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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중현 Feb 11. 2020

전교생 앞에서 사이버범죄 예방을 외치다.

단체로 하는 예방교육은 안 하는 게 좋은 것 같습니다.

사실 사이버범죄 예방교육은 군인들보다 청소년들에게 더욱 절실한 상황이었습니다.

번개장터에서 중고 오토바이를 판매한다는 글을 올린 후 피해자들로부터 돈만 받고 잠적하는 사기 사건이 몇 건 접수되었습니다.

통장 명의자를 확인해 보니 연천 관내 고등학생으로 확인되어 학교에 찾아갔을 때는 이미 퇴학 처리된 친구였습니다. 이런 학생들이 갈 곳은 오직 한 곳 밖에 없다는 걸 잘 알고 있어 주변 친구들을 수소문해 자주 드나드는 피시방으로 향했습니다.

피시방에 도착해보니 옆 자리에 또래 여학생과 함께 앉아서 번개장터에서 다음 범행을 위해 준비를 하고 있었습니다.

이런 학생들은 세상 모든 게 거칠 것 없습니다.

공부는 잘 못하더라도 학교만 졸업하면 그래도 니 인생에 있어서 선택의 폭이 넓어진다는 식의 연설은 통하지 않는 친구들입니다.

동일 범죄로 이미 의정부지방법원 소년부에서 재판을 받고 있는 중이라 경찰 조사 시스템과 방식을 너무 잘 알고 있었습니다.

심지어 저에게 피시방에서 발각되기 직전 용돈을 벌기 위해 대포통장 대여 광고를 보고 여자 친구의 통장을 대포통장 모집책에게 퀵배송으로 건네준 뒤였습니다.

그리고 그 여학생은 며칠 뒤 다른 지역 경찰서에서 전자금융거래법 위반으로 입건되어 저에게 조사를 해 달라는 촉탁 의뢰가 들어왔습니다.

이런 친구들까지 제가 사이버범죄 예방교육의 테두리 안으로 데리고 와 어른으로 품어 주고 싶어도 예방 교육 나가느라 적채 된 사건이 더 신경 쓰였습니다.

한번은 사건 서류를 찾기 위해 의정부지방검찰청에 들렀다가 의정부지방법원과 검찰청 건물 사이 구석에 불량스럽게 쭈그리고 앉아 담배를 피우고 있는 어린 학생이 보였는데 세상 거칠것 없이 살고 있던 그 친구였습니다.

그래도 이런 애들은 조사를 했던 담당 형사를 보면 인사는 참 잘합니다.

법원 건물에서 불량스러운 태도로 쭈그리고 앉아 담배를 피우고 있을 정도면 법원에 근무하는 청원 경찰도 공익 요원 그 누구도 이런 부류의 사람과는 엮이고 싶지 않아 관심을 꺼 버립니다.   

당시 저도 사건 담당 형사로서 역할을 다했고 번개장터에 사기 친 대가로 어차피 처벌을 받을 거니 더 이상의 관여는 저를 힘들게 할게 뻔했기에 그 친구와는 그걸로 형사와 피의자로 관계를 마쳤습니다.


한 번은 리그오브레전드 게임 중 같은 대화방 유저의 패드립 일명 부모님 안부를 묻는 대화 내용을 캡처해 모욕죄로 고소장을 들고 저를 찾아온 학생 조사를 마치고 예방교육을 위해 몇가지 질문을 해 보았습니다.

“요즘애 너네들 기숙사에서 모여서 무슨 게임해?”

“게임하는 애들은 게임하는데 요즘에는 도박 승률 맞추는 친구들이 더 인기 좋아요!”

혼자서 사건 조사와 틈나는 대로 예방교육을 하는 상황에서 인터넷 도박 사건은 도저히 엄두도 못 낼 규모의 사건이라 사실 믿기지가 않았습니다.

스포츠 도박은 수시로 접속을 해야 하는데 설마 학생들에게 스포츠 도박이 퍼져 있을 거란 사실도 쉽게 믿기 어려웠습니다.

“도박을 하는 친구들이 많아?”

“예 기숙사에서 적중률이 높은 친구들이 받은 배당금으로 먹을 거 쏘면 그 친구가 인기가 좋아요!”

실체를 파 해치기 위해서는 학생들 대상으로 도박사이트에 베팅을 하고 있는 친구들을 선별해 조사를 하고 방대한 양의 계좌 분석과 그것보다 더 광범위한 출장 조사가 이루어져야 하는데 인터넷 도박 사이트 수사는 아주 먼 얘기였습니다.

2017년 경기북부지방경찰청으로 인사 발령을 받고 3개월 내사해 조직원들 검거 후 2달간 추가 범죄를 밝혀 내기위해 만 1년 동안  도박사이트 운영자들을 검거하면서 확보한 수만 건의 계좌 거래내역에서 청소년들이 발견되었고  도박문제 관리센터 경기북부센터에서 도박문제로 방문하는 청소년들을 직접 만나 보았고 사이버범죄 예방교육을 다니면서 확인한 청소년들 도박 실태는 놀라울 정도였습니다.

정확하게 말하면 도박을 게임으로 인식하고 있다는 게 더 큰 문제였습니다.

최근 도박사이트 운영자들은 우후죽순 경쟁 사이트가 생기다 보니 더 많은 회원들을 끌어들이기 위해 웹툰, 영화, 음란물 등을 무료로 볼 수 있도록 회원 가입을 유도해 무차별적으로 회원들의 동의 없이 개인 정보를 수집하고 데이터화 시켜 고객들의 정보에 값을 매겨 유통시키고 있습니다.

도박사이트 가입을 위해 한번 수집된 개인정보인 접속 아이피, 이메일 주소, 휴대전화 번호, 도박 사이트 가입 당시 접속한 스마트폰과 노트북의 고유 기기번호 맥 어드레스(mac address)는 지인과 가족을 사칭해 돈을 요구하는 카카오톡 피싱, 메신저 피싱과 같은 2차 범죄에 사용되기 때문에 그 피해는 연쇄적으로 발생하게 됩니다.

  

그래서 청소년들에게 사이버범죄 예방교육은 더 필요한 것 같은데 학교를 찾아가 알려줄 사이버범죄 예방교육의 메시지는 정해져 있었습니다.

1. 인터넷 명예훼손 - 하지 말아야 합니다.

2. 스미싱(smishing) - 출처가 불분명한 첨부 파일은 열어 보면 안  됩니다.

3. 토렌트(torrent) - 다운로드와 동시에 유포가 되기 때문에 사용하면 안 됩니다.

4. 음란물 - 보면 안 됩니다.

5. 인터넷 도박-게임이 아닙니다. 하면 안 됩니다.

이렇게 ‘하면 안 된다!’라는 내용이 교육의 주를 이루다 보니 내용이 재미없으면 곧바로 생각이 마실 나가는 청소년들에게 군부대에서 했던 교육 방식으로는 시간만 때울 뿐 하나라도 전달해 줄 수 없을 것 같았습니다.

특히나 학교에서 분기별로 시행하는 정보화교육 때 의무적으로 채워야 하는 교육시간이 있어서 전체 강당에 전교생을 모아놓고 교육을 진행한 적이 몇 번 있었습니다.

 

전교생들을 단체로 모아놓고 진행한 사이버범죄 예방교육은 하는 사람도 참석한 사람에게도 전혀 도움이 되지 않는 교육이었습니다. 출처:박중현


“전교생 모아놓고 하는 교육은 안 하는 것보다 못한 것 같습니다.”

하지만 학교도 정규 교과과정 말고도 외부에서 학교로 찾아와 시행하는 교육이 워낙 많다 보니 선생님들도 외부에서 하는 교육에 찌들 때로 찌들어 있었고 심지어 각 경찰서 여성청소년계 소속 학교전담경찰관 일명 스쿨폴리스들도 학교에 정기적으로 찾아와 학교폭력 예방교육에 참여하고 있던 상태였습니다.

사무실에서 제일 가까운 학교를 직접 찾아가 교감선생님과 교육 담당 선생님에게 제안을 하나 했습니다.

저에게 검거된 번개장터 피의자 학생이 퇴학 전 다녔던 학교라 선생님들도 사이버범죄 예방교육이 필요하다는 부분에 공감해 주셨습니다.

“사실 저도 어렸을 때 꿈이 선생님이었습니다. 각 학년별로 2 반씩 묶어서 교육장에서 사이버범죄 예방교육을 할 수 있도록 시간을 주시면 준비해 보겠습니다!”

그 자리에서 교육 담당 선생님은 적극적으로 건의를 하겠다는 답을 주셨고 면담하고 일주일 뒤 선생님께서 교육 일정표를 보내 주었습니다.

'쉽고 재미를 주면서 마지막에는 사이버범죄에 대한 메시지를 적어도 하나는 전달하자!’

그래서 스토리 텔링 방식으로 강의안을 만들었습니다.


반별 수업은 너무 재미 있었고 맑은 눈망울로 쳐다보는 학생들에게 하나라도 더 알려주고 싶었습니다. 출처:박중현

익명으로 질문하고 답할 수 있는 애스크(ask) 게시판에 성인보다 더 자극적인 표현으로 작성한 모욕사건, 리그 오브 레전드 게임 중 대화 게시판에 작성된 모욕사건, 여자 친구와  전곡 피시방에서 같은 학교 친구 아이디로 번개장터에서 직거래 사기 사건으로 저에게 검거된 학생들 얘기로 자료를 만들다 보니 2시간으로도 부족할 것 같았습니다.

하지만 청소년들에게는 2시간의 교육은 집중도가 떨어지기 때문에 한 시간으로 정리해 제가 검거 현장에 나가면서 촬영한 영상들을 편집해 메시지를 전달해 주었습니다.

전달자의 입장에서 조금 더 학생들의 눈높이에 맞춘 재미를 더해줘야 하지만 특별히 제가 랩을 한다든지 비트박스를 구사하는 재능을 가지고 있지 않아 분위기를 최대한 밝게 진행하려고 하였습니다.

확실히 청소년들은 군부대보다 더 많은 에너지가 필요하고 더 많은 액션과 웃음이 필요하다는 걸 알게 되었습니다.

하지만 전교생을 모아놓고 시간 때우기식 교육보다는 반별로 들어가서 진행하는 수업이 더 좋았습니다.

그리고 어릴 적 꿈꾸었던 선생님 역할도 한 번 해 보았습니다.

반별로 교육을 마치고 사무실로 복귀하면 밀린 사건을 처리해야 하는데 잠깐 의자에 앉아서 눈을 감으면 잠이 들 때도 많았습니다.

 누구 하나 주변에서 칭찬하거나 인정해 주지는 않았지만 힘들면 군부대 설문조사 결과지를 한 번씩 읽어보곤 했습니다.


분명 군부대에는 제가 희망했던 영화 인셉션의 킥(kick)과 같은 예방교육이 되었다고 믿습니다. 출처:박중현


그리고 경찰청에서 지원하는 사이버범죄예방 전문강사 3기에 도전해 선발되었습니다.

두말할 것도 없지만 제가 군부대와 학교를 찾아다니면서 해왔던 사이버범죄 예방교육이 이미 경찰청까지 소문이 나 있던 상태라 선발이 안 될 이유가 없었습니다.


월별로 들어오던 교육 일정표는 지금도 간직하고 있습니다. 출처:박중현


소속은 연천경찰서이지만 예방교육을 나갈 땐 경찰청 사이버범죄예방 전문강사로 나갈 수 있게 되었고 만 6년째 사이버범죄 수사관과 예방 강사라는 타이틀을 가질 수 있게 되었습니다.

교육 나갈 때 항상 정장에 차고 나갔습니다. 출처:박중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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