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군가는 승진해서 새로운 업무를 위해 떠나고, 어떤 분은 새로운 업무를 위해 떠나온 곳이 연천 경찰서로 시작하는 인사 발령이 매년마다 지겹도록 같은 시기에 반복되고 있습니다.
이제 사이버범죄 수사 업무에 적응되었고 비록 혼자서 힘든 시기와 고비가 다가왔지만 개인적으로 미지의 영역을 모험한다는 생각으로 인사 발령과는 아무 상관없이 들어오는 사건들을 처리해 가면서 그렇게 버텨 나갔습니다.
실무자들은 개인 가정사나 업무의 어려움 등 본인의 의지에 따라 부서를 이동하거나 타 지역으로 떠나는 경우가 대부분이지만 수사과장은 길면 한 부서에서 2년을 근무할 수는 있지만 대부분은 1년을 단위로 이동합니다.
사이버 수사 업무를 전담한 지 1년이 지나면서 새해에는 좀 더 깊이 있게 수사하고 틈나는 대로 예방교육을 함께 병행하겠다는 새해 로드맵을 만들었지만 저를 많이 응원해 주었던 수사과장은 떠나고 새로운 수사과장이 발령받았습니다.
제가 속해 있는 지능범죄 수사팀의 팀장도 다른 지역에서 새롭게 발령을 받으면서 오게 되었고 적지 않게 발령으로 인원 이동에 따른 변화가 생겼습니다.
새로운 전입 직원들과의 인사 조합으로 발령이 마무리되면 곧바로 며칠간의 적응 기간 후 각 팀들마다 경쟁적으로 준비하는 것이 있습니다.
‘한방’
새로운 지휘관이 오게 되면 각 팀들마다 초반에 큰걸 한방에 터트려줘서 깊은 인상을 심어주게 되면 1년 동안 조금 부담을 덜어서 일할 수 있다는 전통이 있었습니다.
새로 연천경찰서 지능팀장 자리에 발령받은 분은 경기북부지방경찰청으로 지능범죄 수사대에서 보이스 피싱 전담 팀에서 근무하다 너무 앞만 보고 달려왔다는 생각이 들어 경기북부 3 급지인 연천에 자원해서 오게 되었다고 저희들에게 소개를 하였습니다.
처음 발령지인 연천에서 꽤 오랫동안 근무한 경력 말고는 달리 내세울 게 없었던 상황에서 지방청 지능범죄 수사대에 근무했다는 이력은 상당히 커 보였습니다.
제가 하는 업무는 사이버범죄 수사 업무이지만 소속이 지능팀으로 되어 있기 때문에 사실 지능팀장이 누가 올지 신경이 많이 쓰였던 것도 사실입니다.
아무래도 지방청이나 복잡한 수도권에서 연천경찰서로 발령받은 사람들의 공통된 특징을 보면 3 급지인 연천, 3 급지스럽게 일하다 다시 떠날 것, 고만고만한 사건에 이슈가 될만한 사건은 없을 것, 근무지가 시골인 만큼 여기 직원들도 시골스러울 것으로 인식을 가지고 있는 직원들을 많이 보았습니다.
"아니 여기는 사무실 안에 날아다는 파리도 왜 이리 연천스러워!!"
한 번은 1 급지에서 일하다 연천으로 발령받고 근무하시는 분이 더운 여름날 업무를 보다 날아다니는 파리를 손으로 내쫓으면서 하는 말을 우연히 듣게 되었습니다.
1 급지에서는 계급과 나이가 어리면 새로 오신 분이라 하더라도 상급자에게 알아서 기어서 다녀야 하는데 귀찮게 주변을 끈적끈적하게 달라붙어 연천스럽다고 표현하신 모양입니다.
같이 근무하지 않는 이상 절대 표면만 보고 사람을 평가해서는 안되지만 이런 사고방식을 가지고 있는 분이라면 분명 형사는 건물 출입할 때 어깨가 먼저 들어가야 하는 사고방식을 가지고 있을 것입니다.
하지만 이번에 새로 발령받은 지능팀장은 지방청에서 익히고 습득했던 수사 업무 노하우를 서로 공유하고 제가 담당하고 있던 사이버범죄 수사 업무에도 관심을 많이 가지면서 사로 사건을 치고 나갈 때 어렵거나 지원 나가야 할 일이 있으면 같이 나가자는 걸 강조하였습니다.
인사 발령 직후 새로운 전략으로 팀워크를 구성하는 경찰의 분위기와는 관련 없이 사건들은 어제와 다름없이 발생하고 피해를 당하신 분들은 계속해서 경찰서를 방문합니다.
‘햇살론 대출’
당시 연천 관내에 저금리 대환 대출을 빙자한 보이스 피싱 피해자들이 많게는 하루 평균 2명씩 방문하였습니다.
보이스 피싱 사건은 업무 분장상 지능범죄 수사팀 사건이지만 절박한 상황에서 계좌 거래 이체 내역서를 들고 방문하시는 피해자분들에게 어떻게라도 도와드려야겠다 싶어 저도 사건을 접수해 신고 처리를 하였습니다.
연천 관내에서 치 위생사로 근무하시다 햇살론 대출이 가능하다는 전화를 받고 조직원들이 요구하는 계좌로 이채를 한 후 간호사복을 걸친 채로 당황해 저에게 신고하러 오신 분, 2 금융권에서 대출을 받고 나서 2 금융권보다 더 저렴한 이자로 대환 대출이 가능하다는 전화를 받고 2 금융권에서 받은 대출금액을 전부 이채해 준 뒤 망연자실한 상태에서 경찰서를 방문한 초등학교 선생님, 금요일 업무시간 직전 1억 원 송금 직후 지급정지 절차를 몰라 112 신고로 저와 만나게 된 군 의무관으로 복무 중인 의대생 등 끝이 없을 정도로 보이스 피싱 범죄는 줄지 않았고 그만큼 피해를 당하신 분들도 늘어났습니다.
“돈은 찾을 수 없겠죠?”
보이스 피싱 피해를 당하신 초등학교 선생님을 조사하고 있는 와중에 저에게 물으셨습니다.
보이스 피싱은 경찰에게 신고하기 전 먼저 금융기관에 지급정지를 시켜 이체한 돈이 다른 계좌로 다시 이체되거나 현금으로 인출되는걸 먼저 막아놓고 신고를 해야 하지만 대부분의 사람들은 위급한 상황에서는 제일 먼저 112가 떠오르게 되어 있습니다.
“장담은 할 수 없지만, 대부분 보이스 피싱으로 피해자분들이 이체하는 계좌는 많은 피해자분들이 동시에 이체를 하기 때문에 선생님이 지급정지 신고를 못했다고 하더라도 다른 피해자분들이 먼저 지급정지를 할 수도 있습니다. 그 계좌에서 돈이 빠져나가기 전 지급정지만 되면 오늘 조사받고 나서 제가 서류를 드릴 건데 그 서류를 은행에 제출하면 환급절차를 통해 돌려주도록 되어 있습니다.”
“어떤 서류가 필요한가요?”
“선생님이 보이스 피싱 때문에 범죄자들이 불러주는 계좌로 이체한 거래 내역서와 통화 내역을 바탕으로 사건사고 사실확인원을 드릴 건데 이 서류를 들고 은행에 가셔서 반환 요청 서류를 추가로 작성하셔서 제출하시면 됩니다.”
“하지만 돈이 남아 있다는 조건하에서 가능해요!"
혹시 저의 잘못된 정보 때문에 헛된 희망을 주면 안 되기 때문에 그래도 확실한 정보는 전달해 드려야 할 것 같아서 죄송하지만 남아 있지 않을 가능성도 높다는 것도 알려드려야 했습니다.
한 번은 112 상황실에서 수사과 전 직원 대상으로 비상이 떨어졌습니다.
연천 관내 학부모가 아들이 납치되어 있다는 보이스 피싱 전화를 받고 몸값을 요구하고 있다는 신고였습니다.
신고자는 초등학교 교감선생님으로 같은 학교 교직원이 교감선생님의 아들이 납치되어 있다는 보이스피싱 전화를 받고 있다는 내용이었습니다.
제일 먼저 초등학교 인근 파출소 직원분이 현장에 도착해 신고자 분의 아들이 재학 중인 학교에 대한 정보를 받아 곧바로 확인에 들어가고 교감 선생님은 계속 보이스 피싱 범죄자와 전화를 받고 있었습니다.
동시에 저를 포함한 지능팀 전원이 현장으로 출동해 실시간으로 먼저 도착한 파출소 직원분과 무전으로 정보 공유를 하면서 도착했습니다.
“아들은 학교에서 수업 중인걸 확인했습니다!”
남은 건 전화통을 붙잡고 차분하게 대응하고 계시는 교감 선생님을 진정시켜 전화를 끊도록만 하면 됩니다.
이때 제일 먼저 현장에 도착해 저희 팀 직원에게 차분하게 상황 전파하고 아들이 무사히 있다는 것까지 확인하신 파출소 선배님께서 교감 선생님 전화를 낚아챘습니다.
“우리 경찰관인데 어디서 뒤지고 싶어서 이런 짓거리를 하고 다니냐? 끊어 새끼야!”
가족을 인질로 잡은 전화를 받게 되면 그 어떤 누구도 당황할 수밖에 없습니다.
하지만 저렇게 차분하게 대처해 누구 하나 다치지 않게 마무리 지을 수 있었던 것은 파출소 선배님의 현장 경험이 없으면 자칫 피해자로부터 원망을 받을 수도 있는 상황이었습니다.
“박형사, 망원으로부터 연락 왔어. 어서 출발하자!”
한 달간 보이스 피싱 사건을 수사 중이던 팀장이 대포통장인 것 같다는 퀵 배달원으로부터 전화를 받은 직후였습니다. 보이스 피싱 사건은 대포통장과 대포폰, 대포카드를 얼마큼 많이 확보하느냐에 따라 범죄의 성공이 결정되기 때문에 2중 3중으로 유통 경로를 복잡하게 만듭니다. 특히 오랫동안 보이스 피싱 조직원들과 대포카드 유통망을 수사해 온 팀장은 그만큼 중간중간 연결책을 포섭해 우리 측 정보원인 ‘망원’으로 잘 활용하고 있었습니다.
퀵 배달원은 말 그대로 퀵으로 배송해 주어야 하기 때문에 우선 최종 배달 목적지 근처에 도착해 있으라는 통화를 하고 저를 포함한 지능팀 전원이 일산으로 향했습니다.
“예 일단 도착했다고 전화는 주지 마시고 우리가 도착 후에 같이 작업하시죠!"
최대한 속도로 내리밟으면서 퀵 배달원에게는 하나하나 시나리오를 알려 주었습니다.
연천에서 일산까지는 족히 1시간이 걸리지만 내리밟아 30분 만에 도착했습니다.
도착하는 동안 카드를 받아야 될 사람으로부터 독촉 전화를 받은 퀵 배달원은 혹시 눈치챌지 몰라 지금 도착했다고 수령인에게 이어서 알려 주었습니다.
퀵 배달원이 들고 있던 택배 박스를 흔들어보니 안에는 아무 내용물은 없었고 플라스틱 카드가 종이 박스에 부딪힐 때 나는 ‘딸그락’ 소리만 들렸습니다.
소리상으로는 플라스틱 카드가 3-4장 정도 들어있는 것 같았습니다.
“일단 박형사하고 나하고는 퀵 기사 앞으로 먼저 가서 물건 주는 현장을 따고 나머지 2명은 퀵 기사 뒤를 따라가자고!”
저하고 지능팀장은 먼저 앞으로 가서 박스를 넘겨줄 때 동시에 따기로 사인을 맞췄습니다.
그런데 급하게 나올 때는 몰랐는데 이번에도 모두들 외근 잠바가 검은색이었습니다.
하지만 시간이 저녁이고 주택가 골목이라 사람이 잘 보이지 않아 검거는 조용하게 이루어질 수 있을 것 같았습니다.
슬리퍼를 신고 젊은 친구가 택배 박스를 받는 모습이 보였습니다.
퀵 기사가 시야에서 사라지는 걸 확인하고 슬리퍼 친구가 집으로 들어가는 곳까지 따라 들어갔습니다.
오피스텔 건물에 들어섰을 때 집으로 가는 것 같아 팀장과 저는 오른팔과 왼팔을 조용히 감싸 안았습니다.
“우리 누군지 알지?”
이런 부류의 친구들은 잡히는 순간 체념하기 때문에 반항도 도망치지도 않습니다.
“ 집에 누구 있어?”
“아무도 없습니다.”
“확실하지?”
그래도 혹시 몰라 슬리퍼 친구가 들고 있던 전화기는 압수했습니다.
집은 원룸 형태의 오피스텔로 채 20평이 넘지 않는 단출한 구조였습니다.
우선 집에 오자말자 박스를 열어 보도록 했습니다.
“열어봐!”
지금 이 상황이 말도 안 되는 체포라면 저항하거나 아니면 양아치스럽게 행동해야 하지만 이 친구는 저희에게 양 팔이 잡히는 순간 모든 걸 협조하겠다는 태도로 바꾼 듯하였습니다.
박스 안에는 3개의 체크카드와 각 카드별 비밀번호가 적힌 포스트잇 그리고 5만 원권 5장이 들어 있었습니다.
“이 돈 배달료야?”
“예!”
이 슬리퍼 친구는 체크카드 3장을 배달하는 조건으로 배달료 25만 원을 챙겼습니다.
하지만 저희에게 체포가 되었으니 25만 원에 인생을 베팅한 상황이 돼버렸습니다.
“박형사 일단 컴퓨터 하고 노트북 있는지 보고 압수할 물건 있으면 챙겨!”
책상에 켜져 있던 듀얼 모니터 한편에 카카오톡 피씨 버전이 설치되어 있었습니다.
어디서 수집했는지 모르는 이메일 주소, 휴대전화, 아이디, 비밀번호 등을 누군가와 계속 교환하고 있었습니다.
그리고 도박사이트를 홍보하고 있었습니다.
(좌측)개인정보를 도박사이트 운영자에게 넘겨주고 있는 모습 (중간)대포폰 중개업자 알선하는 모습 촬영 (우측)도박사이트 운영을 위해 홍보를 대행하고 있는 모습을 촬영. 출처:박중현
이때부터 보이스 피싱 등으로 무차별적으로 수집한 개인정보를 도박사이트 운영자들에게 중계해주면서 수익금을 받으며 보이스 피싱 조직원들은 도박 사이트 운영자들하고도 함께 일을 하고 있다는 것도 알게 되었습니다.
모니터를 들여다보다 이 친구가 사용하는 헤드폰이 눈에 들어왔습니다.
빨간색의 ‘닥터 드레 파워비츠’ 시리즈 헤드폰으로 저도 사고 싶어 했던 제품인데 상당히 고가라 망설였던 헤드폰이었습니다.
“이거 니가 산거야?”
“예”
피해자들에게 보이스 피싱으로 해 먹은 돈으로 수십만 원짜리 헤드폰을 샀다고 하니깐 순간 속에서 욱해 욕을 쏟아부었습니다.
게다가 컴퓨터에는 출처가 확인이 안 되는 개인정보들을 도박사이트 운영자들에게 넘겨주고 있었습니다.
“너 뭐 준비하는 게 있는 것 같은데?”
“예 도박사이트 총판 하나 받아서 운영해 보려고요.”
언제부터인가 젊은 친구들에게 불법 도박사이트 운영자들을 지칭하는 토사장이 직업 순위에 올라와 있었습니다.
죽도록 패 죽이고 싶었지만 그다음 해야 될 일이 많이 남았습니다.
“그다음 이 카드 누구에게 주기로 했어?”
“이름은 모르고 서울 00동 건물 1층에 있는 편의점에 두면 찾아간다고 했습니다.”
“언제?”
“오늘 카드 받았다고 하면 그쪽에서 날자와 시간을 알려 준다고 했습니다.”
오늘 곧바로 휴대전화와 카드를 압수해 이 슬리퍼 친구를 구속하게 되면 더 이상 조직원들의 실체를 밝힐 수가 없게 됩니다.
“박형사가 편의점 직원으로 위장 좀 해야겠는데?”
곧바로 며칠 뒤 있을 검거 작전을 구상하기 위해 슬리퍼 친구가 들고 있던 택배박스 하고 전화기 그리고 압수품들을 챙겨 연천으로 차를 내리밟았습니다.
이때 시간이 저녁 10시였습니다.
그래도 새로 온 팀장과 새로운 방식으로 팀워크 제대로 작업 한 건 하다 보니 서로 끈끈하게 가까워지는 기분이 생겼습니다.