‘인생은 짧습니다! 바람피우세요!’라는 타이틀만 사라졌다. 결국 데이팅 앱은 돈이 되는 사업이고 무작위로 매칭되는 가챠(Gacha) 모델은 여전히 이 시장에서 적용되는 기본 공식이다.


관련기사

https://www.itworld.co.kr/news/95088


수요가 있는 곳엔 범죄도 있다. 이성 친구를 만들고 싶어서 가입한 사용자들에게 회원 10명 중 9명이 남자라는 비율을 공개한다면 당연히 가입하지 않을 것이다. 그래서 도용한 사진, 탈취한 타인의 계정으로 허위의 여성 프로필을 만들어 새로운 피싱 범죄를 설계하고 있다. 하지만 개발사들은 이 모든 것을 알고 있다. 그리고 이를 방관하고 있다. 사람들의 무관심은 개발사의 난립을 초래하고 개발사의 방관은 계속해서 양산되는 범죄 피해자들을 외면하게 만드는 피싱 범죄의 생명주기가 반복되게 만들고 있다. 


개인정보 유출 이후 리뉴얼 서비스를 시작한 데이팅 앱 애슐리 매디슨(Ashley Madison)

‘Life is Short! Have an affair’라는 문구가 사라졌다.

출처: 2022.12.19. 자 기준 앱 스토어(App Store)에서 캡처


이처럼 도적적 책임감이 추락한 채 디지털 성범죄의 창구가 되고 있는 데이팅 앱은 더 이상 개발사의 개별 책임만을 강조하기에는 한계를 넘어섰다. 디지털 성범죄 수사를 하다 보면 빠지지 않고 등장하는 데이팅 앱 개발사에 남녀 회원 비율을 요청한 적이 있다. 하지만 돌아온 대답은 ‘영업 비밀’에 속하기 때문에 공개할 수 없다는 입장이었다.(물론 압수수색검증영장으로 요청할 수도 있지만 데이팅 앱 개발사의 방조 책임을 물어야 하는데 이렇게 되면 국내 모든 데이팅 앱 개발사들과의 전면전이 될 수 있다.) 개발사에게 영업 비밀은 지금까지 그 누구도 열고 들어 올 수 없는 단단한 자물쇠가 되었지만 이제 부서질 날도 얼마 남지 않았다. 다만 하루라도 빨리 자물쇠를 풀기 위해서는 관심이 집중되어야만 한다. 하지만 데이팅 앱에서 막대한 영업 이익을 벌어들인 일부 개발사는 애스크(asked.kr)나 푸슝(pushoong.com)과 같은 익명 채팅 기능 서비스를 준비하고 있다. 노골적으로 바람피우는 데이팅 앱은 사라졌을지 몰라도 익명으로 바람피울 수 있는 데이팅 앱은 살아남았다. 이런 생태계는 절대적으로 사람들의 무관심 속에서 성장한다.


그리고 2022년 방관하고 있는 데이팅 앱 개발사들과 여전히 피해자들만의 프레임을 씌운 채 외면하고 있는 사용자들을 향한 신호탄이 쏘아 올려졌다. 국내 한 디지털 광고전문업체 인크로스(incross.com)에서 2022년 4월 미디어 데이터 클리핑 ‘데이팅 앱’ 편 분석 보고서를 공개한 것이다.

보고서에 의하면 최근 1년 주요 데이팅 앱 순 이용자 추이 1위에서 5위는 다음과 같다.

1위 틴더(tinder) 2위 글램 3위 헬로톡 4위 여보야 5위 위피

문제는 1위부터 5위까지 모두 몸캠피싱, 로맨스 스캠 범죄 피해자들이 가입했던 데이팅 앱들이다. 그리고 이 보고서에는 1위부터 10위 랭크를 기록한 데이팅 앱 데모 프로파일을 기초로 분석한 남녀회원 비율도 공개했다. 이 회원 비율은 영업 비밀에 속할 만큼 민감한 자료들이 있어야만 분석이 가능한데 가입자들이 공개한 정보들이나 프로필만으로 분석했을 가능성이 높다.


[2022-4호] 인크로스 미디어 데이터 클리핑 <데이팅 앱> 편 中 일부자료 인용


제한적인 정보만으로 분석했다고 하더라도 이 보고서는 디지털 성범죄 피해자들의 절규가 담겨있다. 그리고 새로운 시장을 개척하려는 범죄자들에게 기회의 땅이 되고 있다. 가입자 전체가 100% 남성인 경우 사용자들이 그곳에서 찾고자 했던 게 뭔지는 모르겠지만 적어도 피싱 범죄자들에게는 몸캠피싱으로 수천만 원에서 수억 원의 돈을 벌 수 있는 기회인 것은 분명한 사실이다. 도용한 사진과 개인정보로 여성의 프로필을 만들어 입장만 하면 모두 남자들인데 당연히 기회의 땅이 될 수밖에 없다. 어쩌면 피싱범들끼리 서로 속이고 있는지도 모르겠다. 여기에는 개발사의 방관이 숨어 있다.


‘워낙 경쟁이 치열하고 영세한 회사들이 난립해서 불법적인 마케팅을 하는 경우가 적지 않은 것은 사실이다.’


관련기사

https://www.hankookilbo.com/News/Read/A2022041323570003727


단독 보도로 공개한 기사에서 한 업체 관계자의 인터뷰가 실렸는데 여기에는 진심이 담겨있다. 터지기 직전 상태에 이른 데이팅 앱 개발시장에서 살아남으려면 범죄마저도 방관할 수밖에 없다는 의미가 숨어있다. 이제 우리가 따져봐야 한다. 이렇게 해서라도 돈을 벌어 들이는 데이팅 앱 개발사는 어떤 수익 구조를 가지고 있는지 궁금해져야 한다. 이미 사이버범죄 수사를 시작했을 당시 디지털 성범죄 피해를 당해 사무실 문을 열고 들어온 피해자들로부터 확인할 수 있었다.  피해자들은 대부분 데이팅 앱에 가입했다가 영상 통화가 가능한 카카오톡이나 스카이프(skype)로 이동했는데 여기에 아주 중요한 장치가 있다. 개발사들은 가입자들이 데이팅 앱에서 많이 머무를수록 더 많이 대화를 나눌수록 수익을 가져간다. 이런 구조는 최근에 넷플릭스와 유튜브에서 비롯된 망 사용료 사건에서도 이슈화가 된 바 있다. 다만 이 이슈는 그들만의 이야기로 외면했기 때문에 우리는 인지하지 못했을 뿐이다. 이제 우리가 따져봐야 할 시기다. 그리고 다음 편에는 그들에게 이 질문을 던져 보겠다.



│데이팅 개발사의 수익 구조는 어떻게 되는가?

│정말 개발사는 방조의 책임으로부터 자유로운가?

│개발사에게 적용할 가이드라인은 없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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